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염된 단어 '공정'… 尹정부, 언론자유 후퇴시키는 악수 두지 말아야"
정치권력의 언론 탄압은 노골적이었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은 검찰 고발, 민영화, 출연금 삭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언론을 압박했다. 내 편과 네 편을 갈라 적으로 간주한 언론사엔 유치할 정도의 보복을 감행했다. 올해 역시 이러한 경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자협회보는 조만간 현실화할 정치권력의 언론 탄압을 예측하고, 대응 방안을 찾기 위해 신년 좌담회를 마련했다. 지난달 29일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엔 강성원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장과 최성혁 언론노조 MBC본부장, 고한석 언론노조 YTN지부장, 조정훈 언론노조 TBS지부장이 참석했다.
-지난해 각 사마다 여러 정치권력의 압박들이 있었다. 이러한 압박이 취재‧제작의 자유라든가 사기 진작 등 내부에 끼친 영향이 있나.
최성혁 언론노조 MBC본부장=지난해 초부터 다양한 압박을 받아왔다.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과 국민의힘 원내대표단의 항의 방문뿐만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 이후 거의 20건의 소송이 저희 경영진과 회사에 제기됐다. 이러한 압박은 MBC 기자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로 이어졌고, 대통령이 도어스태핑을 거부하는 일도 일어났다. 윤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을 보도한 기자들에 소위 백색 테러에 가까운 린치가 일어나 그로 인한 심리적인 치료, 휴직을 지켜보며 구성원들이 굉장히 공분한 일도 있었다. 보도 외적으로도 국세청 세무조사,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등 정부 기관이 총동원됐다. 그 결과들이 최근에 나오고 있는데,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기소와 소환 통보가 조만간 있을 것으로 저희는 예상하고 있다. 사장 선임이 있는 올해 초엔 최대치의 압박이 들어올 것이라 본다.
고한석 언론노조 YTN지부장=YTN은 하부 구조 자체를 바꾸는 거라 그 무게감이 완전히 다르다. 한전KDN이나 마사회가 지분을 팔지 않겠다고 하는데도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이후 YTN의 사영화가 공표됐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 편을 들었으니 민영화해도 된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저희가 김건희 여사의 학력 위조를 단독 보도해 파장이 있었는데, 노골적이고 투명한 복수를 한 셈이다. 저희는 ‘언론 장악의 외주화’라고도 표현한다. 지배구조가 바뀌는 일이니 구조조정이나 고용 불안에 대한 구성원들의 우려는 크다. 특히 YTN 내부에서 수익은 많이 못 내지만 공적인 역할을 하는 조직이나 자회사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이 많이 불안해한다. 하지만 최근 후배들이 쓴 기수 성명에서 저는 어느 정도 희망을 본다. 부끄러움 없이 기사를 쓸 수 있는 환경이 조금이라도 위협받으면 용납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조정훈 언론노조 TBS지부장=TBS도 2022년은 다사다난했다. 아무래도 재정이 많이 취약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건드린 것 같은데, 지난해는 55억원이, 올해는 88억원이 삭감됐다. 지난해 11월15일엔 거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 조례 폐지안이 의결됐다. TBS는 기본적으로 재정 독립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상업 광고가 허용되지 않고, 재단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여러 사업 수익을 낼 수 없다. 그런데 조례 폐지안이 통과되고 나서는 생존권 사수가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당장 올해는 예산 삭감으로 인해 모든 제작을 할 수 없게 됐다. 가장 큰 어려움은 내부 구성원들의 갈라치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제작진과 비제작진들의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고, 제작진들도 프로그램이 줄어들며 스스로를 검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자율성이 많이 훼손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도 무거운 것 같다. 올해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어떤 것인가.
강성원 언론노조 KBS본부장=사장은 2년의 임기가 남았고, 사장 선임권을 갖고 있는 이사회도 내후년까지 임기가 남아 있다. 문제는 한상혁 방통위원장이 7월이 되면 임기가 끝난다는 거다. 그러면 어쨌든 간에 현 정권에서 인사를 할 테고 그렇게 방통위의 수장이 바뀌면 KBS 이사 한두 명 바꾸는 거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현재 감사원과 국세청, 경찰이 동원돼 KBS 내부를 수사하고 감사를 연장시키는 것도 그 밑밥을 깔기 위해서다.
