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저널리즘' 꿈꾸는 4명의 기자들... 그들의 이야기 들어보니
‘저널리즘Q클럽’에 모인 기자들 4명. 기자를 한 이유도, 기자로서 이루고 싶은 것도 제각각이지만, 이곳에 참여하는 이유는 똑같다. 더 좋은 저널리즘을 하기 위해서다. 누구보다 기자라는 업에 대해 고민했을 네 사람을 만났다. 어려운 언론 환경, 동료 기자들은 하나둘 떠나는 현실이지만 그럴수록 기자 개개인이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편집자 주]
오열하는 유족 취재하려 머리굴리던 내 모습…
[취재 현장서 기자 존재 고민한 2년차]
이태원 참사 희생자 빈소에서 ‘10시간’은 가슴 아픈 기억으로 두고두고 남았다. 한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지 못하고,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오열하는 유족을 취재할 요량으로 머리를 굴리던 자신이 너무 미웠다. 종합일간지 2년차 김혜영 기자(가명)는 그날 장례식장에서 10시간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취재하러 갔지만 기자는 아니었던 10시간의 ‘뻗치기’. 그 상황은 그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나’를 자꾸 되물었다. 취재 메모 못 올리고 기사 한 줄도 못 쓰고 감정이입만 반복하던 그 10시간이 정신적 고통으로 다가왔다. 참사 당일 밤 현장취재를 하면서도 덤덤했는데 첫 심리상담을 받던 날, 왈칵 눈물이 났다.
김 기자는 동년배보다 2년 늦게 입사했다. 고생을 각오했지만, 힘에 부치고 육체적으로 힘들 줄 몰랐다. 그래도 사회를 조금이나마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며 견디고 있다. 지금 맡은 출입처는 혜화 라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하철 시위를 벌이는 곳이다.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전장연을 취재했던 까닭에 장애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는 작은 기사들을 쓰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지난해 3월 회사 선배 권유로 스터디 모임에 참여했다가 ‘저널리즘클럽Q’와 인연을 맺었다. 여기저기 현장을 이동하고, 하루하루 취재하면서 기사를 쓰지만 뭔가 휘발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은교 경향신문 기자의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기획 후기나 이샘물 동아일보 기자의 ‘히어로콘텐츠’ 관련 강의를 들으면서 “영양제 맞는 느낌”이 들었다. “맞아! 나도 이런 거 하려고 기자를 시작했지”하는 각성과 함께.
“사실 잠 좀 더 자고 싶었고, 살짝 귀찮기도 했어요. 근데 강의를 듣고 ‘잘 들었다’ ‘다음에 또 했으면 좋겠다’ 싶었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이슈를 비틀어보거나 시각을 달리하거나 다른 기획 아이템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거든요. Q모임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안 할 이유가 없더군요.”
그는 기자 일을 배우는 단계라 여러 부서를 거치며 경험을 쌓겠다고 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텍스트와 영상을 융합한 기사, 다큐멘터리와 영화 등 멀티미디어 요소가 들어간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기사를 쓰고 싶다. 좋은 저널리즘을 꿈꾸는 2년차 기자의 바람이다.
“좋은 기사 쓰는 법, 왜 아무도 안 알려주나요”
[스터디 모임으로 답답함 해소한다는 9년차]
박동해 뉴스1 기자는 ‘저널리즘클럽Q’ 외에도 공부 모임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사람이다. 비슷한 시기 언론사에 입사한 동료들과 만든 ‘기사 연구회’ 모임을 지난 2019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턴 사내에서 후배 5명을 데리고 ‘스토리텔링 책 읽기’ 소모임을 열고 있다. 지금까지 퓰리처상 수상작인 보도를 책으로 엮은 <믿을 수 없는 강간이야기>, <재난 그 이후> 등을 함께 읽었다. 술 대신 책 읽기를 권유하는 선배라니. “선배가 공부하자고 해 후배들이 귀찮아할 수도 있다”며 박 기자는 둘러댔지만, 후배들 입장에선 함께 좋은 기사를 읽으며 고민을 나누는 선배가 더 고맙지 않을까.
