‘골프 닥터’ 서경묵의 My Way

양준호 기자 사진=이호재 기자 2023. 1. 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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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묵(오른쪽) 서울부민병원 스포츠재활센터장이 3D골프스윙 분석 장비를 이용해 골퍼의 스윙 습관과 부상 위험을 확인하고 있다.
[서울경제]

이런 골퍼 꼭 있다. 베스트 스코어 경신을 위해선 스파르타식 연습만이 답이라는 골퍼, 그래서 몸 풀 시간도 아깝다며 기계처럼 볼만 치는 골퍼, 한겨울에도 연습장 매트에 땀 한 바가지를 쏟아내고는 흐뭇해 하는 골퍼. 이런 분이라면 꼭 보고 넘어가시라.

우리나라에 ‘골프 의학’을 최초로 도입한 서경묵(65) 중앙대병원 명예교수는 “클럽당 10개 정도씩 볼을 치고는 클럽을 내려놓고 가볍게 스트레칭한 뒤 채를 바꿔서 또 10개 치는 식의 연습이어야 한다”며 “연습장에서 1시간 내내 정신없이 공만 치는 연습은 나중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목표로 한 스코어를 위해 올겨울 강도 높은 연습을 작정한 골퍼라면 새겨들어야 할 얘기다.

“미국의 골프 연습장을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3~4달러 내면 공 50~100개 든 바구니를 주잖아요. 그걸 가지고 하루 종일 쳐도 아무도 터치 안 하니까 여유롭게 연습할 수 있는 거죠. 근데 우리나라는 시간으로 제한하는 곳이 대부분이라 공이 올라오는 대로 빨리 치기 바쁘죠. 그래서 과사용으로 몸에 무리가 오는 겁니다. 미국 같은 환경을 바라기는 어려우니까 각자가 여유를 가지고 틈틈이 몸을 풀어가면서 연습해야 합니다.”

산티아고 800㎞ 순례 뒤 시작한 제2의 인생

중앙대병원 명예교수, 재활의학 전문의, 스포츠의학 인증의, 노인재활의학 인증의인 서 교수는 서울부민병원 스포츠재활센터장이라는 새 직함을 얻었다. 2022년 8월로 정년 퇴임한 그는 퇴임 기념으로 가족이 보내준 여행을 다녀온 뒤 11월부터 새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 서울부민병원 스포츠재활센터에서 만난 서 교수는 “2022년 4월쯤에 이 병원 원장님이 식사 한 번 하자고 연락을 주셨다. 원래 알던 분은 아니어서 무슨 일인가 궁금했는데 스포츠 의학 쪽을 키우고 싶다는 제안을 하시더라”고 설명했다. “병원 시설과 장비, 치료사 선생님들의 의욕과 원장님의 지원 의지까지 확실하기에 병원에 와보는 순간 ‘일을 해야겠다’ 마음먹었어요. 8월 말에 은퇴를 하고 9·10월에 여기 올 준비를 하고는 바로 일을 시작했죠. 센터에 골프 스윙 분석실을 마련한 것도 병원장님과 의견을 나누면서 결정된 것입니다.”

대학 병원에서 보낸 30년이 1막이라면 60대 중반에 들어간 새 직장에서의 도전은 2막인 셈이다. 1막과 2막 사이의 인터미션에 서 교수는 스페인으로 날아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완주했다. “고생했다고 가족들이 여행을 보내준다기에 산티아고를 찍었어요. 산악용자전거(MTB)를 15년 간 타온 터라 그걸로 달리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고요.”

유럽 일주 중인 동호회에 중간에 합류한 뒤 총 800㎞를 달렸다. 아침 6시 반부터 페달을 밟고 저녁에는 빨래하고 개인 정비한 뒤 다음날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생활을 2주 간 계속했다. “무리 중에 70대 연령의 분들도 있었는데 8월이라 굉장히 더운데도 끄떡없더라고요. 조지아에서부터 달려온 분들이라 ‘대단한 체력이다’ ‘역시 숨은 고수들이 굉장히 많구나’ 싶었죠.”

서 교수는 “골프는 철저하게 한 방향으로 하는 운동이라 골프만 해서는 사실 건강에 이로울 수는 없다”며 “다른 운동을 곁들이는 게 바람직한데 미국의 스포츠 학회들에 따르면 1주일에 5~6일은 하루 40분 전후로 지구력 운동을 해주는 게 좋다”고 소개했다.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이 자전거를 탄 뒤로 무릎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는 보고도 있어서 자전거를 추천할 만하고 등산도 건강하게 오래 골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적인 골프, 알고 보면 위험한 운동?

