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남긴 마지막 말은… 보수 수호, 교계 과오 안고 떠나 [뉴스+]

조성민 2023. 1. 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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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부터 사흘간 일반 공개…교황청 “5일 장례미사”
동성애·낙태 등에 강경론… 보수파의 최고지도자
“교회 가장 어두운 비밀, 성추문 무덤으로 가져가”
임기 내내 멋쟁이…패션잡지 ‘베스트드레서’ 선정
영적 유언서 신자들에겐 “믿음 안에 굳건히 서라”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오랜 개인 비서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는 2일(현지시간) 교황청 관영 매체 ‘바티칸 뉴스’에서 뒤늦게 전임 교황의 마지막 말을 이같이 전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선종한지 이틀 뒤인 이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는 6만명 넘는 조문객이 몰리며 예상을 뛰어넘는 추모 열기를 보였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로마 가톨릭 역사상 거의 600년 만에 살아생전에 퇴임을 단행해 ‘두 교황’을 모셨던 바티칸에는 이제 다시 하나의 교황만이 남았다.
지난 2일(현지시간) 바티칸 경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추모객들이 지난 2022년 12월 31일 선종한 고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애도하고 있다. 바티칸=AP뉴시스
◆“동트기 전부터 기다려”…시신 일반 공개 첫날 6만5000명 방문

지난달 31일 바티칸시국 내 ‘교회의 어머니(Mater Ecclesiae)’ 수도원에서 95세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은 2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져 오전 9시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교황청은 이날 오후 7시 첫날 조문 일정을 마무리한 뒤 약 6만5000명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조문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탈리아 치안 당국이 예상한 2만5000∼3만명을 2배 이상 뛰어넘는 규모다.

이날 새벽 ‘교황의 신사들’로 불리는 교황의 수행원 10명이 흰색 장갑을 끼고 이 수도원에 안치된 베네딕토 16세의 시신을 운구차에 실어 성 베드로 대성전을 향해 출발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오랜 개인 비서인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와 가사를 도운 수도회 수녀들이 걸어서 운구차의 뒤를 따랐다.

운구차가 성 베드로 대성전에 도착하자 스위스 근위병이 경례했고, 시신은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제대 앞으로 옮겨졌다. 대성전 대사제인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이 시신에 성수를 뿌리고, 분향했다. 교황청은 이날 오전 9시를 기해 성 베드로 대성전의 문을 열고 일반 조문객을 받아들였다.

허리 높이의 관대 위에 비스듬히 누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머리에 모관을 쓰고, 붉은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전통적인 교황 제의를 입었다. 깍지 낀 손에는 묵주가 감겼다. 스위스 근위병 2명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 곁을 지켰다.
지난 2022년 12월 31일(현지시간) 향년 95세로 선종한 고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이 지난 2일(현지시간) 바티칸 경내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돼 있다. 바티칸=AP뉴시스
동트기 전부터 신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조문 시작 전부터 타원형의 성 베드로 광장 한 바퀴를 다 두를 정도로 대기 줄은 길게 이어졌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신학자인 발터 카스퍼 추기경도 다른 일반 조문객들과 함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바티칸이 속한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 등 정부 주요 인사들은 일반 조문객보다 먼저 방문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안식을 기원했다.
첫날 10시간 진행된 조문 행사는 3∼4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으로 늘어난다. 사흘간의 일반 조문이 끝난 뒤 5일에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미사가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주례로 거행된다. 이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관은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로 운구돼 안장된다.
지난 2022년 12월 31일(현지시간)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지난 2011년 10월 19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일일 알현에서 신자들과 인사하는 모습. 바티칸=AFP뉴스1
◆베네딕토 교황을 향한 상반된 두 시선

생전에 물러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으로, 가톨릭 내 보수파를 이끈 뛰어난 신학자라는 찬사가 이어진다. 하지만 다른 평가도 있다. 교계 최악의 사건인 사제들의 성 학대 문제를 끝내 해결하지 않고 무덤까지 끌고 갔다는 그림자 역시 존재한다.