최성혁=강 본부장이 얘기하신 전망에 100% 동의한다. 저희 같은 경우 2월에 새로운 사장이 선임되는데, 현재 방문진은 시민참여방식을 도입하는 등 어느 정도 합리적인 방식으로 사장 선임을 할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그 판단에 따라 선임되는 차기 사장이 현 여권, 그리고 대통령실이 원하는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결국 가을까지 큰 싸움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새로 선출된 사장이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올해 가을 방통위 구도가 바뀌면 KBS와 MBC, 그리고 YTN 사영화까지 포함,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방송장악 음모가 실행될 것이고, 그 시점이 큰 변곡점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고한석=올해 가장 우려하는 건 물론 민영화다. 왜냐하면 대주주인 공기업 두 곳이 이미 이사회에서 의결을 했고 이제는 입찰을 붙이는 등 시장 논리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수 주체가 윤곽을 드러내고 인수 가격이 나오면 분명 법적인 문제가 불거질 거다. 특혜 시비가 일 수 있고 졸속, 헐값 매각 논란이 나올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법적으로 문제점이 있는 건 다 따져 대응하고 소송할 거다. 그런데 저는 사실 사영화보다 우리 내부 조직이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 어떤 열패감이나 좌절감에 사로잡혀 무너지거나 각자도생을 생각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노동자고 노동자들은 각자도생할 수 없다. 그래서 노조가 중심을 잡고 탄탄히 뭉쳐 있어야 된다. 제가 항상 조합원들한테 얘기하는 게 지금 싸우지 않으면 앞으로도 영원히 못 싸우게 된다는 거다. 그래서 저희는 내부를 강하게 단결하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조정훈=지난달 29일이 신임 대표 공모 절차 마감 날이었다. 이제 2월 중순 정도면 대표가 선임될 텐데 사장 선임 구조 자체가 아무래도 서울시장의 선택권이 많아 일단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말까지 시한이 정해져 있고 새로운 조례안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새 대표가 오면 맞춰가면서, 또 서울시와도 협의할 수 있는 부분은 협의를 할 거다. 사실 노조 차원에선 대응 방안이 없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힘으로 밀어붙이니 전혀 막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직원들의 생존권 사수를 제1 목표로, 그러면서도 TBS의 저널리즘과 지역 공영방송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충분히 고민하다보면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논리가 생길 것 같다. 다만 개별 노조 차원에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든다. 이제는 전선이 더 넓혀져서 언론계 전체가 하나가 되는 분위기로 가야 할 것 같다.
-말씀대로 언론 탄압에 대응하려면 개별 노조 차원이 아니라 노조들의 연대와 언론계 차원의 연대, 더 나아가서는 법안 마련까지 필요할 것 같다.
강성원=저는 KBS 내부에 가령 YTN 민영화를 ‘너네 문제야’라고 선 긋는 구성원들은 없다고 생각한다.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DNA가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아마 그 DNA는 어느 순간 분명히 살아날 거라고 본다. 그리고 사실 저희가 산별이지 않나. 산별 조합으로 묶여 있는 그 정신도 연대에 기반한 것이다. 개인이, 개별 언론사가 각자도생으로 싸워서 어떻게 이기겠나. 절대 권력에 맞서려면 전 언론계, 범 언론계 차원에서 싸워야 한다.
고한석=사실 보도 분야에서도 협업할 수 있다. 언론사들끼리 협업한다는 게 대단히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협업의 가장 좋은 점은 같은 정보가 다양한 채널로 나가며 파급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 방송사와 신문사가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함께 자료를 분석해 동시에 보도한다면 그게 진짜로 싸우는 길이라고 생각을 한다.
조정훈=본질적인 질문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서 과연 언론이 왜 필요한가, 방송이 왜 필요한가, 기자는 뭐 하는 사람인가라는 정말 원론적인 질문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대답이 필요해 보인다. 그 안에서 연대든 뭐든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 같다.
