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아픈 아이들 치료할 의사가 없다, 왜 [프리즘]
[한겨레 프리즘]
[한겨레 프리즘] 황춘화 | 사회정책팀장
“정말 아이가 잘못되는 줄 알았어.”
지난 연말 강원도 홍천에서 7살 아이와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을 전전했던 이야기를 하던 지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여행지에서 잘 놀던 아이의 체온이 밤늦게 갑자기 40도까지 치솟았고 아이는 열경련을 일으켰다. 119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을 수소문했지만 “소아과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울며 사정한 끝에 아이는 응급실이 아닌 구급차에서 해열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이후 소아 야간진료가 가능한 곳을 수소문해 도착한 경기도 한 병원은 독감·코로나 환자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응급실 못 간 애들 거기 다 모여 있더라. 애 수액 맞히면서 생각했어. 진짜 여기 의사들이 의인이다.”
서울 강남역을 나서면 한 빌딩에 피부과·성형외과가 켜켜이 쌓여 있는 대한민국에서 ‘의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지난해 7월엔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수술할 의사가 없어 숨진 사실이 알려지며 외과 인력 부족 문제가 드러났고, 최근엔 전공의 부족으로 수도권 대학병원 3곳이 소아청소년과 응급실 진료를 중단하며 소아 진료체계 붕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외과와 소아청소년과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생명유지와 관련성이 높은 필수의료지만 의사들에겐 ‘기피 전공’으로 인식돼 10년 이상 전공의(레지던트)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병원협회의 2023년 상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를 보면, 소아청소년과는 정원의 16.4%, 외과는 65.5%만 지원해 또 미달을 면치 못했다. 누적된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응급진료 및 입원 중단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17년째 연간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신입생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교육부는 보건의료인력 수급계획을 짜는 보건복지부에 의대 정원을 늘려달라는 협조 공문을 보냈다. 2020년 8월 코로나19 당시 문재인 정부가 10년간 의사 4000명 추가 양성 방안을 추진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 파업 등 거센 반발에 부딪혀 백기를 든 지 2년여 만이다.
2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필수의료 상황은 더 악화했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의사는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교육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자 “숫자놀음이나 인원만 가지고 발표해선 안 된다”며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의료계는 정부가 의사 부족의 근거로 제시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 통계를 숫자놀음이라고 비판한다.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한의사 제외)는 2.1명으로 오이시디 평균 3.7명의 56% 수준이다. 나아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25년이면 5561명, 2035년엔 2만7232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 증원 반대에서 더 나아가 정원을 단계적으로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0년부터 최근 10년간 활동 의사 수는 31.5% 급증했지만 인구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으니 인력 공급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는 논리다. 소아청소년과 등 일부 진료과목의 의사 부족은 수가 인상 등 유인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피부로 의료 붕괴를 느끼는 지금 얼마나 많은 시민이 이런 주장에 동의할지 의문이다. 2019년 설 연휴 밤샘 근무를 하다 숨진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나라에 의사 수가 많다는 걸 의사 말고 누가 동의할까.”
아마도 의사들이 의대 정원 증원을 반대하는 큰 이유는, 의사 수 증가로 미래의 잠재적 소득이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이 존경받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은 아니다. 시민들은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진료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이들을 가장 빛나는 의사로 기억한다. 의사들 스스로 존재 이유를 돌아볼 때다.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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