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덕의 격투기통신] "한국 파이터들에게 다게스탄 레슬링을 가르치고 싶다"

이교덕 기자 2023. 1. 3. 18: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포티비뉴스=이교덕 격투기 전문기자] 캅카스(Kavkaz)는 러시아 남부의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영어로는 코카서스(Caucasus)라고 부른다. 러시아 자치 공화국인 △다게스탄 △체첸 △잉구셰티야 등과 일명 캅카스 3국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여기에 속한다.

캅카스에는 괴물들이 나고 자란다. 무시무시한 싸움꾼들이 우글거린다.

나라별로 대표적인 UFC 파이터 이름을 대 볼까? 다게스탄에는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의 뒤를 이은 이슬람 마카체프가 있고, 체첸에는 라이징 스타 함자트 치마예프가 있다. 모브사르 에블로예프는 잉구셰티야 출신이다.

조지아를 대표하는 파이터는 메랍 드발리시빌리다. 정찬성을 툭툭 건드리는 기가 치카제도 이 나라 파이터다. 아르메니아 출신들은 대부분 성이 '~yan'으로 끝난다. 아르만 사루키안(Tsarukyan)은 조지아 태생이지만, 국적은 아르메니아다. 라파엘 피지예프는 UFC 최초 아제르바이잔 파이터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고 키르기스스탄에서 자랐는데, 최근 아버지 혈통을 따라 아제르바이잔 국기를 달고 옥타곤에 오른다.

나라별로 한 명씩만 꼽았는데 이 정도다. 캅카스 파이터들은 미국·브라질 파이터들과 함께 UFC 옥타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주축 세력으로 떠올랐다.

캅카스 레슬링을 장착한 한국인 파이터가 나온다면 어떨지 자주 상상했다. '미스터 퍼펙트' 강경호가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기 전, 다게스탄 훈련을 계획했는데 그게 실현됐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도 모험심 가득한 선구자가 캅카스로 날아가 그들의 레슬링 DNA를 흡수해 오면 좋겠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일까. 캅카스 레슬링을 한국인 파이터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다는 코치가 있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했다. 주인공은 미국 플로리다에 위치한 MMA 명문팀 킬 클리프 FC의 레슬링 코치 사이드 사파로프. 고려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한국계로, 러시아 복싱과 캅카스 레슬링을 익히고 미국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지난해 최승우가 미국 플로리다로 날아가 킬 클리프 FC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할 때, 사파로프라는 코치에게 흥미를 느꼈다.

미지의 인물 사이드 사파로프 코치를 소개하는 글로, 2023년 첫 '이교덕의 격투기통신'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UFC 관계자의 도움을 얻어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신을 소개해 달라." 그게 첫 질문이었다. 그러자 사파로프는 '벽 레슬링(wall wrestling) 코치'라고 답했다. 미국에선 케이지 벽에서 이뤄지는 레슬링을 일반 레슬링과 구분해 따로 가르치고 있는데, 자신은 그 분야에 특화돼 있다고 했다.

"캅카스에서 훈련했다. 레슬링, 삼보 등 그래플링을 가르친다. 우연히 킬 클리프 FC에서 코치 일을 하게 됐다. 친구가 한번 와서 훈련해 보겠냐고 초대한 게 발단이 됐다. 내가 레슬링을 가르치는 걸 보고, 헤드 코치인 헨리 후프트가 코치 자리를 제안했다. 후프트는 타격 코치라 그래플링 분야의 도움이 필요했다. 물론 팀에는 훌륭한 그래플러들이 많다. NCAA 디비전1 3회 우승에 빛나는 그렉 존스 코치가 있다. 길버트 번즈와 허버트 번즈는 주짓수 쪽이다. 후프트는 내게 벽 레슬링을 맡기고 싶어 했다. 킬 클리프 FC에선 나를 벽 레슬링 코치라고 부른다. 그때부터 케이지에서 하는 레슬링을 전담으로 가르치고 있다. 많은 파이터들이 벽 레슬링에서 어려움을 겪는데, 그걸 도와주고 있다."

사파로프의 성장 과정은 파란만장하다. 중앙아시아에서 자라다가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복싱과 레슬링을 익히게 됐다.

"우리 어머니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이다. 아주 어릴 때 우즈베키스탄에서 살다가 카자흐스탄으로 이사했다. 한국계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은 복서였다.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년 정도 축구 클럽에서 활동했는데 어머니가 남자는 강해야 한다면서 복싱을 배우게 했다. 복싱을 꽤 잘했다고 생각한다. 올림픽 레벨의 학교에서 훈련했다. 4년을 카자흐스탄에서 살다가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17~18살쯤이었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선 쉽지 않았다. 실력만으로 되지 않았다. 수준 높은 팀에 들어가려면 연줄이 필요했다. 당시 학창 시절 친구가 UFC 파이터 알렉산더 볼코프다. 볼코프가 내게 '왜 복싱 체육관에서 시간을 낭비하는가?' 물었다. '넌 그쪽 라인이 없기 때문에 다른 스포츠로 전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핸드투핸드컴뱃(Hand-to-Hand Combat, 백병전)이나 컴뱃 삼보를 하라고 추천했다. 핸드투핸드컴뱃 학생 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땄다. 꽤 잘 적응하는 듯했다. 그런데 2년 정도 수련하다가 문제점을 깨달았다. 복싱은 좋았지만 레슬링이 없었다. '제로'가 아니고 '마이너스' 수준이었다. 상대가 내 다리를 붙잡고 그라운드로 끌고 가면 거기서 끝장이었다. 친구가 빅토르 장기예프라는 레슬링 코치를 소개했다.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의 캐릭터 장기예프의 모델이 된 사람이다. 그의 체육관에서 1년 반 정도 훈련하며 레슬링 실력을 발전시켰다."