-일각에서는 내부 쇄신이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있다. 언론 탄압 자체는 비판하더라도 보도의 편향성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인데,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강성원=편향성 시비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지배 구조의 개선이나 단협 등 제도적 장치를 만듦으로써 우리 스스로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만들어가야 되는 것이다. 그 노력들이 바깥의 눈높이에 많이 못 미칠 수는 있어도 내부에선 치열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최성혁=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서 MBC를 두고 노영 방송이다 민주당 방송이다 하면서 악의적인 프레임을 씌우는데, MBC의 모든 방송과 보도가 100%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해야 할 보도를 하지 않거나 하지 말아야 할 보도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MBC 노사는 단협에서 공정방송을 가장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로 마련해 놓고 있고, 민실위 활동도 그 어떤 언론사보다 활발하고 건강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것이 MBC에서의 오랜 투쟁의 산물이고 앞으로도 지켜야 할 가치라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다. 공정 방송을 위해 제도적인 안전장치를 확보하고 있느냐, 그리고 업무 수행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건강한 토론이 보장되느냐가 가장 핵심적인 것인데 MBC 같은 경우 적어도 현실과 타협하는 기자들이 많아지지 않도록 공정 방송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조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조정훈=정치권력과 시민 권력을 좀 나눠서 봐야 할 것 같다. 정치권력이 방송사 내부를 바꾸고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훼손하는 것은 끝까지 싸우고 지켜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시민 권력의 지적에 대해선 저희가 좀 더 빨리 그 부분을 고민했어야 되지 않았나하는 반성은 있다.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이나 심의 제도, 시청자위원회가 없는 것도 아닌데 시민들의 불만에 왜 더 귀 기울이지 못했는지, 왜 좀 더 빨리 행동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반성이다.
고한석=저희는 매일 아침 보도국 회의에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이 들어가 기록할 건 기록하고 공개할 건 다 공개한다. 이런 제도가 그냥 어디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한 가처분 소송에서 승소해 얻은 것이다. 공방위에서도 아주 격렬한 토론을 통해 방송의 중심을 맞춰가고 있다. 이렇게 편향성을 배제하면서 올바른 보도를 하려는 내부 노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염된 단어가 공정인 것 같다. 사람들 모두가 만족한 상태를 공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명박‧박근혜 때 부역했던 분들이 나가서 이상한 단체 만든 후 보도가 불공정하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만족하지 않는다고 보도가 불공정한 건 아니다. 더 이상 공정이라는 단어가 오염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정부 여당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
최성혁=여당에 당부한다고 듣겠나. 기대도 안 한다. MBC가 2012년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투쟁하다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후 10년째 진행됐던 재판이 최근 대법원에서 조합의 승소로 확정 판결이 났다. ‘공정방송은 근로 조건이다’라는 판정으로 업무방해 혐의가 무죄로 확정됐다. 그 말은 공정방송을 위한 단협 규정을 회사가 어겼을 때 우리가 싸우고 파업을 해서 그걸 막아내는 행위는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올해 벌어질 수 있는 싸움에서 우리는 그런 정당성을 갖고 싸워나가면 될 것이다. 관건은 그런 동력들을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역량, 그리고 시민단체들과의 연대, 그리고 언론계의 힘이다.
강성원=지금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이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아마 2월 국회 때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올라올 텐데 다들 우려하는 부분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인 것 같다. 저는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왜냐하면 본인이 자유를 가장 많이 외치지 않나. 민주주의 앞에 자유라는 단어까지 붙이며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데, 그 자유의 최고 가치는 언론 자유다. 언론 자유를 스스로 후퇴시키는 그런 악수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한석=‘돌발영상’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대통령실에서는 악의적, 여당에서는 악마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이분들의 세계관이 그런 것 같다. 다면적인 사람에게서 악함만을 찾아 적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검사의 사고방식이다. 언론은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을 양심껏 보도한다. 본인들이 정책을 잘하면 좋은 보도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우리 편 아니면 네 편으로 갈라서 너희들은 악의를 가지고 보도한다고 몰아세우고 없애버린다고 하면 안 되는 거다. 이분들의 언론관 자체를 바꿔야 된다고 저는 생각한다.
조정훈=저는 여당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축구 규칙을 갖고 야구를 진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여당에선 법대로 하겠다고 하는데 그 법이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법과 너무 괴리감이 크다. 결국 몇 년이 지나면 부끄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흑역사’가 될 텐데 다시 한 번 생각했으면 좋겠다. TBS는 좀 시간이 필요한 언론사다. 아직 3년도 안 된, 어떻게 보면 저널리즘의 원칙이나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 당장 오늘부터 완벽해지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권력을 잘 사용해야 한다. 정치권력이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훼손하면 결국 민주주의 정치를 후퇴시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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