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LG아트센터장 “명품작부터 창작공연까지 무대 올려 다양한 실험할 것” [세계초대석]
부담 크지만 새로운 가치 부여 최선
대극장뿐이던 역삼동선 창작에 한계
가변형 블랙박스 공연장 갖춰 ‘여유’
파리오페라발레단 30년 만에 내한
시그니처홀 완전가동 첫 무대 될 것
공연 시간대만 개방하는 관행 깨고
야간에도 극장 공개… 시민 쉼터로
이득보다 문화향유 기회 확대 노력
지난해 가을 개관한 ‘LG아트센터 서울’을 만나면 드는 생각이다. 서울 마곡지구 ‘서울식물원’이라는 특별한 영역 안에 ‘안도 다다오’라는 당대 천재가 만들어낸 구상을 온전히 살린 여러모로 특별한 공간이다. 걸출한 건축가의 DNA가 확연히 드러나는 건물에서 발산되는 아름다움과 지하철 플랫폼에서 객석까지 한걸음에 연결되는 관객 편의성, 그리고 제작·출연진에게 완벽한 편의를 제공하는 무대 뒤편의 여유로움까지 비교 대상을 찾기 쉽지 않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시절 ‘공짜표’를 없애고, 고급스러운 공연으로 채워진 연간 프로그램 라인업을 선보이며 우리나라 공연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린 LG아트센터에 어울리는 새 터전이다. 남은 과제는 좋은 극장에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무대에 올리는 것. 그것이 개관 멤버로 1996년 LG아트센터에 입사한 ‘사원번호 6번’ 이현정 센터장의 가장 큰 사명일 것이다.
지난달 21일 이 센터장을 만나 LG아트센터 마곡 시대를 연 소감을 묻자 “중압감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20여년 전 신입사원 시절 역삼동 LG아트센터 개관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는 기대와 패기가 넘쳤다면 지금은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너무 크다. LG아트센터 명성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잘 알기에 즐겁고 기대가 된다기보다 지금 명성을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주는 극장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고 말했다.
“3월에 이사 와서 7월부터 시운전을 했다. 테스트 공연을 다섯 번 정도 하고 10월 개관 후 20개 공연을 올렸다. 수치로는 기대 이상이다. 유료 관객 점유율이 82% 정도 나왔는데 역삼에서도 80% 정도였다. 무대에 선 아티스트로부터 들은 의견에서도 시작은 굉장히 안정되게 잘 됐다고 판단했다.”
―올해가 새 극장의 본격적 첫해인데 어떤 포부인가.
“366석인 가변형 소극장 ‘U+스테이지’는 창작자와 함께하는 작업이 많고 또 가족 관객을 개발하는 클래식 프로그램 등은 추후 공개한다. LG아트센터 전통의 ‘콤파스’ 시리즈는 준비가 됐다. 시작은 파리오페라발레단(POB)의 ‘지젤’이 열고, 현대무용으로 지금 유럽에서 가장 각광받는 안무가 샤론 에얄과 다미안 잘레가 더블 빌로 만드는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컴퍼니의 ‘사바(SAABA)’와 ‘카이츠(Kites)’를 선보인다. 또 프렐조카주 발레단이 이번에는 고전을 굉장히 모던하게 해석한 ‘백조의 호수’로 찾아온다. 적군을 피해 나무 위에서 살아간 두 일본군 병사의 이야기를 그린 연극 ‘나무 위의 군대’도 무대에 올린다. 대극장에선 양정웅 연출의 ‘파우스트’를 공연한다. 또 역삼동에서 네 번 공연한 ‘스노우쇼’가 7년 만에 다시 온다. 여기에 윈턴 마살리스 재즈 공연과 빈·베를린체임버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올해 라인업이 구성됐다.”
―어느 무대 섭외가 가장 어려웠는가. 아무래도 POB 내한이 주목된다. 주 공연장인 LG시그니처홀이 오케스트라 피트도 충분해서 더욱 기대되는 무대다.
“이번이 30년 만의 내한공연이다. 발레 전문가 사이에서도 POB가 와주길 바라는 기대가 컸는데 공연 일정이 너무 많은 단체다. 그런데 이번에 기회가 딱 맞아서 내한할 수 있었다. 투어 인원이 130명에 달한다. 사실 개관축제 때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활용하는 공연은 못 했다. 어떤 면에선 시그니처홀을 완전하게 가동할 수 있는 첫 무대가 될 것이다.”
―‘코리올라누스’로 역삼동 시절 탁월한 무대를 보여준 양정웅 연출은 셰익스피어 전문인데 이번엔 괴테의 ‘파우스트’인가.
“분명 클래식 전용홀이 아니기 때문에 가지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가변형으로 잔향을 1.2∼1.8초로 설계해서 그 수치가 측정됐다. 그래도 ‘드라이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다목적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있다. 전용홀과 비교할 수는 없다. 또 하나, 새 공연장 음향이 완성되는 데는 나무가 마르고 온도 변화를 겪는 등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음향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어떤 부분이 혹시라도 흡음하는지 지금 하나하나 찾아가고 있다. 점점 좋아질 것이다.”
―LG아트센터는 해외 명품 공연으로 정평 났는데 섭외 비결이 무엇인가.
“세계 공연계라 해도 업계가 큰 건 아니어서 좋은 경험을 하고 나면 자랑도 하고 싶고 이렇기에 다들 LG아트센터에 와보고 싶어 한다. ‘공연 한번 하고 싶다’ 식으로 매우 많은 이메일을 받는다. 한 번 공연한 단체들은 다시 오고 싶어 한다. 그런데 조건을 협의하는 게 어렵다. 특히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이후 항공료 상승 등으로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비싸졌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후년으로 미룬 작품들도 있다. 비용이 오르지만 그걸 관객 부담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 가치를 나누고 문화 향유의 기회를 더 주고자 하는 게 우리 목표다. 관람료 많이 받아서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는 게 아니다. 그게 LG아트센터의 가치이고, 손해를 보면서도 좋은 공연을 올리려는 마음은 다른 공연장도 마찬가지다.”
―LG아트센터 가치를 언급하니 궁금한 게, 공연시간대만 문 여는 극장 관행을 깨고 밤늦게까지 일반에 극장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모두 너무 기뻐하시고 너무 축하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문화계도 한 분야에서 자기 길을 걸었던 사람이 언젠가는 수장이 될 수 있다’는 모범 사례를 보고 싶었던 염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해야 결국은 전문가가 운영해야 잘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겠구나. 내 후배들을 위해서 정말 내가 잘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공연계에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궁금하다.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안타까운 게 아주 똑똑한 후배들이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서, 여건이 어려워서, 지쳐서 포기하거나 다른 분야로 가는 모습을 많이 본다. 저는 재정적으로 단단한 극장에서 매우 운 좋게 근무를 했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고, 의미가 무엇이고, 역할이 무엇인지 설득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고 지쳤던 순간도 많았다. 그래도 버텼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올라왔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보람과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면서 그냥 어렵더라도 묵묵히 앞을 보고 걸어갔으면 좋겠다.”
대담=박성준 문화체육부장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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