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세계 영향력 6위
흔히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통계가 매번 현실을 적확히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취업률이 역대 최고라고 하는데 주변의 백수는 늘어만 간다. 성과에 목마른 정부들이 질 나쁜 일자리를 취업률 통계에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지표물가보다 체감물가가 늘 높은 것도 마찬가지다. 품목 선정이나 가중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일본 경제학자 가도쿠라 다카시는 <통계센스>라는 저서에서 “숫자의 이면을 읽는 것은 현실의 이면을 읽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순위조사 전문매체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NWR)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가장 강력한(Most Powerful) 국가’(www.usnews.com/news/best-countries/rankings/power)에서 한국이 미국·중국·러시아·독일·영국에 이어 6위에 올랐다. 프랑스(7위)·일본(8위)·아랍에미리트연합(9위)·이스라엘(10위)을 제쳤다. 전년도 조사에서는 일본이 6위, 한국이 8위였는데 순위가 뒤바뀌었다고 한다. 경제적 영향력, 수출, 정치적 영향력, 국제동맹, 군사력, 지도자 등 6개 지표가 동원됐으며, 전 세계 1만7000여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4~7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반가운 뉴스인데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경제적 영향력(79.8점)과 수출(84.0점), 군사력(79.1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정치적 영향력(48.6점)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지도자(22.5점) 부문에서 상위 10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 지지율이 추락하는 일본(44.3점), 4년 동안 5차례 총선을 치르는 등 정치적 불안이 극심했던 이스라엘(25.8점)보다 낮았다. 가도쿠라의 ‘통계센스’를 적용하면 지도자 리스크가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셈이다.
또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가장 강력한 국가’ 부문은 국가를 평가하는 10개 범주 중 하나일 뿐이다. 종합순위 격인 ‘2022 최고의 국가들(Best Countries)’에서 한국은 2021년보다 5계단 떨어진 20위를 기록했다. 기업가 정신(6위), 문화적 영향력(7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사업 개방성(76위), 모험(51위) 등에서 순위가 낮았다. 겉으로 보이는 순위에 도취할 상황이 아니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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