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고통을 전시하고 싶지 않았어요”…‘오매라’ 이호재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아내는 남편에게 “당신이 와서 밥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하고, 집을 나갔던 남편은 그 길로 다시 돌아와 앞치마를 두른다. 그것은 비극이지만, 진짜 비극으로 끝날뻔 한 가족을 마지막 순간 웃게 한 희극의 시작이기도 했다.
왓챠 오리지널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감독 이호재)는 한 끼 식사가 소중해진 아내를 위해 서투르지만 정성 가득 음식 만들기에 도전하는 남편과, 그의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다. 강창래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던 동명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다.
드라마는 가족보다 일을 우선시해온 남편 창욱(한석규 분)이 암 말기 선고를 받은 아내 다정(김서형 분)에게 자신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요리를 배워나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제작사가 판권을 확보하고 영화화를 준비하다가 드라마로 선회하면서 연출 제의가 왔어요. 각본 작업을 하면서 보니, 제가 봐도 영화로 만들긴 어렵겠다 싶었죠. 2시간 짜리 이야기로 간다면 시한부 소재에 흔히 신파라 불리는 이야기로 갈 수밖에 없거든요. 드라마로 해서 음식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간접적이긴 하지만 세심하게 풀어갈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소재 자체는 신파지만 드라마는 결코 신파로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시트콤 같은 장면들도 종종 연출된다. 이 감독은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연출하면서 피하고 싶은 연출로 “고통의 전시”를 꼽았다.
“이것은 저의 선택이고, 이게 올바른 선택이 될 수도,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요. 대한민국에 병을 앓고 계신 분들과 그분들의 가족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한 과정을 보내고 있는지 알기에, 그걸 세밀하고 길게 보여주는 게 맞느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슬픈 시트콤 콘셉트를 잡았습니다. 가능한한 아픈 장면은 행간에 뒀어요. 사실 소화기 계통의 암환자가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날은 흔하지 않아요. (각 화가) 그런 날 위주로 진행된다고 설정하고, 이른바 고통의 전시랄까요. 아픈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일부러 배제하고 진행했습니다. 다만 반대로, 이게 얼마나 힘들고 아픈 병인데 이렇게 가볍게 다루느냐는 반대 의견도 있을텐데, 그것은 제가 받아들여야 하는 소중한 의견이라 생각합니다.”
“원작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굳이 누군가를 영웅시한다거나 누군가를 가련하게 만들게 하지 않기 위해 낯간지럽지 않게 해줘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김서형 씨에게서 먼저 떠난 부인의 모습이 굉장히 많이 보였다고 말씀하셔서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작품 안에서 다정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그리 많진 않아요. 아프다고 맨날 시든 꽃처럼 보여주지 말자는 데서 캐릭터를 구축했는데, 그게 실제 사모님의 모습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드라마는 각 인물을 좇는다보기는 음식을 통해 스토리가 풀어간다. 이 감독은 “각 화의 주인공은 음식이고, 음식에 따라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를 주목했다”고 말했다.
“원작을 읽다 보면, 전체적으로 각 꼭지가 음식 이야기예요. 레시피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저에게는 요리와 요리 사이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게 중요했어요. 제가 그걸 만들기보다는, 원작 속에서 그걸 찾아내는 게 어려웠죠.”
무엇보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한석규, 김서형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들 모두 믿고 보는 캐스팅에 200% 화답했는데, 특히 한석규는 자칭 ‘우’ 수준은 된다며 으쓱할 정도의 요리 실력을 뽐내는 등 그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도 보여준다.
