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글로벌 복합위기와 한국정치

한겨레 2023. 1. 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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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2023년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세상읽기]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새해 첫날은 예년처럼 따뜻한 덕담과 축복의 말들로 시작됐지만, 세계는 많은 동시다발적 위기들이 뒤얽힌 채 2023년을 맞았다. <뉴욕 타임스>, <가디언>, <르몽드>, <아사히신문>, <슈피겔>, <이코노미스트> 등 세계 주요 언론들은 헤드라인 뉴스로 경제불안과 우크라이나 전쟁, 푸틴의 러시아, 에너지·기후위기, 이민과 테러 등을 다뤘다.

인류는 지난해 바이러스의 공포에서는 약간 벗어났지만, ‘팬데믹 이후’의 세상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고 에너지와 식량 공급 체계를 동요시켰다. 그런 중에도 유럽연합(EU)은 탈탄소 플랜을 가속했지만 세계적으로 기후위기 의제는 약화했다. 전쟁은 또한 난민 문제를 가중했고, 불평등과 빈곤에 관한 공론장은 더 좁아졌다.

‘글로벌 복합위기’(global polycrisis)는 이처럼 여러 중대한 위기들이 동시에 일어나 서로 영향을 미침으로써, 미래의 불확실성과 통제불가능성 문제가 커지는 상황을 가리킨다. 단순히 해결해야 할 위기가 여럿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여러 위기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엮여서 서로 악영향을 끼치는 ‘악순환의 고리’를 가속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감염병, 경제불안, 전쟁과 지정학적 역학, 에너지위기, 기후재난,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갈등 같은 여러 문제가 동시에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의 역량, 사람들 이해관심의 차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갈등구조 때문에 이 모든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더구나 하나의 위기에 대한 대응이 다른 위기를 악화시킬 수도 있기에 문제 해결을 위한 선택지는 더욱 제한된다.

이런 상황이 종종 초래하는 정치적 결과는, 포퓰리즘과 권위주의, 증오정치에 대중이 취약해지는 것이다. 전염병, 전쟁, 실업, 가뭄 또는 홍수, 에너지난 등 여러 겹의 재난과 불안이 덮쳐온다. 그때 누군가 당신을 진정으로 대변해주겠다고 나선다. 또는 법과 원칙으로 일거에 해결하겠다고 한다. 또는 노조, 페미니스트, 이주자, 장애인 같은 자들이 문제라고 지목한다. 이런 유혹의 힘은 강력하다.

복합위기 현실이 요구하는 정치는 그와 정반대다. 개방적, 협력적, 통합적인 거버넌스만이 문제를 풀 수 있다. 소수 통치세력만이 이 현실을 감당할 수는 없기에 문제 진단과 해결 과정에 당사자와 전문가들을 폭넓게 참여시켜야 한다. 대안을 구체화하는 과정에 여러 부문 주체들이 협력해 조정된 안을 도출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 과정을 지휘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도 그러한 복합위기의 세계 안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의 지정학이 거기에 중첩된다. 2023년 한국 사회를 흔들 중대 변수는 미·중·러 패권경쟁, 세계경제 불안정, 기후위기 악화 등 글로벌시스템 영향과 더불어, 북한과 군사적 긴장 고조의 위험이 있다. 이러한 세계적, 대외적 변수들은 국내 여론과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한국 보수정치는 이런 시대의 위기들에 응전할 비전도, 넓은 동의 기반을 창출할 구상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노조’, ‘시민단체’, ‘민주화 세력’에 범죄, 위선, 이적집단의 이미지를 덧씌우거나, ‘선제타격’, ‘확전불사’ 같은 말로 북한에 엄포 놓는 식으로 보수 유권자들을 결집해 이득을 취하려 할지 모른다. 그런 편법은 정략적으로 유용할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문제 해결과는 동떨어진 무책임한 대응이다.

더 문제는 현 집권세력뿐 아니라, 야당 역시 갈림길에 선 전환시대에 대응할 노선과 정책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대 양당 내에서도 지지층을 자극하고 상대편에 대한 증오를 증폭시키는 기술에 숙달된 무능한 자들이 고도로 발전된 대한민국을 통치한다. 그래서 여당 비판으로 야당 좋은 일만 시켜주는 건 결국 도돌이표다. 이 폐쇄된 카르텔의 경쟁적 과두제를 혁파할 과감한 도전과 실력경쟁이 새해에 시작돼야 한다.

뒤로 굴러떨어지는 수레를 온 힘을 다해 떠받치고 있는 사람은 그 자신도 뒷걸음질 치기 마련이다. 수레를 앞에서 끌어당길 힘을 가진 사람만이 수레와 자기 자신을 앞으로 밀고 갈 수 있다. 우리 정치와 사회에 그럴 저력이 있는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없다면 어떻게 만들 것인가. 새해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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