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복원의 희망’ 전한 재두루미 ‘2A9’···22년의 여정 끝내다

김기범 기자 2023. 1. 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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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약 1만마리 남은 멸종위기
인공부화센터서 11개월 뒤 야생으로
짝짓기에 알 낳고 새끼까지 키워내
“자연 복원의 희망 증명한 사례”
최근 세상을 떠난 재두루미 2A9가 한 논에서 휴식을 하고 있는 모습. 조류 연구가 도연 스님 제공.

22년 간 ‘자연 복원의 희망’을 온몸으로 증명해 온 재두루미 암컷 ‘2A9’가 지난달 세상을 떠났다.

러시아 출생 재두루미 2A9는 지난달 30일 강원 철원 양지리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다른 야생동물이 사체 일부를 훼손한 뒤였다. 전문가들은 2A9가 죽은 지 1~2일 정도 지난 것으로 추정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 감염 여부는 아직 판명되지 않았다.

2A9는 전 세계에 약 1만마리가량 남아있는 국제적 멸종위기 조류 재두루미 중 한 마리였다. 그러나 인간에게도, 자연에도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다른 야생동물과 달리 생애 가운데 상당 기간을 인간의 눈이 닿는 곳에서 생활하면서 인간이 자연을 보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동식물을 소중히 여기면 훼손됐던 자연이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인공부화장에서 태어난 2A9가 야생으로 나가 짝을 만나 알을 낳고, 새끼를 성공적으로 키워내는 과정에서 여러 나라의 과학자와 환경단체가 회복과 복원의 영감을 얻었다.

최근 세상을 떠난 재두루미 2A9(왼쪽)가 강원도 철원의 한 논에서 짝인 수컷과 함께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 조류 연구가 도연 스님 제공.

2001년 5월17일 그가 처음 알에서 깨어난 곳은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 킨간스키 자연보호구 두루미 인공부화센터였다. 새장에서 자란 부모와 달리 2A9는 야생적응 훈련과정을 거쳐 2002년 4월12일 자연으로 나갔다. 2A9라는 이름, 정확히는 일련번호가 담긴 가락지를 다리에 부착한 채였다.

2A9는 야생적응이라는 높은 문턱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2A9의 모습이 국내에서 처음 포착된 것은 2004년 3월이다. 조류학자인 이기섭 한국물새네트워크 대표가 철원에서 아직 짝을 짓지 않은 채 무리 내에서 생활하는 그를 발견했다. 재두루미들은 부모와 새끼가 함께 생활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는데 성조가 돼 독립한 재두루미들은 짝을 짓기 전까지 무리를 지어 다닌다.

국제기구인 동아시아대양주철새이동경로파트너십(EAAFP)에 따르면 2A9 가운데 A는 1989년 이후 러시아 킨간스키 자연보호구에서 방사되었다는 의미다. 조류를 방사할 때 붙이는 가락지 색깔과 적어놓는 일련번호는 국가와 지역, 종에 따라 다른데 한국의 경우 두루미류를 방사할 때 흰색에 ‘K’로 시작하는 세 글자의 일련번호를 사용한다.

최근 세상을 떠난 재두루미 2A9(가운데)가 생전 철원의 한 논에서 두루미들과 함께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 조류 연구가 도연 스님 제공.

2A9는 보기 드물게 야생 방사 후 짝짓기와 육추(알에서 깐 새끼를 키움)에 성공했다. 그리고 20년 넘게 살아남았다. 그의 앞뒤로 방사된 재두루미 수는 200여마리에 달하지만 야생 재두루미들과 함께 겨울철 한반도, 일본 등으로 남하한 개체는 일부다. 그들 중 짝을 짓고 번식을 시도한 개체는 더 드물며 알을 낳고, 새끼를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키워낸 개체는 확인된 바가 많지 않다.

2A9는 사육장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인간의 손길을 거친 후 자연으로 돌아간 개체임에도 야생의 본성을 따라 철새답게 이동하고, 번식을 통해 새끼를 키워내고, 오래도록 살아남는 등 여러 개의 관문을 모두 통과한 개체였다. 사람들은 2A9를 통해 인간에 의해 훼손된 자연이 다시 원형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러시아의 인공증식과 일본, 한국 등의 월동지 환경 개선 노력 등으로 1990년대까지 5000마리 정도로 급감했던 전 세계 재두루미 수는 현재 1만마리 정도로 회복됐다.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는 대부분이 러시아, 중국에서 봄여름가을을 보내며 번식하고, 일본, 한국 등에서 월동한다.