올해 9년차인 박 기자는 통신사 특성상 대체로 깊은 내용의 기사를 쓰지 못한다는 답답함을 “해소하는 창구”가 필요했다. “기자가 되고 좋은 기사가 뭔지 고민하게 됐어요. 기사 잘 쓰라는 얘기는 항상 듣는데 어떤 식으로 취재해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지 같은 논의는 편집국 내부에선 나오기 어려운 구조더라고요. 결국 우리가 자발적으로 만들어서라도 얘길 나눠야겠다고 싶었어요.”
본격적인 기사 공부를 시작할 때 마침 기획취재부서로 인사가 났다. 예전엔 ‘기사 아이템’ 위주로 생각했다면 공부를 하고부터는 기사를 어떻게 ‘쓸 지’에 대해 고민했다. 지난 2021년 보도한 <스물넷 청년의 죽음> 시리즈는 그 노력의 결과였다. 보육원 출신 한 20대 청년의 죽음을 되짚어보는 기사다. 보도 이후 한 비영리 재단은 후원 의사를 내비쳤고, 청년의 보육원 동료는 원망했던 가족을 다시 찾고 싶다고 했다. 박 기자는 작은 변화를 지켜보며 어떤 감동을 느꼈고, 아직은 희망이 있구나 싶었다.
요즘 그가 드는 생각은 기자들이 자기 일에 만족하고, 좋은 기사를 쓸 수 있게 하려면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과 응원이 필요하다는 거다. “‘나는 왜 일하는 거지, 이 정도의 보수를 받고 일하는 게 맞는 건가.’ 정말 열심히 해서 기사를 썼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크게 낙담하면 이런 연쇄 작용이 일어나요. 뉴스룸에서도 우리가 이 업을 통해 뭘 하겠다는 건지 끊임없이 기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봅니다. 현실이 너무 힘드니 매일매일 소모되는 기사를 쓰라고 하면 과연 기자들에게 동기부여가 될까요?”
단독·특종 아닌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도 중요
[현장서 이웃 목소리 보도하고 싶은 5년차]
취재 현장에서 시민들을 만난 이야기를 할 때면 최예은(가명) 기자의 눈빛과 말투는 생기가 돌았다. 그는 인턴 기자 시절 주변 이웃들의 소소한 목소리를 전하는 데 재미를 느껴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고된 일상 속 그래도 기자 일에 보람을 느낀 건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응원 덕분이었다. 이번 연말에도 그는 거리로 나섰다.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직접 발품도 팔았다.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한 해 동안 힘들었던 일, 새해 소망 등을 들었다. 최 기자는 그 과정이 “되게 행복하다”고 전했다.
5년차 방송사 기자인 그는 기획취재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경찰서에 출입하며 단순 사건사고 위주의 기사를 쓸 때만 해도 “잘 한 일이 맞나” 싶었다. 상대적으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고, 직접 현장에 나가 여러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지금 부서에선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기자로 일하다 보면 단독, 특종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최 기자는 노인들을 위한 영화관이라든지, 엉뚱한 프로젝트를 하는 대학생들처럼 관심 받지 못하지만 이들의 따뜻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그래서 단독·특종하는 기자만을 유독 인정하는 회사 내부, 언론계 분위기는 때론 그를 막막하게 한다. 강연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식의 언론상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저널리즘클럽Q의 창립 취지를 듣고 반가운 마음이 든 이유다.
“사실 기자상에 선정되는 보도 대부분 단독, 특종 기사잖아요. 최선을 다해 인터뷰하고 재밌게 읽힐 수 있게 기사를 썼는데 단독을 못한다고 해서 좋은 기자가 아닌 건지 회의가 들 때도 있어요. 상을 못 받는 저나, 동료들은 어디서 좋은 기사 썼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싶었죠. 독자가 감명 깊게 읽고, 소소한 얘기라도 울림을 주는 기사를 발굴한다고 해 많은 기자들에게 힘이 될 것 같아요.”