사파로프는 레슬링을 시작한 김에 끝장을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향한 곳이 다게스탄이다. 어머니와 일찍 헤어진, 사파로프의 아버지는 다게스탄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아버지, 즉 외할아버지도 16살 때까지 다게스탄에서 살다가 우즈베키스탄으로 와서 정착한 다게스탄인이었다.

"고조할머니가 일제 강점기에 사할린에서 캅카스 지역으로 이주했다. 거기서 뿌리를 내리고 살다가 외할아버지 때 우즈베키스탄으로 간 것이었다. 모스크바에서 내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아버지와 떨어져 살다가, 친척들을 찾아 봤다. 그다음 아버지 고향 캅카스로 갔다. 다게스탄에서 레슬링을 익히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21살에 결혼하고, 22살에 아이를 낳았다."

프로 파이터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20대 초반 일찌감치 그 꿈을 접었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프로 파이터로 커리어를 쌓기는 매우 어렵다. 스폰서가 없으면 힘들다. 심지어 10년 전에는 더 했다. 그리고 때마침 눈에 문제가 생겼다. 펀치를 맞으면 상태가 심각해질 위기였다. 레슬링이나 주짓수 등 그래플링 쪽으로 방향을 틀려고 했다."

그러다가 친구의 조언에 마음을 바꿨다. 선수가 힘들면 코치로 일찍 전향해 보라는 말에 번뜩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은 스트라이커로 출발해 그래플링을 입힌 경우였다. 타격가 입장에서 레슬링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벽 레슬링 코치'의 경력을 그렇게 시작했다.

"친구가 '꼭 선수를 할 필요는 없다. 코치를 해 봐라. 10년 넘게 격투기 훈련을 했으니까 코치를 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 몇 달 있다가 23살 나이에 코치 커리어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타격으로 시작해 레슬링으로 전향했기 때문에 타격가 입장에서 어떻게 레슬링을 잘 방어할 수 있는지를 잘 이해했고 이를 가르칠 수 있었다."

2021년 미국으로 온 사파로프는 코치 경력을 이어 오다가 최승우를 만나 매우 기뻤다고 한다. 일단 같은 뿌리라는 데서 동질감을 느꼈다. 매운 음식을 함께 먹기에 이만한 파트너가 없었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날 러시아 사람이라고 여겼다. 캅카스에서 온 키 크고 수염 난 남자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늘었다. 그들에게 난 한국계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밝혔다. 아버지와 일찍 이혼하신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한국 문화, 한국 음식에 익숙했다. 헨리 후프트에게 왜 우리는 일본(사토 타카시), 카자흐스탄, 미얀마(아웅라은상), 베트남(마틴 응구옌), 중국(리징량) 등 다양한 아시아 파이터들이 있는데 한국 파이터만 없냐고 물은 적도 있다. 그런데 최승우가 우리 팀에 왔다.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까 '초이'라고 해서 한국인이냐고 물으니까 그렇다고 했다. 무척 반가웠다.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한국 문화 밑에서 자랐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컸다. 어릴 때 다른 친구들은 먹지 못할 정도로 매운 음식을 말이다. 지금도 엄마 음식이 그리워서 가끔 한국 식당을 찾는다. 최승우가 오면서 드디어 함께 매운 음식을 먹을 친구가 생겼다고 좋아했다."

최승우는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사파로프는 한국 파이터들에게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한다. 특히 타격 기반의 한국 파이터들에게 자신이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 파이터들은 기본기가 훌륭하다. 복싱이 좋다. 태권도를 익혀서 발도 빠르다. 드미트리 비볼이나 게나디 골로프킨을 봐라. 한국 파이터들은 빠르고 풋워크가 가볍다. 한국에는 뛰어난 타격가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 최승우뿐만 아니라 여러 타격가들에게 레슬링 방어를 가르칠 수 있다. 벽 레슬링은 올아메리칸 레슬러들에게도 익숙지 않은 분야다. 미국 레슬링과 크게 차이 난다."

"좋은 예가 샤브캇 라흐모노프다. 그가 더블렉이나 싱글렉 테이크다운을 하는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레슬링 방어를 잘하고, 포지션 스위치를 능수능란하게 한다. 그게 중요하다. 난 라흐모노프가 트레이닝 캠프에 올 때마다 같이 훈련한다. 한국의 타격가들이, 특히 팔다리가 긴 선수들이 라흐모노프를 모델로 훈련하면 성공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사파로프에게 자주 미국 트렌드를 물어보려고 한다. 사파로프는 흔쾌히 좋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한국 파이터들의 성장을 돕는 일이 있다면 나서고 싶다고 밝혔다.

마지막 메시지에서 사파로프는 "한국 여러분들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했다.

이어 "러시아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 커다란 한국인 커뮤니티가 있다. 특히 내가 태어난 러시아 지역(구 소련) 쪽에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있다. 비록 다른 곳에 살고, 다른 언어를 말하지만 우린 한국인이라고 느낀다. 핏줄에 뭔가 한국적인 것이 깃들어 있다. 킬 클리프 FC에서 선수들이 어디 출신인가는 상관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이면 된다. 킬 클리프 FC에 와서 훈련하고 싶은 한국 파이터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나를 의지해 달라. 한국인들이 우리 체육관에 온다면 나는 최고의 지원자가 될 것이다. 선수들은 날 100% 의지할 수 있을 거다. 한국인들이 건강하게 지내고, 서로 화합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스포티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