“골프는 중등도 이상의 위험성을 가진 운동”이라고 서 교수는 강조한다. 상대와 몸으로 부딪칠 일이 없는 스포츠라 위험성을 따지자면 아주 낮을 것 같은데 사실은 아니라는 얘기다. 당연히 럭비나 미식축구, 축구처럼 콘택트 스포츠보다는 덜하지만 넌콘택트 종목인 골프도 생각보다 많은 주의가 필요한 운동이라는 설명이다. “가만히 놓인 공을 치는데 뭐가 위험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같은 자세로 반복해서 공을 치는 거라서 근골격계에 쌓이는 스트레스를 무시할 수 없어요. 골프 엘보, 요통, 어깨·무릎·옆구리 통증, 힘줄·인대 파열 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는 거죠. 쉽게 말해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 골병들 수 있는 운동이 골프라는 겁니다.” 부상 빈도로 보면 요통, 골프 엘보, 손목, 손가락, 어깨 순이다. 서 교수를 찾은 골퍼 중 척추 계통의 통증을 호소한 사람이 가장 많았고 팔꿈치 통증은 그다음이었다.

특히 골퍼들이 흔히 듣고 겪는 골프 엘보에 대해서 서 교수는 “염증이냐, 부분 파열이냐에 따라서 치료가 완전히 달라야 한다. 단순 염증의 경우에는 스테로이드 치료만으로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지만 그게 아니고 파열이라면 일시적으로 좋아진다 해도 100% 재발한다”며 “그래서 초기에 정확한 검사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서 교수는 “테니스는 포핸드가 있고 백핸드도 있어서 팔의 사용 부위가 비교적 다양하지만 골프는 드라이버 샷부터 퍼트까지 동작이 거의 같은 방향으로만 이뤄지기 때문에 과사용 증후군에 쉽게 노출된다”며 “이런 위험성을 인식하고 골프를 하는 것과 모른 채 그냥 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라운드 전에 충분한 웜업과 라운드 뒤 또 충분한 쿨다운 과정이 사실 골프에는 필수”라고 했다. 그는 “캐디가 안내하는 준비 운동을 열심히 따라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전후로도 개인적으로 허리, 어깨, 팔 등을 꼼꼼하게 스트레칭하는 게 중요하다. 제자리 뛰기도 웜업에 아주 좋다”며 “샷 연습이 가능한 골프장이라면 레인지에서 피칭 웨지부터 아이언, 드라이버까지 총 20~30개 정도 쳐보고 라운드에 들어가면 베스트”라고 조언했다.

골프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트러블 샷 상황에는 그만큼 다양한 부상 위험이 숨어있기도 하다. 단단한 나무 뿌리를 잘못 칠 경우 2톤 정도의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서 교수는 강조한다. 이 경우 손목 인대 손상 등 간단치 않은 부상을 입게 마련이다. 그래서 서 교수는 “친구나 가족 등 가까운 사이의 라운드라면 너무 까다로운 트러블 샷 상황에서는 옮겨 놓고 치는 것도 서로 용인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수준이 높은 상급자들 간의 경기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위험 상황에선 빼놓고 치는 등의 로컬룰을 정해 놓고 점수에 너무 연연하지 않는 ‘안골즐골(안전한 골프, 즐거운 골프)’을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뉴욕에서 발견한 ‘골프 닥터’의 길

서 교수는 국내 스포츠의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골프에 정통한 ‘골프 의사’다. 저서(‘젊어지는 골프’ 등)도 주로 골프에 관한 것이다. 중앙 일간지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고 한국 10대 골프장 선정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00년 뉴욕 연수가 골프 의학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 초빙 교수 프로그램을 통해 1년 간 연수하던 시절이었다. “재활의학과에 갔더니 골프 스윙 분석기가 있는 거예요. ‘이거 재밌다’ 싶었어요. 스윙 분석기 자체가 흔치 않던 때였는데 그게 병원에 있으니 더 신기했던 거죠.” 스윙을 면밀히 분석한 뒤 ‘어느 부위가 힘이 떨어져 있어서 스웨이가 발생하는 거다’라든가 ‘이쪽에 통증이 있으니 이런 스윙은 부상을 키울 수 있다’처럼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깊이 있고 입체적인 진단과 처방이 이뤄지고 있었다.

