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했다"며 여성 단체에 기부…'감형 꼼수', 막을 방법 없나

박예린, 박세원 기자 2023. 1. 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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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성범죄 재판을 받는 가해자들이 낮은 형을 받으려고 장기기증 서약서까지 온갖 서류를 제출하고, 서로 그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고 어제(2일) 보도해드렸는데, 심지어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에 속이 보이는 기부를 하고 형을 감경받은 사례도 확인됩니다.

먼저 박예린 기자의 보도 보시고 얘기 더 나눠보겠습니다.

<기자>

2019년 불법 촬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공무원.

사회복지기관에 정기 후원금을 낸 점이 참작돼 2심에서 벌금형으로 감형됐습니다.

재판부를 향한 반성의 메시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성범죄 피해자 지원 단체에까지 검은 손길을 뻗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불법 촬영을 하다 기소된 A 씨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정기 후원금을 보낸 뒤 1심 벌금형이 2심에서는 선고유예로 낮아졌습니다.

뒤늦게 숨은 의도들을 파악한 단체들은 기부금 반환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김혜정/성폭력상담소 소장 : 저희 후원의 목적과 위배되는 후원이라고 하면서 돌려 드리거나 아니면 후원을 거부하고 있고요. 증명서 발급을 굉장히 까다롭게 지금 제한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소속 7개 단체의 기부자 신원을 확인해봤습니다.

그랬더니 기부금 전달 의사를 밝힌 사람 가운데 87건이 성범죄 가해자로 드러났고, 실제 기부금을 납부한 경우도 14건이나 됐습니다.

기부를 거부한 단체들에게는 '꼼수'가 동원됐습니다.

변호인이 가해자 명의로 기부하거나, 부모가 가해자 명의로 기부하는 경우 등 대리 기부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방법들은 대부분 가해자 변호인 측에서 알려주고 실무 대행까지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성범죄 피고인 중 70.9%가 '진지한 반성'을 이유로 감형받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짜 반성'이 판치고, 무엇보다 중요한 피해자의 의사를 재판에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부족합니다.

[김혜정/성폭력상담소 소장 : (판사가) 피고인의 사정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이런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 상업화 되어 있는 진지한 반성이라고 하는 게 성범죄에서는 없어져야 하고….]

(영상취재 : 윤 형, 영상편집 : 이승희, CG : 장성범·홍성용, 자료제공 : 송기현 의원실, 출처 : 김보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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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 내용 취재한 박세원 기자와 이야기 더 나눠보겠습니다.

Q. '꼼수 감형' 방법 횡행…어느 정도인가?

[박세원 기자 : 피해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재판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그런 꼼수들이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일단 반성문과 탄원서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고요, 또 장기기증 서약서까지 등장을 했습니다. 가입자가 10만 명이 넘는 인터넷 카페가 있는데요. 그곳에서는 또 감형 팁들이 공유가 되고 있었고 여기서 입소문이 난, 한 성희롱 방지 예방 교육 기관이 있는데 여기서는 감형을 노린 수강 신청이 폭주를 하자 프로그램을 폐강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또 앞서 보신 것처럼 성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단체에 기부금을 내고 이 기록을 법원에 제출하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Q. 감형 위한 '꼼수', 걸러낼 방법 없나?

[박세원 기자 : 먼저 법원에 제출된 이런 엉터리 양형 자료들이 제대로 걸러지지 못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서 장기기증 서약서 같은 경우에는 성명과 서명이 각각 다르게 적힌 경우가 확인이 됐는데, 재판부는 이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반성한다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또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경청 되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저희가 만난 피해자도 가해자가 자신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는데도 각종 서류만으로 반성이 인정되었다며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Q. 제도적 보완, 어떤 방법 있나?

[박세원 기자 : 우선 검찰과 법원, 그리고 정치권까지 함께 고민해야 할 사안으로 보입니다. 공소 유지 역할을 맡은 검찰은 피고인과 조력자들이 만든 감형 자료의 진위를 1차로 가려줘야겠고요, 재판부도 최종 크로스 체크를 통해서 이게 거짓 반성인지 아닌지 제대로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또 대법원의 양형위원회에서 성범죄 양형 기준을 정의를 해 뒀는데요. 여기서는 진지한 반성의 정의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진정성을 확인할 자료들이 오염이 되고 있고 이걸 제대로 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저희가 국회를 취재를 해 보니까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의견을 양형 참작 사유에 명시를 하는 그런 형법 개정안까지 발의가 되어 있었는데, 1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영상취재 : 이용한·김승태, 영상편집 : 하성원, CG : 강경림)

박예린, 박세원 기자yea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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