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중대선거구제가 만능은 아니다

2023. 1. 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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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양당 복수공천 땐 되레 지역주의 강화
현역 기득권 포기·정당 공천개혁 동반돼야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새해 벽두부터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뜨겁다. 윤석열 대통령은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통해서 대표성이 좀 더 강화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지난해 10월에는 여야 의원 20여명이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비례대표제 확대를 골자로 하는 정치개혁 법안을 공동 발의하기도 하였다.

한 선거구에서 복수 당선자(2∼4인)를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더 많은 후보에게 원내 진입 가능성을 열어줘 일견 양당제 혁파에 효과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떠나 중대선거구제가 가장 우선으로 다루어지는 듯하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
정치권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항상 거대 양당 체계 종식과 양극화 완화, 대표성의 확대 및 강화, 또는 지역주의 해소 등 이유가 따른다. 윤 대통령도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지고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는 발언을 하였다. 지역주의 타파와 관련하여서는 영호남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자 1인만 당선되는 것이 아니라 중대선거구제 도입으로 2, 3위 후보도 당선된다면, 영남에서 더 많은 더불어민주당 출신 당선자가 나오고 또 호남에서 더 많은 보수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는 판단이 전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반드시 그러할까? 중대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개별 정당의 복수 후보 공천을 허용한다. 우리는 지방선거의 기초의회 선거에서 이미 중대선거구제를 경험하고 있는데,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 2, 3인 선출 선거구에 복수 후보를 내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1-가’, ‘2-나’ 등 정당을 가리키는 숫자와 출마 후보를 나타내는 순서 문자가 후보 기호에 동반 등장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렇게 복수 당선자를 허용하면 제3정당 소속 정치인이나 정치 신인에게 원내 진입 기회가 더 늘어날까? 답부터 말하자면 거대 양당에 복수 공천이 허용되는 한 제3정당에 허락되는 기회는 그렇게 늘어나지 않는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선거구 30곳에 중대선거구제가 시범 실시되었는데,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 아닌 정당이 당선된 사례는 전체 109석 가운데 광주와 인천의 4석(정의당·진보당 각 2석)에 불과하였다. 한 예로 서울 성북구 가선거구에서는 민주당에서 3명, 국민의힘에서 3명이 출마하여 민주당 3명과 국민의힘 2명이 각각 당선되었다. 물론, 거대 양당에서 복수 공천을 자발적으로 제한하거나 일부 공천을 청년,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에게 의무적으로 할애한다면 정치 신인의 진입장벽이 낮아질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그것도 정당의 공천 개혁과 제도화가 동반될 때에만 기대할 수 있다.

지역주의 타파 논의도 마찬가지이다. 영호남에서 양당이 복수 후보 공천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아마도 국민의힘이 TK(대구·경북) 지역에서 2, 3위 복수 당선인을 내거나 마찬가지로 민주당이 호남 지역에서 복수 당선인을 낼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중대선거구제 도입으로 오히려 지역주의는 더 강화되고 또한 그만큼 거대 양당 중심의 패권 정당 체계는 더 공고해질 수 있다. 지역·이념 기반의 진영 대립과 당파적 양극화가 오히려 지금보다 더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 도입된 준연동형 혼합제는 제도 자체의 복잡성뿐만 아니라 위성정당 문제 등으로 반드시 손볼 필요가 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 논의도 어느 정도 의미는 있으나 보다 본질적 관점에서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왜 지금 이러한 개혁이 필요한가에 대한 근거와 명분을 찾는 데에서 시작돼야 한다. 사표(死票)와 낮은 비례성이 문제라면 비례성 제고를 위한 선거제도 모델을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이고, 낮은 대표성이 문제라면 대표성을 보다 강화할 방향에서 개혁 모델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 선거제 개편 논의는 이러한 제도 개혁의 목적에 대한 논의와 근거가 다소 빈약하다. 풀어야 하는 문제의 명확한 진단과 제도 개혁의 기대 효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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