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게 없는 두 가지
[정희준 전 동아대 교수]
"말이나 행동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어긋나서 막되다."
윤석열 정부를 두고 '무도한 정권'이라 칭하는 이들이 있기에 '무도하다'의 의미를 찾아봤다. 인간의 도리를 지키지 않는 막된 정부라는 의미인가보다. 사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도 문재인 정부를 향해 '무도한 정권'이라는 표현으로 공격했다. 어찌 됐든 무도한 정권을 보내고 또다른 무도한 정권을 맞이한 국민만 참담할 뿐이다. 그럼에도 지금 권력을 잡은 윤 대통령의 행태는 논란과 비판 없이 지나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잠시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에게 '인생필독서'로 꼽히고, 특히 정치인들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꼽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일부 번역본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필수적 자질 세 가지를 제시한다. 바로 열정과 책임감과 균형적 판단이다.
열정은 단순한 '흥분상태'가 아니라 대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헌신이다. 당연히 상당 기간 축적된, '준비된 열정'이어야 할 것이다. 사실 윤 대통령은 급조된 후보였기에 베버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나라를 위한다는 본인의 신념은 확고할 것이므로 이를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고자 한다.
문제는 책임감과 균형감이다. 국가란 폭력이라는 물리적 강제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한 지배체제이고, 정치는 이를 다루는 것이기에, 그래서 정치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특히 정치인의 신념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고, 때로 (좋은) 의도와 배치되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기에 결과에 대한 엄정한 책임감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베버는 책임윤리가 없는 정치는 신뢰할 수 없다고 경고한 것이다.
정치적 책임은 사라지고 공무원에게 법적 책임만 묻는 정치권력
취임 후 약 8개월 간 수많은 논란과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유럽 순방 때 대통령 전용기 민간인 탑승 논란은 물론 미국 방문 당시 "날리면"으로 인한 국가적 혼란과 비속어 "XX" 논란 때도 사과는 물론 유감표명조차 없었다. MBC기자 전용기 탑승 배제 논란 때도 자신의 잘못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모두 언론 탓으로 돌렸다. 새해 신년사에서도 10·29참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참사와 관련된 "정무적인 책임도 책임이 있어야 묻는 거다"라며 사실상 정치적 책임이 없음을 명백히 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인에게 필요한 자질인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는 모습이 상징적이다. 상식적으로나 관행적으로나 이러한 국가적 참사의 책임은 당연히 정치인들이 먼저(!) 져야 한다. 그런데 고위 정무직 인사들의 '정치적 책임'은 증발해 버리고 일선 공무원들만 끌려나와 '법적 책임'을 지고 죄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현 정부는 정치적 책임을 법적 책임으로 둔갑시킨다. 특히 정치적 책임과 달리, 공무원들에게 지우는 법적 책임은 결국 숱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고 이들 가정의 생계를 끊는 과정이다. 참으로 비정한 정권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균형적 판단을 상실한 '검찰 정치'
또 하나가 균형감각. 이미 100년 전 베버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균형적 판단을 정치인의 필수 자질로 꼽았다. 재미있게도 이는 한국에서도 동일하다. 한 청와대 출신 인사는 청와대나 내각에서 봉사할 자격으로 전문성과 함께 균형감각을 꼽았다. 그러니까 균형감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임 있는 정치인의 필수 요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균형감각은 어떠할까.
지금 정부에선 수사가 정치를 대체했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들도 (법적으로도 아니고) '법리적'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전 정부 수사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가 그렇다. 관행으로 이루어지던 절차나 당시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처리한 문제들을 다시 들춰내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을 샅샅이 뒤져 수사하고 기소한다.
이 대표와 측근들의 경우 대장동 수사는 뇌물에서 시작해 선거자금, 직권남용, 배임으로 혐의가 떠돌아다니다가 돈을 받았다는 물적 증거가 나오지 않자 갑자기 과거 검찰이 스스로 무혐의로 종료했던 성남FC 광고 건을 다시 들추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길 잃은 개가 동네를 헤매듯 법전과 규정을 샅샅이 뒤지다가 빈틈이 보이면 새로운 혐의를 창조(?)하는 꼴이다.
이 뿐 아니다. 많은 이들은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검찰이 최소한의 균형은 지킬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이는 완벽한 허언이 되었다. 전 정부에 대해서는 검찰조사를 받지 않은 이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전방위적 수사를 하고 있고, 야당은 당대표와 현직 의원까지 수사하는데 여당 쪽은 끈 떨어진 전직 의원들만 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의 가족에 대한 수사는 수많은 물증과 증언에도 불구하고 전혀 진척이 없다. 균형은 고사하고 이 정부가 표방하는 '공정'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뻔뻔함이라 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섬멸의 대상인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자 고도의 정치적 영역인 사면에서조차 균형적 판단은 없었다. 지난 연말의 사면은 최소한의 균형도 무시한, 유래 없는 '막가파식' 사면이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때 부패·비리 인사들을 무더기로 사면에 복권까지 해줬다. '국민통합'이 아닌, 사실상 '부패통합' 사면이었다.
그 과정에서 만기출소가 고작 5개월 남아 사면불원서까지 발표하며 사면을 거부했던 김경수 전 지사는 복권 없는 '강제 사면'으로 황망하게 출소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요지경인 것은 이명박은 사면의 결과로 미납 벌금 82억원까지 감면 받아 법적 혜택 뿐 아니라 엄청난 경제적 혜택까지 얻게 됐다. 이쯤 되면 차라리 비리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는 게 낫다.
윤 대통령의 '불균형감각'은 정치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신년사에서 경제와 안보를 강조했지만 평화와 복지는 고사하고 민생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언급도 찾기 힘들었다. 특히 '강성 귀족노조'를 기득권으로 설정하여 전쟁을 선언했다. '범죄와의 전쟁'도 아니고 국민과의 전쟁이라니 이 무슨 궤변인가. 그런데 이튿날 경제계와의 신년회에서는 정부와 기업은 한 몸이 돼야 한다고 천명했다. 대통령 스스로 국민을 갈라치기 하면서 한쪽과는 한 몸이 되고자 하고 다른 쪽은 섬멸의 대상으로 삼는다. 대통령의 신년사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모두를 위한 대통령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시설 NBC <투나잇쇼>에 출연해 진행자 제이 레노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나는 흑인이었다." 대통령이란 어느 한 세력이나 집단의 리더가 아니라 그야말로 국민 모두의 지도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윤 대통령이 국민 모두의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 곳곳을 살피고 다른 무엇보다 국민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기를 간절하게 희망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갈등 조장' 보다는 '갈등 조정'의 최고 책임자여야 한다. 특히 책임감과 균형감을 갖춘 리더이길 바란다. 베버는 정치인의 '무책임'과 '객관성 결여'를 죄악이라고 했다.
[정희준 전 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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