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임금인상 25년 만에 최고 파월 '고물가 자극' 노심초사
직원 임금 전년비 5.5% 올라
직장 옮긴 근로자는 7.7% 쑥
상품값에 임금 인상분 전가땐
연준 금리인상 속도조절 차질
지난해 미국 물가 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미국 기업들이 2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임금 인상을 단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손이 부족한 미국 노동시장에서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떠나는 노동자를 잡기 위해 고용주들이 앞다퉈 임금을 올린 것이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임금 상승률이 억제돼야 한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바람과 달리 임금이 역대급으로 오르며 다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연은) 조사 결과 지난 1년간 직장을 옮기지 않은 미국 노동자의 임금은 지난해 11월 기준 전년보다 5.5%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연은이 25년 전 관련 통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다. 직장을 옮긴 노동자의 임금 상승률은 같은 기간 7.7%에 달했다.
WSJ는 "직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일자리를 떠나는 사태를 막고자 고용주들이 기존 직원의 임금을 올려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고용시장에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이 계속되며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고용시장 분석 업체 라이트캐스트의 레일라 오케인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요식업 등 전직이 용이한 업계를 예로 들며 "고용주 입장에선 훈련된 직원을 다른 업체에 빼앗기는 상황을 막기 위해 임금을 올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연준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든다. 물가를 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는 연준은 특히 임금 상승률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임금이 25년 만에 최대 폭으로 오르면서 상황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연준 목표치인 2% 물가 상승률을 달성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현재 임금 상승률은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높은 임금이 물가를 자극하고, 고물가가 다시 임금을 올리는 악순환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연준이 지난달 공개한 경기 동향 보고서 '베이지북'에 따르면 많은 고용주가 내년 물가에 가장 큰 압력을 주는 요인으로 '인건비'를 꼽았다.
앞서 블룸버그는 연준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안내할 '새로운 북극성(New North Star)'을 갖게 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반의 물가 상승은 배송 중단에 따른 공급 부족 등을 이유로 '상품'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이제는 서비스 중에서도 임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향후 미국 통화정책의 핵심은 '임금'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임금 인상분을 상품 가격에 전가해 소비자에게 떠넘길 가능성이 높다. 물가가 확실히 잡힐 때까지 연준은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연준의 노력이 일부 효과를 낼 조짐도 관측된다. 지난해 11월 현재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1년 전보다 5.1% 증가했다. 지난해 3월 5.6%로 정점을 찍은 뒤 상승률이 둔화된 것이다.
한편 WSJ가 23개 주요 투자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답변자 대부분은 연준이 오는 3분기나 4분기에는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준이 올해 1분기까지 기준금리를 올린 뒤 2분기 금리 인상을 멈추고 이후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연준은 지난해 일곱 차례에 걸쳐 0.25%(상단 기준)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4.5%까지 끌어올렸다.
또 응답자 중 70%인 16개사가 '미국이 올해 경기 침체를 겪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뱅크오브아메리카, 바클리, TD증권, UBS그룹 등 23개 프라이머리 딜러의 이코노미스트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프라이머리 딜러란 미국 정부에서 발행한 채권을 연은과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받은 금융 딜러를 말한다.
내년 경기 침체를 예상한 2개사를 더하면 미국의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응답자는 78%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2조3000억달러까지 불어난 미국인의 초과 저축이 1조2000억달러로 반 토막 나면서 소비 여력이 줄어든 것과 부동산 시장 침체, 은행들의 대출 기준 강화 등이 미국 경제의 '위험 신호'로 꼽혔다. 올해 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전망치는 현재보다 5% 높다.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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