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명칼럼] 너무 오랫동안 '반격'하지 못한 나라
그 관성의 끝은 핵의 노예다
지난달 서울 상공에 날아온 북한 무인기를 격추하지 못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 무인기 '송골매'를 북에 올려보내라고 지시했다. 오랜만에 보는 '비례적 반격'이었다.
한국이 북한 도발에 '이에는 이'식으로 응전한 사례는 1970년대까지 올라가야 한다. 1976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하자 한미 양군은 합동작전으로 문제의 나무를 베어버렸다. 상징적인 보복이었음에도 김일성은 겁먹었다고 한다. 그 3년 전에는 비무장지대 북한군 GP에서 쏜 총탄에 아군 2명이 죽자 곡사포로 GP를 박살 낸 일이 있었다. 북한 도발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지만 이런 반격 사례는 희귀하다.
보다 최근인 제1·2연평해전과 2009년 대청해전 때 우리는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을 물리쳤다. 그것은 방어였지 반격은 아니었다. 반격은 공격당한 만큼 보복함으로써 상대가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2000년 이후 북한을 상대로 그런 대가를 치르게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보복하는 것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2010년 3월 우리 천안함을 격침했는데 그 4개월 전 대청해전 패배에 대한 보복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고 그해 연말 연평도를 포격했다. 포격 직후 대외에 공개된 이명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단호히 대응하되,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였다. 청와대는 "와전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어쨌든 우리군은 보복하지 못했다.
우리가 북한의 샌드백이 된 데는 역대 모든 정권이 책임이 있다. 그중에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3개 정권의 책임이 특히 크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NLL을 침범해도 '대화'만 외쳤다. 그것이 북한에는 뭘 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주고 우리 스스로 반격 불능의 타성에 젖게 했다. 반격당하지 않는 도발이 쌓이고 쌓여 북한은 마침내 핵 강국이 되었다. 책임을 느껴야 할 사람들이 이제는 '핵보유국을 상대로 어떻게 싸우냐'며 북한을 자극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지난해 11월 2일 북한이 울릉도 방향으로 쏜 미사일이 속초에서 57㎞ 떨어진 동해에 떨어졌다. 이 미사일이 강원도 촌락에 떨어져 인명이 살상됐다고 하자. 이 경우 한국 대통령이 미국과 협의해 취할 수 있는 조치의 종류와 수위는 다양하다. 군에 준(準)전시태세를 발동하고 전투기를 띄워 북한 영해에 미사일을 쏘고 미국 항모를 부르고 전례 없는 강도의 대북 규탄을 한다. 그것이 북한을 움찔하게 할까.
우리가 당한 것에 비례해 북한 내륙에 '현무4' 미사일 한 발을 떨어뜨리는 것은 어떤가. 나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비상사태에서 국가는 관성에 의해 작동한다. 당한 만큼 갚아주는 관성이 작동하는 나라는 이스라엘 같은 곳이다. 한국은 더 큰 공격을 부를까 두려워 반격을 주저하는 관성에 너무 오래 젖어 있었다. 언젠가부터는 북한이 핵을 가졌다는 사실이 공격 회피론의 명분이 되고 있다.
그러나 착각이다. 북이 핵을 보유한 것은 충돌을 피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무조건 반격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핵 보유 국가가 재래식으로 도발할 때 겁먹고 응전하지 않으면 관성이 되고 결국 핵의 노예가 된다. 북한의 단거리미사일이 실수로 우리 영토에 떨어졌을 때 반격하지 않으면 다음에는 조준해서 쏠 것이다. '너희가 공멸을 원한다면 핵을 써라. 우리가 허용할 것은 죽음뿐이다'라고 반격할 때 핵 가진 쪽은 딜레마에 빠진다. 누구도 공멸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북한 도발에 대한 응전 수위를 조절하는 과제에 숙명적으로 맞닥뜨린다. 그 수위는 국가 이익보다 '우리 민족'에 경도된 정권을 몇 번 거치면서 계속 낮아졌고 한국은 북한에 만만한 상대가 됐다. 반격 가능한 국가로 돌아가는 것, 국민에게 그게 옳은 길임을 설득하는 것은 윤 대통령 앞에 놓인 국가 정상화 과제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할 것이라 믿는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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