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이냐 관광이냐'....재생에너지 놓고 갈등 커진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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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 넘는 높이에 굉음을 내는 풍력발전소 주변에선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스페인 정부가 유명 관광지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위치한 이곳에 재생에너지 확대를 이유로 대규모 풍력발전 단지를 조성하고 있어서다.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 등 유럽 각국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빠르게 늘리려 관련 건설 인·허가 규정을 대폭 간소화한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스페인에서는 높이가 100m가 넘는 풍력발전기가 전국 곳곳에 들어서면서 관광객은 물론 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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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각국,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올인
경관 훼손 등으로 관광 산업 타격 불가피
“100m 넘는 높이에 굉음을 내는 풍력발전소 주변에선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스페인 북서부 지역 갈리시아에서 여관을 하는 마리아 마틴은 분을 참지 못했다. 스페인 정부가 유명 관광지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위치한 이곳에 재생에너지 확대를 이유로 대규모 풍력발전 단지를 조성하고 있어서다. 마틴은 “풍력발전소는 조용한 순례길의 이미지를 망치고 문화재 보존에도 악영향을 준다”며 “주민들과 항의 시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놓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중이라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현지시간) 전했다. 유럽 각 정부는 재생에너지 발전을 최대한 늘리려고 하지만, 관련 발전 시설이 들어선 지역 주민들이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다. 발전 시설이 대부분 도심과 떨어진 한적한 관광지나 유적지에 들어서면서 유럽 관광산업이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럽 제조업체들,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숨통'
WSJ에 따르면 현재 유럽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필사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내 발전용 천연가스 가격이 3배 가까이 치솟으면서 자동차와 화학, 항공 등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역내 제조업체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부족으로 유럽연합(EU) 연간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에만 0.5%포인트 감소했고, 올해 1분기에도 0.1%포인트 줄어들 걸로 추산된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역 풍력발전소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미국 알루미늄 제조기업 알코아는 “스페인에는 석유나 가스가 없지만 바람은 많다”며 “풍력 발전 설비가 없으면 공장 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 등 유럽 각국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빠르게 늘리려 관련 건설 인·허가 규정을 대폭 간소화한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이들 정부는 환경단체들이 공사를 지연시키거나 막는 수단을 무력화하는 법안도 만들고 있다.
이런 정부의 발 빠른 대처 덕에 폐쇄한 공장 문을 다시 연 기업도 있다. 영국 실리콘 제조업체인 페로글로브는 지난해 천연가스 수급 문제로 스페인 내 공장 3곳을 폐쇄했었다. 하지만 올해 재생에너지 발전업체와 전력공급 계약을 맺으면서 공장을 재가동하기로 결정했다고 WSJ는 전했다.
태양광 시설, 막대한 부지 필요..."랜드마크 훼손"
그러나 유럽 내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우려를 보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선 경관 훼손 등 국토가 어느 정도 손실되는 것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발전업계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을 하려면 빛을 모으는 집광판인 태양광 패널을 충분히 널어놓을 공간이 필요하다. 보통 원전 1기의 발전 용량인 1기가와트(GW) 규모의 태양광 시설을 지으려면 서울 여의도 면적에 4.5배(1,320만㎡)나 되는 부지가 개발돼야 한다.
특히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이 유적지 인근에 들어서면 문제가 더 커진다. 이탈리아 문화부도 '유적지 훼손'을 이유로 최근 중부 지역 라치오주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라치오주는 과거 이탈리아를 지배한 에트루리아 문명의 중심지다.
관광지 인근에 들어선 발전 시설도 논란거리다. 스페인에서는 높이가 100m가 넘는 풍력발전기가 전국 곳곳에 들어서면서 관광객은 물론 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스페인을 여행하다 보면 풍력발전기를 보지 않는 게 더 어려워졌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위치한 갈리시아 지역 주민은 “순례자들은 이제 풍력발전기에서 들리는 쇳소리와 함께 여행을 해야 한다”며 “관광업을 주요 수익원으로 하는 일부 지역엔 치명타가 됐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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