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소년을 위한 마을은 없을까
수능일, 우리는 온 마을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풍경을 보게 된다. 듣기평가 시간엔 비행기가 뜨지 않고, 출근 시간과 주식시장 거래 시간도 늦춰진다. 온 마을이 함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실감나게 하는 풍경은 아니다.
청소년들의 성장은 고사하고 마을이 있기나 한 것인지. 마을 교육사업이 꽤나 익숙해졌고, 학교는 그 어느 때보다 마을과 교류의 기회가 많아졌지만 마을이라기보다는 단지 주소가 거기에 있을 뿐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더 실감난다. 유목민처럼 행정적인 주소지를 이곳저곳 옮겨다니는 익명의 현대인들에게 마을은 생경할 뿐이다.
청소년을 올곧이 키우기 위한 '온 마을'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수능일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 일상처럼 이루어지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니 수능일에 지나치게 관심이 쏠리지 않고, 일상 속에서 청소년들의 성장에 대한 관심을 쏟아붓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온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온 부처와 온 부서가 손발을 맞추는 일이 제일 우선이다. 부처 간의 칸막이 때문에 각 부서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부처마다 관련 정책의 총괄 조정을 위한 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방분권시대를 맞아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마다 독자적인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이미 사업박람회장이 되어버린 지역에서의 다양한 청소년 성장 지원 정책은 시너지가 나기보다는 전체 총량보다 못한 성과를 내기 십상이다. 사각지대 발생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도 낳는다.
무엇보다 청소년의 성장을 지원하는 여성가족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법무부 등 중앙부처는 부처 간 총괄 조정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한 부처 내에서도 부서 간의 연계와 협력은 부처 간의 협력만큼이나 중요하지만 부서 간의 벽도 낮지 않다. 이런 문제는 지자체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중앙부처와 지자체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지자체 내에서 부서 간 협력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단숨에 지역의 인구 급감을 막아낼 방도를 찾기는 어렵지만, 청소년들이 성장하기 좋은 여건을 만드는 것은 인구 소멸 위기 대응의 첫 단추가 된다. 아무리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는다고 해도 온 부서가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구호에 그치고 만다.
또 하나의 과제는 학교와 마을자원 간 협력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이때 협력의 질은 단순한 연계로는 확보되기 어렵다. 청소년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교사와 청소년지도자, 사회복지사 등 지역의 전문가들이 서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와 마을 간 협력을 위해서는 마을의 전문가들은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하고, 학교는 마을의 자원을 학교 교육과정과 어떻게 연결시킬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지역 맞춤형 교육과정을 지향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주문이기도 하다. 좋은 사례도 쌓이고 있고 정책의 방향도 전환점을 맞고 있지만, 칸막이를 넘어서 상생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없으면 정책이나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칸막이를 세울 뿐이다.
입시에 찌들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듯해도 꿋꿋이 자신의 끼를 살리고 세계를 놀라게 하는 청춘들의 잠재된 문화적 파괴력을 살릴 수 있는 상생의 매직을 기대해본다.
[김현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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