“어딘가 불편함을 느끼는 골퍼들이 길게 줄을 서있더라고요. 부상 치료를 넘어서 내 몸에 맞는 스윙을 찾게 해주고 경기 감각을 높여주는 과정이 이뤄지고 있었어요.” 연수 복귀 후 서 교수는 미국골프의학회에 참석해 자료를 얻고 경험을 늘리는 한편 네트워크를 확보한 끝에 국내에 대한골프의학회를 만들었고 사비까지 써가며 학회를 운영했다.

본격적으로 골프 관련 부상을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프롤로테라피(prolotherapy)를 미국에서 들여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인대나 힘줄이 찢어지거나 늘어나면서 생기는 통증을 완화하는 주사 요법으로, 서 교수는 20년 간 1만 5000건 이상 시술하는 동안 ‘완전 성공률’ 85%를 기록했다. 주사 약물에 스테로이드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힘줄과 인대를 근본부터 강화시키는 방법으로 화제를 모았다. 지상파 뉴스에도 보도될 정도였고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몰려 5년 간 예약이 밀리는 일도 있었다.

서 교수는 이후 다른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 적극적으로 나서 이 주사 요법을 널리 알렸다. 그는 “지금은 프롤로테라피가 근골격계 통증의 치료법 중 하나로 국내에 정착이 됐다. 통증이라는 적과 싸우려면 무기가 다양해야 하는 법인데 그중 하나를 제안해서 활용하게 했다는 데 나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골프관련 통증 환자 30만···“더 큰 사명 느껴”

골프는 군의관 시절이던 1980년대 말 쯤에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 ‘전투체육의 날’에 재미를 붙인 뒤 평생 동반자가 됐다. 베스트 스코어인 2언더파를 두 번이나 쳐봤고 홀인원도 한 번 경험한 서 교수는 “70세 넘어서 에이지 슈트(나이와 같거나 더 적은 18홀 스코어 기록)까지 하게 되면 아마추어 골퍼로서 3대 로망을 다 달성하는 셈이니까 체력 관리 더 잘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서 교수에 따르면 핀란드에선 정부가 노인들에게 퍼블릭 골프장 라운드를 5년 간 지원하고 지켜본 뒤, 심폐 기능과 콜레스테롤 수치 등 많은 건강 지표들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결과를 얻었다. 다만 ‘카트를 끌면서 걸어서 라운드’라는 조건이 붙었다. 서 교수는 “걷기 운동은 시니어들에게 가장 좋은 운동이지만 거기에 ‘재미’가 들어가야 지속 가능해진다. 골프, 등산, 자전거가 좋은 이유”라며 “기회가 되면 며느리도 골프를 배워서 아내와 아들 내외까지 4명이 라운드를 즐기면 좋겠다”고 했다. 서 교수의 며느리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 양궁 2관왕 장혜진이다. 서 교수는 대한체육회 의무위원회 소속으로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를 두루 다녔는데 이 과정에서 아들의 짝으로 장혜진을 소개 받았다. 서 교수는 최근 태어난 손주와 영상 통화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최근 골프 인구 통계를 보면 1년에 한 번 이상 라운드를 한 국내 인구가 600만에 이른다. 서 교수는 “이중 10%인 60만 정도가 마니아층이고 그 60만명의 50%는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다는 보고가 있다”며 “그렇게 치면 국내에 30만 명의 골프 관련 통증 환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알게 모르게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고 바꿔 말하면 저 같은 의사에게는 그만큼 큰 시장이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좋아하는 운동과 직업인 의학을 결합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고 있으니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부민병원이 골프 의학, 그리고 골프 관련 부상 진단과 치료의 중심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우리나라 골프 발전에도 미력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고요.”

◇건강 골프를 위한 지침

-연습장에선 클럽당 10개씩만 볼을 치면서 틈틈이 스트레칭

-라운드 전 캐디 안내 준비운동 외 허리, 어깨, 팔 풀어주고 제자리뛰기도

-연습장 딸린 골프장선 피칭 웨지부터 드라이버까지 20~30개 쳐보고 라운드

-1주에 최소 5일은 40분씩 지구력 운동, 자전거·등산 추천

양준호 기자 사진=이호재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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