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근로기준법·노조법 … 2023년 노동개혁 발목 잡아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2023. 1. 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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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를 대상으로 연구용역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아이앤아이리서치의 이진수 대표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인력 구성에 골머리를 앓는다. 보통 6개월에서 연 단위로 진행하는 프로젝트 기간 중에 발생하는 '크런치 모드(장시간 업무)'가 현행법과 상충하기 때문이다. 탄력근로제를 허용된 6개월까지 최대로 적용하고 있지만 단위기간은 턱없이 짧다. 이 대표는 "업종별로 필요한 근무 유연성이 다른데, 정작 현행 제도는 1980년대 제조업 기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이 노동개혁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청사진을 그린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지난달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최대 '연'으로 개편하는 등 근로시간 유연화와 직무급제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안을 권고했지만 상당수가 기존 법의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적 동의를 구해 '여소야대' 구도를 극복하고 개혁 동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근속수에 따라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연공급 임금체계 개편 또한 근로기준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금의 연공성은 노동시장 이중 구조화의 징표 중 하나로 꼽힌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간 기업 등에서 임금체계를 개편하려 해도 현행 근로기준법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금지 조항 때문에 어렵다"며 "해당 조항을 포함한 현행 근로조건 변경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는 한 임금체계 개편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노동 형태와 산업구조의 급속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후진적 노동시장의 주범은 컨베이어벨트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노동법 체계다. 특히 현행 근로기준법은 '공장 근로자'를 중심으로 짜인 산업화시대의 산물이다. 작업 방식 표준화와 분업화 그리고 근로조건 통일을 위한 단체협약 제도가 근로기준법의 핵심이다. 하루에 몇 시간 일하고 휴식을 어떻게 줘야 하는지가 골자인데 그야말로 공장 노동이 아니면 적용하기 어렵다. 특히 현행 근로기준법이 노동운동을 단체협상과 임금투쟁 등 공장 근로자의 처우를 다루는 데 중점을 두면서 문제가 심화됐다.

공장 근로자 중심의 노조문화와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근로자 대표 선출 방식 또한 법의 부작용을 키우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선택적 근로시간제, 재량근무제 등 유연근무시간제 전반이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에 의해서만 도입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과반수 노동조합'만을 근로자 대표로 인정하고 있다. 정규직과 동일한 근로조건을 맞춰줄 수 없는 하도급이나 비정규직은 물론 최근 생겨난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조 가입이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금체계 개선이 노조 반대나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얻지 못해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해당 부서나 직무별로 근로자 대표를 선출하고 사용자 합의를 통해 개선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근로자 대표와 사용자가 합의한다면 기업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이나 임금 같은 근로조건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회사가 어려울때 구조조정을 통해 생존하고 위기를 극복한 뒤 재고용하는 구조가 정착돼 있지만 한국에선 '언감생심'이다. 근로기준법 24조는 '경영상 해고'에 대해 세계에서 유례없는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해당 조항에 따라 사업주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 필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대상자 선정 △근로자 대표와 성실한 협의 등 네 가지 정리해고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사측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노동3권)을 규정한 노동조합법도 강성노조를 키우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다. 사용자 측의 부당노동행위는 엄격히 규정하지만 노조 측의 부당행위에 대해선 별다른 규정이 없다. 교섭 대상도 아닌 해고자 복직으로 단체협상을 지연시키거나 장기 파업을 해도 아무런 제재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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