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무죄' 눈물 훔친 이정훈…빗썸 운명 가른 '증거능력'(종합2보)
항의하는 투자자들에 법정 일대 소란 겪기도
(서울=뉴스1) 박소은 기자 =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이 두나무에 이어 사법 리스크를 떨쳐냈다. 지난해 12월 20일 예정됐던 선고기일에서 2주가량 미뤄지며 불안감이 고조됐으나, 1심에서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 이사회 의장이 재판부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아내며 안도의 숨을 고르게 됐다.
지난 2021년 7월 1100억원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 1년 반 만이다.
이날 무죄 선고 후 현장에서는 희비가 뚜렷하게 갈렸다. 이정훈 전 의장은 눈물을 훔쳤고, 코인 투자자로 추정되는 방청객들은 이 의장과 재판 관계자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거센 항의에 법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 전 의장은 이후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법원을 떠났다.
◇"BXA 상장 약속하며 기망?"…검찰·변호인 측 의견 대립 팽팽
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강규태)는 3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 이사회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이 전 의장 측이 김병건 BK메디컬그룹 회장으로부터 빗썸 인수 관련 계약금을 편취하기 위해 BXA 상장을 약속했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피해금액 상당액의 양도소득세가 이미 지급돼 관련 내용을 참작해야 한다고 '징역 8년' 구형 이유를 덧붙였다.
검찰 측은 2018년 빗썸코리아의 당기순손실을 메꾸기 위해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 의장이 거래소코인을 기획했다고 판단했다. 바이낸스·후오비의 사례를 준용해 거래 수수료 지급 명목으로 거래소코인을 사용케 한다는 것이다.
검찰 측은 해당 거래소코인으로 김병건 회장을 기망했다고 봤다. 이 전 의장이 김병건 회장에게 빗썸 인수와 공동경영을 제안하면서 BXA를 빗썸에 상장할 것이며 빗썸 인수대금 3억5000만달러 중 일부만 지급하면 나머지 대금은 BXA를 발행·판매해 지급해도 된다고 속여 상당금액을 편취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의장측은 빗썸 인수를 제안한 측은 김병건 BK메디컬그룹 회장 측이며, 최종계약문서 어디에도 BXA의 상장을 확약한다는 내용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 전 의장측 변호인은 "이 사건은 김병건 측과 이 전 의장 측 구체적 협상을 통해 작성된 최종계약문서가 존재한다"라며 "본계약 체결 이전의 서면 또는 구두에 의한 의사표시 합의에 우선한다는 완전합의조항이 있어 피고인이 상장약속을 했는지, 어떤 의무를 졌는지에 대해서는 문서가 우선"이라고 설명헀다.
이어 이 전 의장측 변호인은 "김병건은 BXA 코인 정식 발행 전부터 업체를 통해 국내 판매를 종용하고 스스로 내국인 상대로 마케팅을 하는 등 투자금 모집 행위를 해왔다"라며 "기자간담회를 개최하며 국내에서 판매하는 빗썸 코인은 모두 사기라고 하는 등 기만적인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당시 12월 20일로 선고기일을 잡았으나, 당일 돌연 올해 1월 3일로 선고를 미뤘다. 구체적인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재판부, "증거능력 미비하고 피해자 진술 신빙성 없다" 이 의장 손 들어줘 이날 재판부는 이정훈 전 의장 측의 손을 들었다. 원고와 피고측이 대립했던 '증거능력' 대부분이 없다고 판단, 무죄 선고를 내렸다. 특히 김병건 회장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누차 지적했다.
이정훈 의장 측과 김병건 회장 측은 크게 △2018년 8월 30일 이정훈 전 의장이 BXA코인을 상장하고 글로벌 거래소 연합사업이 완성단계라는 주장을 했는지 △2018년 9월경 양측이 싱가포르에서 만나 2500만 달러를 내면 나머지 3억 달러는 투자자들 돈으로 빗썸을 인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지 △이정훈 의장이 BXA코인을 빗썸에 상장시킬 의사와 능력이 없었는지를 두고 다퉜다. 김 회장 측이 이 전 의장 측에게 사기(기망)을 당했다고 주장한만큼, 실제 기망 의도를 가지고 김 회장을 현혹했는지를 살핀 것이다.
재판부는 첫번째와 두번째 논점에 대해 피해자 측이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에게 이 전 의장이 설명한 글로벌 거래소 연합 사업의 진척 단계나 론칭 시점 등은 사실과 달랐지만, 관련 내용을 김 회장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김 회장) 측이 보인 태도는 진척도나 일정을 확인하는 데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인수 후 피해자가 항의했다는 증거도 없고, 검사 제출 증거만으론 처분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입증이 안된다"라고 말했다.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았던 BXA코인의 빗썸 거래소 상장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전 의장이 빗썸에 BXA코인을 상장할 의사와 능력이 없었고, 이 전 의장과 김 회장이 '코인 판매 대금으로 빗썸을 인수하기로 협력한 게 확인이 돼야' 기망행위가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전 의장과 김 회장 사이에) 공동투자 합의서는 제시됐으나 구속력이 없다고 명시된 점, 계약 내용이 담기지 않은 점을 보면 이것이 곧 (BXA코인의) 상장확약이라 보기 어렵다"라며 "검사 제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전 의장)이 BXA코인 상장을 확약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피해자(김 회장)의 투자경력 및 암호화폐 지식이 상당하다"라며 "피해자가 피고인의 말만 믿고 착오에 빠질 정도로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하고, 피고인에 비해 정보가 부족하다고 볼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이 전 의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 측이 이에 불복할 경우 일주일 이내 항소장을 제출할 수 있다.
◇선고 직후 재판정 일대 소란…빗썸 "법원 판결 존중한다" 입장 밝혀 무죄 판결 이후 재판정은 소란에 휩싸였다. 눈물을 흘리는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 의장을 향해 코인 투자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투자자 측은 "검사 나와라", "판사 나와라"를 비롯해 이 전 의장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투자자로 추정되는 40대 남성이 난동을 피워 법정 경위가 퇴정을 명하기도 했다. 몰려든 취재진과 항의하는 투자자 인파에 이 전 의장의 퇴정이 약 15분간 미뤄지기도 했다.
가까스로 법정을 빠져나온 이 전 의장은 무죄 심정을 묻는 취재진을 향해 "죄송합니다. 다음에…"라는 말을 남기고 빠져나갔다.
이후 빗썸 측은 공식 입장을 통해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라면서도 "빗썸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정훈 전 의장은 빗썸의 경영에 일체 관여하고 있지 않다"라고 밝혔다.
sos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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