최근 세상을 떠난 재두루미 2A9(오른쪽)가 생전 철원의 한 논에서 두루미들과 함께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조류 연구가 도연 스님 제공.

2A9는 야생 방사된 뒤 새장 속 부모를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 이 대표는 “2008년 킨간스키 자연보호구를 방문했을 때 2A9가 방사되기 전 사육했던 연구자들을 만나 이 개체가 다시 부모를 만나러 왔다는 사연을 들었다”며 “야생에서 수컷 재두루미와 짝을 맺은 후 부모 재두루미가 사육되고 있는 자연보호구 내 섬에 찾아왔다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게다가 혼자가 아니라 마치 ‘나 결혼했어요’라고 자랑하듯 야생의 짝과 함께 부모를 찾아 한참 동안 머물렀다 가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들었다”며 “이런 사연 덕분에 2A9는 두루미 인공부화센터에서 사육했던 이들이 각별히 사랑했던 새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아직 러시아 측에는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달되지 않았다.

2A9는 한국에서 많은 이들의 눈에 띄었던 재두루미다. 어릴 때 야생에 적응하도록 사람이 들판에서 먹이를 찾아주고, 먹도록 한 탓인지 경계를 덜 하는 편이었다. 다른 재두루미들은 사람들이 논에 가까이 오거나 사람이 탄 차가 오래 서 있으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2A9는 경계심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날아서 도망가는 일이 적은 편이었고, 날아갔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인간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야생에 잘 적응했다.

재두루미들은 한국, 일본에 월동을 위해 남하할 때 같은 위치의 논밭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휴식하는 경우가 많다. 2A9 역시 짝을 짓고, 새끼를 낳은 뒤 민통선 지역인 철원 양지리 인근의 특정한 논에서 계속해서 관찰됐다.

여러 차례 그를 관찰했던 조류연구가 도연 스님은 “광활한 자연에 익숙히 알고 있는 새가 있다는 건 놀랍고, 또 환희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도연 스님은 “같은 논이나 주변에 머물러서 보이면 무척 반가웠고, 안 보이면 서운하고 했었다”고 말했다.

2020년 2월 15일 강원 철원군 민통선 내 농경지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김기범 기자

2A9의 사인이 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AI일 수도 있고, 혹한과 먹이 부족일 수도, 또는 두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철원군은 그의 사체를 광주광역시에 있는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으로 보내 검사를 요청했다.

최근 세상을 떠난 재두루미 2A9의 폐사체 모습. 한국조류보호협회 철원지회 김수호 사무국장 제공.

그의 사인이 어느쪽으로 판명되든, 2A9의 탄생이 인간에 의한 것이었던 것처럼 죽음 역시 인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AI에 의한 폐사일 경우 애초에 이 질병의 전파와 고병원성 변이 바이러스 발생에 있어 공장식 축산방식에 따라 가금을 좁은 공간에서 대량사육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혹한과 먹이 부족 역시 인간들의 개발에 의해 월동지 환경이 계속해서 척박해져 갔다는 점에서 인간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 대표는 “작년과 재작년 2A9가 새끼 없이 남하해 월동하는 모습이 관찰됐다”며 “여러 차례 육추에 성공해온 야생 재두루미가 육추에 실패한 것은 노화로 인해 체력이 많이 떨어진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체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최근의 한파가 20살이 넘은 재두루미에게 견디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동물원에서는 60년 넘게 산 기록도 있지만 야생 재두루미가 22년을 사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 대표는 “2A9는 많은 이들의 노력을 통해 야생으로 돌아가면서 희망을 줬던 개체이자 많은 이들이 애정을 갖고, 지켜봐 온 개체”라면서 “인간이 보호 의지를 갖고 노력하면 새들을 살려낼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라고 말했다. 또 “인간이 자연을 잘 보전하고, 관심을 가지면 이렇게 아름다운 새들이 우리 곁에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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