최 기자는 저널리즘클럽Q에 참여하기 전부터 ‘N클럽’이라는 공부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기자들이 각자 뽑아온 좋은 기사들을 보며 “기사 맛을 살릴 수 있는” 정보들을 얻고 있다. 동료들과 공부하는 건 취재 활동에 좋은 자극이 된다. 동료들이 지켜본다는 생각에 “더 애쓰게” 되고, 취재원이 익명을 요구하면 “머리에 경보가 울려” 한 번 더 부탁해보려 노력한다.
기자로 한 길만 걸을 거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진 못한다. 그래도 그가 이 일을 계속하는 건 재밌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연고도 없는 전남 어느 섬에서 만난 사람들, 기자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이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세계를 넓힐 수 있다는 점이 이 일의 장점이라고 했다.
“‘이 기자 기사 재밌다, 아이디어 좋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사회, 정치, 경제 등 모든 뉴스엔 일반 시민들 얘기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 거 같아요. 결국 뉴스를 보는 것도 시민이고 가닿아야 하는 것도 시민이잖아요. ‘저게 기삿거리가 돼?’ 할 수 있겠지만 이웃들 얘기를 전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민해보고 있어요.”
“한 문장 때문에, 누군가 다칠 수 있으니까요”
[기사 한 문장의 무게를 느끼는 5년차]
인터뷰 약속을 두 번 미뤄야 했다. 두 달 공들여 취재한 기획기사 출고가 막 시작됐기 때문이다. 인터뷰 당일에도 바빠 보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 좀 해야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노트북을 열고, 수십 장이 넘는 자료를 뒤적이며 오랫동안 통화했다.
한 해가 저물도록 연차를 5일밖에 못 썼다는 5년차 중앙일간지 이대현 기자(가명). 그는 2019년 여름, 작게나마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겠다는 생각으로 기자가 됐다. 몇몇 부서를 돌아 지금은 기획취재부서에서 일한다. 지난여름에는 오랜 기간 지역의 한 현장을 찾았다. 신분을 밝히자 곧바로 돌아온 욕설. 감내해야 한다지만 ‘내가 왜 기자가 됐나’ 자괴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확인을 위해 현장을 두세 번 더 찾는 등 치열하게 취재했다.
그는 1년 넘게 ‘N클럽’이라는 공부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좋은 기사를 쓰고 싶은 갈망 때문”이다. 3주마다 토요일 오전에 시작하는 모임. 전날 늦게까지 마감 전쟁을 치르고 오롯이 쉬어도 모자랄 판에 과제를 주섬주섬 챙겨 집을 나선다. 피곤이 몰려오지만 각자 뽑아온 좋은 기사를 발표하고 토론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좋은 기사 써야지,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써봐야지.”
그런 그가 ‘저널리즘클럽Q’에 참여한 까닭은 무엇일까. 좋은 콘텐츠를 고민하고 나누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여러 어려움을 함께 얘기해보며 기자 일도 지속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기자들이다.
매일 발제하고 매일 깨지고 매일 마감 스트레스가 있지만, 보상은 별로고 이 업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회의감. 그럼에도 전화 한 통 더 돌리고, 한 사람 더 만나보려 애쓰는 그에게 어떤 기자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기사 한 문장의 무게를 아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 한 문장 때문에 소송에 걸릴 수 있고, 한 문장 때문에 누가 다칠 수도 있잖아요. 한 문장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요. ‘저 기자 기사는 믿고 볼 수 있다. 취재는 확실하게 하고 썼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저널리즘클럽Q'가입을 희망하는 기자는 qclub2023@gmail.com으로 문의 및 신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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