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이냐 관광이냐…재생 에너지 확대 놓고 갈등하는 유럽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 국가들이 재생 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에너지 가격 급등에 신음하는 제조업계와 관광 자원과 경관 파괴를 우려하는 지역주민 사이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21년 EU의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0%에서 4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안보 불안이 커지자 집행위는 지난해 5월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치를 40%에서 45%로 높였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삼는 법안을 마련해 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유럽 제조업계는 재생 에너지를 저렴한 가격에 확보하기 위해 비상이 걸린 상태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으로의 에너지 공급을 줄이면서 철강과 알루미늄부터 설탕과 화장지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거의 모든 제조업이 에너지 가격 급등의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에너지 사용 비중이 높은 철강 산업 부문에선 지난해부터 문닫는 업체들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재생 에너지 사업자들이 기업 고객들을 찾아다녀야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재생 에너지 공급 계약을 맺으려는 제조업체들이 앞다퉈 재생 에너지 사업자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역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려는 지방정부들도 해당 지역 기업들의 편의를 위해 풍력 터빈이나 태양광 패널 등 재생 에너지 설비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반면 지역 주민들은 지역 풍광과 귀중한 관광자원이 훼손된다며 유럽 곳곳에서 재생 에너지 설비 확대 사업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주는 지난해 11월 서부 산시프리안 인근에 풍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산시프리안에 있는 미국 기업 알코아의 알루미늄 제련소를 정상 가동하기 위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뿐만 아니라 갈리시아에 있는 일본 화학기업 쇼와덴코, 중국 썬치린 타이어, 스페인 가스회사 레가노사도 공장 가동에 풍력 에너지를 사용할 계획이다. 갈리시아주에는 이외에도 270개에 이르는 풍력 발전소 건립 프로젝트가 주정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건설 예정지 인근 주민들은 풍력 터빈이 경관을 해치고 소음 등으로 생활 기반을 파괴한다며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문화재 파괴에 따른 관광산업 위축도 문제다. 갈리시아에는 고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유적들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코스도 갈리시아주를 지나간다. 관광업은 갈리시아 주정부 총생산의 10%, 고용의 11%를 책임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중서부 라치오에 162㎢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의회와 고대 에트루리아 유적지 보존을 이유로 이에 반대하는 문화부의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실비아 프레골렌트 의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재생 에너지 개발이 중대한 과제가 됐지만 여전히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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