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장애인도 시민이다, 누가 시민의 지하철 탑승을 막나
대중교통 이용은 시민의 권리다. 모두가 아는 명제를 굳이 언급하는 까닭은, 시민이 지하철 탑승을 거부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서울지하철 탑승 선전전이 서울교통공사에 의해 제지됐다. 교통공사 측은 경찰력을 빌려 장애인들의 탑승을 막았다. 장애인들은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도, 흉기를 소지하지도 않았다. 서울시와 교통공사 측은 지하철 운행의 ‘정시성’을 저지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구차하다. 정시성이 인권에 앞설 순 없다.
장애인들과 교통공사 간 충돌은 3일에도 이어졌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이날 오전 8시쯤 서울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열차에 탑승한 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내렸다. 전장연 측이 지하철 탈 역을 사전에 공지하지 않아, 이들은 제지받지 않고 열차에 탈 수 있었다. 그러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다시 삼각지역으로 가는 열차에 오르려 하자 제지당했다. 전장연의 승하차 시위는 이날 오후 결의대회를 끝으로 종료됐다.
전장연이 지하철 선전전을 계속하는 이유는 장애인권리 예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2023년도 예산안에서 장애인권리 예산은 전장연이 요구한 증액안의 0.8%만 반영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교통공사가 전장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교통공사는 2024년까지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전장연은 열차운행을 5분 초과해 지연시킬 경우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조정안을 내놨다. 전장연은 이를 받아들였으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1분만 늦어도 큰일 나는 지하철을 5분이나 연장시킬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조정안을 거부했다.
시민들 가운데는 장애인의 권리 요구를 이해하면서도 ‘왜 굳이 타인들을 방해하는 방식이어야 할까’ 싶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돌아보자. 전장연이 지하철 선전전을 하기 전에, 비장애인 서울시민들이 장애인 이동권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 또한 생각해보자. 지금은 당연시되는 소수자들의 권리도, 쟁취되기까지 지난한 투쟁을 거쳤음을. 20세기 초 영국에선 ‘서프러제트’로 불린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돌을 던지고, 시위를 조직하고, 감옥에서 단식했다. 당시 신문 기사 삽화에서 이들은 마녀 같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결국 1918년 30세 이상 영국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출근길 시민의 불만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다만 약자인 장애인 대신 힘과 돈을 갖고 있는 서울시·기획재정부를 향해 ‘내 출근시간을 지켜달라’고 외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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