이 감독은 극중 요리 장면을 다수 소화한 한석규에 대해 “본인은 수우미양가 중 우라고 했지만, 저는 수를 줘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이어 “짧지 않은 기간 자취 생활도 했다고 하고, 먹는 걸 보면 알지 않나. 음식에 대한 조예가 깊구나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양념 넣을 때도 거침없다. 요리에 자신 없는 사람들은 살살 넣는데 한석규씨는 팍팍 넣는다. 그런 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걸 보며 ‘저 분은 요리를 해본 분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모든 장면에서의 모든 연기가 ‘신의 한 수’와도 같았던 한석규지만, 극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내레이션을 봐도 그는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의 최고의 캐스팅이었다. 이 감독은 “대본 작업을 할 때만 해도 누가 캐스팅될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석규가 내레이션을 하니 뭔가 더 진정성 있고 귀에 잘 꽂히는 효과는 분명 누리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기존 작품에서 보여줘 온 ‘센 캐릭터’에서 대장암 말기 시한부의 삶을 지나고 있는 아내이자 엄마 역할로 변신한 김서형과의 호흡도 소개했다.
이 감독은 “나는 사실 ‘스카이 캐슬’도 안 봤고, 김서형의 센 캐릭터를 보지 못해서 그에 대한 선입견은 없었다”면서 “함께 작업하면서 굉장히 영민하고 똑똑한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캐치가 빠르고, 표정 하나만 봐도 ‘이 사람이 나랑 소통하는구나’ 느끼게 해줬다”고 찬사를 보냈다.
창욱이 아내 다정과 아들 재호를 위해 요리를 하는 행위, 다정과 재호에게 남편 그리고 아빠가 만든 음식은 어떤 의미일까.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실제로 작가님의 사모님께서 ‘나를 좀 돌봐달라’고 부탁했을 땐, 그런 게 숨어있는 것 같다. ‘나 가고 나서 이 사람들이 밥 한끼라도 제대로 해먹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아내의 저변에 깔려있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했고, 그런 추측에서 이야기를 끌어올린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사실 다정이 남편의 보살핌을 받기도 하는 거지만, 남편이 한 끼 식사를 스스로를 만들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점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또 자연스럽게 아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 누구와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냥, 눈물을 보고 우는 눈물이 아니라, 그들의 이별이 서글퍼서 올라오는 눈물이었으면 했어요. 후반부로 갈수록 슬프고, 제가 꼽는 클라이막스 회차는 8화 삼겹살 에피소드 편인데, 감정적으로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인 부분이에요.”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로 음식을 소재로 한 웰메이드 콘텐츠 대열에 함께 하게 된 이 감독은, 음식을 소재로 한 담담한 서사의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에 대한 견해도 더했다.
“사실 저도 궁금했어요. 2010년부터 요리에 관련된 이야기, 셰프 관련 이야기가 영화든 예능이든 드라마든 굉장히 많이 만들어졌는데, 처음엔 유행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관련 콘텐츠가 쉬지 않고 나오는 걸 보면 분명 사람들이 소구하는 감정이라는 게 있구나 싶어요. 소울푸드라던지, 미각에서 오는 만족감이나 행복? 어떻게 보면 그런 것들이 가장 보편적인 감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요리 소재 작품) 수요가 꾸준할 것 같아요. 음식 가지고 싸우는 이야기를 만들 순 없으니까요. 센 이야기에 지치신 분들이 이런 부분에 힐링하시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감독은 담담한 전개에서 따뜻함을 전하는 작품인 만큼, “있는 그대로 편하게” 작품을 봐줄 것을 당부했다.
“사실 관전 포인트라기보다는, 우리 드라마는 이야기의 굴곡이 세거나 이른바 목청이 큰 드라마는 아니에요.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드라마고, 다소 심심하다고도 하시는데, 사실 작은 목소리가 사람을 더 집중하게 할 때도 있지 않나요. 집중해서 보면서 디테일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봐주시면 좋겠어요. 굉장히 슬픈 이야기인데, 그 안에서도 사실 따뜻함이 전달되는 이야기죠. 그걸 있는 그대로 편하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드라마는 OST 감독으로 나선 싱어송라이터 정밀아의 음악을 만나 그 깊은 울림이 더해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마무리하는 11, 12부는 오는 5일 오후 5시 OTT 왓챠에서 공개된다.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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