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바디올로지] 수술실의 ‘유령 의사’보다 무서운 것
수술실의 유령 의사보다 더 무서운 건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외모 불평등 사회다. 내 몸을 바꿀 때 미래가 바뀐다는 확신, ‘외모 투자’가 당연하다는 신념을 우리는 ‘성형 매트릭스’ 안에서 배운다. ‘성형강국’이라는 자부심과 ‘성형공화국’이라는 자괴감 사이 한국인들이 분주할 수밖에 없는 이유 아닐까.
“저는 앞트임 뒤트임 자연유착(쌍꺼풀)할 건데 병원 좀 골라주세요. ○○성형외과 후기가 좋은데 과장된 것은 아닐까요?”
“여기 (댓글) 알바들 상주하고 있어요. 조심해요.”
“저 알바 아니고요, 거기 사람들 많이 가요.”
“○○성형외과 어딘지 저도 정보 부탁해요.”
인터넷 여초 카페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화다. ‘성형의 세계’는 어렵고도 복잡하다. 성형수술을 받으려면 기약없는 ‘손품’부터 팔아야 한다. 후기가 좋은 병원을 찾되 특정 병원에 유리한 가짜 경험담을 올리는 ‘댓글 알바’도 요령껏 피해야 한다. 동지애를 발휘해 수술을 앞둔 이에게 잘 될 거라 격려하고, 수술 뒤 사진을 보며 함께 응원하고, 부기가 빠진 부위에 ‘예뻐요’라며 갈채도 보낸다.
여성학자 태희원은 이들을 미용 성형시장의 ‘소비자-환자’로 명명한다. 성형 서비스를 받은 소비자이면서 부작용, 재수술 등을 거치며 환자 정체성도 함께 얻기 때문이다. 소비자-환자가 디지털 세계에서 주고받는 것은 단순히 정보만이 아니라 정서적 지지와 위안을 포함한다. 이런 ‘향유 문화’는 여성들을 ‘미용성형’이라는 의료화 과정에 순응하게 한다고 태희원은 분석한다. 각자 써내려가는 모험과 변화의 체험기인 수술후기는 하나의 자기계발서이자, 성형산업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성형수술은 전쟁과 함께 발전했다. 제1, 2차 세계대전 때 미국과 영국군 의료진들은 안면 부상을 입은 군인들을 치료하기 위해 창의적인 재건 성형을 고안했다. 시간이 갈수록 성형기술은 몸과 정신 모두를 변형하는 데 목표를 뒀다. 1930년대 미국에서는 어렵고 어두운 프로이트 이론과 결별한 아들러의 긍정 심리학이 발달하며 자기계발 논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외과의사들은 자신들이 수술로 환자의 외모 콤플렉스라는 마음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정신분석처럼 긴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1960년대 미국성형외과학회 규모는 20년 전보다 3배로 성장했다. 한국에서는 ‘정형’ 대신 ‘성형’이란 용어가 정착해가던 때였다. 1961년 미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처음 성형외과 레지던트를 수료한 유재덕이 ‘플라스틱 서저리’라는 용어를 성형으로 번역했다. 한국에서 1975년(22명) 처음 배출된 성형외과 전문의는 2022년 10월 현재 2268명에 이른다. 비전문의를 포함하면 더 많다. 2006년 6월 기준 전국 1008개 성형외과 중 서울은 530곳으로 절반이 넘고, 이 중 강남에 400곳이 자리잡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성형외과 개원의들은 강남, 그 중에도 압구정동에 집중적으로 병원을 차렸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압꾸정>은 2007년 압구정동을 배경으로 한다. 두 남성 주인공 중 한명은 미다스의 손을 가진 성형외과 전문의로 병원을 무리하게 확장하다 의사면허를 박탈당하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남의 병원에서 불법 대리수술(유령수술)하는 ‘섀도 닥터’(그림자 의사)로 일한다. 또 다른 주인공은 병원을 실제 경영하는 사무장으로 브로커, 부동산업자, 중매인 등을 동원해 압구정에 초대형 성형외과를 기획한다. 영화에 나오는 성형 ‘비포-애프터’, 성형으로 외모를 완전히 바꿔주는 ‘메이크오버 쇼’, 프로포폴 투약 등은 모두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다.