뉴욕타임스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선종으로 미국의 보수 가톨릭계가 ‘영웅을 잃었다’고 썼다. 워싱턴포스트(WP)는 가톨릭의 전통 계승을 중요시하는 보수파들이 베네딕토 16세를 ‘영원한 신앙의 수호자’로 바라봤다고 전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생전 동성혼 인정 등 기독교 내의 핵심 논쟁거리에서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바티칸 내 진보 성향 신학자들을 퇴출하기도 했다. 또 보수적인 주교들을 대거 지명했는데, 이는 미국의 경우 가톨릭의 보수화를 부추겼다고 WP는 분석했다. 미국의 보수파는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 후에도 그의 어젠다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 가톨릭 신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의 낙태 관련 정책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마찰을 빚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 지난 2022년 12월 31일 선종한 고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을 추모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바티칸=AP뉴시스
가톨릭계를 뒤흔든 아동 성 학대 스캔들에 미온적인 대처를 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가톨릭 최고 책임자 베네딕토 16세가 지난 20년 동안 사제들의 성 학대 의혹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이 되기 전 학대 사건을 관장하는 바티칸 기관을 이끌기도 했으나, 교황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학대와 관련해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성 학대 피해자 모임인 ‘사제 학대 생존자 네트워크’는 성명에서 “우리가 보기에 베네딕토 16세는 교회의 가장 어두운 비밀을 무덤으로 가져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 학대 피해자 모임을 이끌었던 데이비드 클로헤시는 “베네딕토 16세가 반체제 신학자들을 징계한 것처럼 스캔들에 연루된 주교들을 징계했다면 많은 범죄와 은폐를 멈출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는 총명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단호하게 행동하지 않은 것이 수천 명의 어린이를 공격당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베네딕토 16세는 임기 내내 ‘멋쟁이’로 불리기도 했다. 2007년 패션지 에스콰이어가 ‘베스트 드레서’ 중 한 명으로 선정할 정도였다. 특히 그는 임기 내내 교황의 흰색 수단과 크게 대비되는 빨간색 구두를 신어 주목받았다. 교황의 붉은색 신발은 십자가에 못박인 예수의 피에 젖은 발, 혹은 가톨릭 순교자의 흘린 피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있는 전통 복식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2년 12월 31일(현지시간) 독일 뮌헨 프라우엔 성당의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조각품에 추모 꽃이 꽂혀있다. 뮌헨=AFP연합뉴스
◆베네딕토 16세의 유언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탈리아어로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였다.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는 베네딕토 16세의 곁을 지키던 남자 간호사가 지난달 31일 오전 3시쯤 전임 교황의 마지막 말을 들었다며 이같이 공개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그로부터 6시간 정도 뒤인 오전 9시34분에 선종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공식적인 유언으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전한 마지막 메시지는 “믿음 안에 굳건히 서라” 였다. 교황청 공보실이 공개한 그의 영적 유언에는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와 달리 유언에서 장례 절차나 시신이 안치될 장소에 대해 어떤 지시도 없었다. 그의 재산과 소지품을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에 공개된 영적 유언은 베네딕토 16세가 즉위 후 1년 뒤인 2006년 8월29일 독일어로 작성한 것으로, 2페이지 분량이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79세 때 작성한 이 유언에서 “어떤 식으로든 내가 잘못한 모든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해 용서를 구한다”며 “인생의 늦은 시기에 내가 살아온 수십 년을 되돌아보면 감사해야 할 이유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고 적었다.
지난 2013년 2월 17일(현지시간)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바티칸 발코니에 나타나 삼종기도회에 참례하려고 바티칸에 모인 10만여명의 신자와 관광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바티칸=AP연합뉴스
그는 “먼저, 내게 생명을 주시고 혼란의 여러 순간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해주신 하느님에게 감사드린다”며 “하느님은 내가 미끄러지기 시작할 때마다 항상 나를 일으켜주고 얼굴을 들어 다시 비춰주신다”고 했다. 이어 “돌아보면 어둡고 지치는 이 길이 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는 걸 보고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부모님을 향해서는 “어려운 시기에 내게 생명을 주셨고, 큰 희생을 치르면서도 사랑으로 멋진 집을 준비해줬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자신의 곁에 있던 많은 친구와 선생님, 제자들과 자신이 태어난 고국 독일, 제2의 고향이 된 이탈리아와 로마에도 감사한다고 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신자들을 향해서는 “믿음 안에 굳건히 서라”며 “자신을 혼란 빠뜨리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며, 교회는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그분의 몸”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의 모든 죄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를 영생의 거처로 받아주실 수 있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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