성형외과 전문의 김유명이 쓴 소설 <얼굴>에도 메이크오버 쇼와 병원 협찬, 연예인과 정치인의 은밀한 성형, 광고로 매출을 일으키는 기업형 성형외과의 그늘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이런 창작물과 실제 현실 사이 거리는 얼마나 될까? 인터넷 수술 후기를 보면 유령 의사, 사무장 병원, 병원 마케팅에 동원된 ‘알바’에 대한 환자들의 불안과 우려가 상당하다. 컨베이어벨트 돌리듯 돌아가는 공장형 병원은 사후관리나 세심함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형의 효용만 강조하는 광고가 이를 다룰 리 없고, 언론은 이런 부작용마저 ‘소비자 선택’이라며 개인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뉴스빅데이터 시스템인 빅카인즈에서 ‘성형’이란 열쇳말로 분석하면, 2014년 10월 가장 많은 성형 관련기사가 쏟아진 것으로 나타난다. 한달 새 전국 일간지, 경제지, 방송사의 기사만 꼽아도 1000건이 넘었다. ‘성형 미인’을 다룬 드라마가 제작됐고, 연예인들의 성형의혹이 제기됐다. 아울러 대한민국 성형 의료사에서 찾기 힘든 적나라한 증언이 터져나왔던 때다.
2014년 10월20일, 의료계 한 내부고발자가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섰다. 앞서 2013년 12월 서울 강남 한 성형외과에서 쌍꺼풀과 코 성형수술을 받던 여고생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공장형 수술과 유령수술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상태였다. 국회에서 이런 실태를 앞장서 고발하고 나선 이는 ‘성형의료계의 의인’으로 불리며 팬덤까지 형성된 성형외과 전문의 김선웅이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였던 그는 국감장에서 “유령수술은 살인행위”, “유령 의사는 수술실에 숨어 있는 저승사자” 등 강성 발언을 이어갔다. 2019년엔 유튜브 채널 ‘닥터 벤데타’를 개설해 불법 성형수술 문제를 고발했다. 2019년, 2020년에도 국회 국정감사 때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환자 동의 없는 유령수술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한층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유령수술 실태를 묵인하고 면죄부를 줬다며 국가를 상대로 28억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14일 1심에서 패소했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동료 의사들의 반발을 산 그는 대한의사협회 윤리위에 넘겨졌고, 특정 병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맞춤육체>를 쓴 프랑스 철학자 노엘 샤틀레는 성형수술 분야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의사는 자신들의 정직과 능력을 증명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일탈로 낙인찍힐 수 있다고 봤다. 그의 말처럼 닥터 벤데타는 희생자일까? 아니면 돈키호테일까? 중요한 건 국가가 성형의 산업화를 꾀하지만 책임을 방기한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는 점이다. 2007년 의료법 개정으로 의료광고가 활성화하면서 교통수단, 길거리, 영화관, 인터넷에 성형관련 광고가 크게 늘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엔 외국인 성형수술 환자 유치 활성화가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였다. 성형의료 강국으로서 산업을 주도한다는 보건복지부의 자부심은 드높았다. 반면 성형수술 의료사고와 관련해서는 현황 파악이 어렵고 ‘환자-의료인’ 사이의 문제라는 견해를 보여 국회에서 질타받기도 했다.
물론 유령수술이나 공장식 성형산업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움직임도 있다. 닥터 벤데타 영상 댓글에서 사람들은 ‘성형외과 블랙리스트’를 공유하고 성형수술을 받다 숨진 이의 유가족과 연대한다. 수술실 폐회로티브이(CCTV)가 있는 ‘안심병원’ 정보를 주고받거나 명예훼손 고소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 부작용을 폭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조차 결국은 양질의 성형의료 환경을 만들려는 노력일 뿐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성형산업 매트릭스’ 속에 놓여 있는 셈이다.
수술실의 유령 의사보다 더 무서운 건 외모 불평등 사회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좌절이다. 내 몸을 바꿀 때 미래가 바뀐다는 확신, ‘외모 투자’가 당연하다는 신념을 우리는 이 매트릭스 안에서 배운다. ‘성형강국’이라는 자부심과 ‘성형공화국’이라는 자괴감 사이 한국인들이 분주할 수밖에 없는 이유 아닐까.
노엘 샤틀레는 젊고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려는 성형 욕구가 결국은 죽음의 문제와 연관된다고 풀이한다. 나의 어머니는 50대 후반에 세상을 떠났다. 유방암 치료로 한쪽 가슴을 전절제했는데 복원 수술을 강력히 원했지만 여생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한 탓인지 끝내 수술받지 않았다. 염을 할 때 한쪽뿐인 가슴을 보니 낯섦과 회한이 복잡하게 밀려왔다. 노화를 상징하는 검버섯을 “저승꽃”이라며 싫어하던 아버지는 병원에서 이를 제거하고 깨끗한 얼굴로 세상과 이별했다. 나 역시 죽을 때까지 성형에 대한 저항과 순응을 거듭하고 의사의 ‘술기’(수술 솜씨)에 대한 긍정과 불안 사이를 끝없이 오가며 살게 될 것이다. 디지털 세상과 현실을 아우르는 성형광고의 개미지옥 속에서 방황을 거듭하면서. 그래서 이걸 해? 말아?
이유진 | 토요판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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