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정환 “다음 발사체 성공 조건 말했는데 왜 현장 경험자 목소리에 귀를 닫나”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만큼 작년 한 해를 다사다난하게 보낸 인물도 없다. 고 본부장은 지난해 6월 21일 첫 국산 우주발사체인 한국형발사체(KSLV-Ⅱ) 누리호 발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러시아와 공동 개발한 소형위성발사체 나로호를 바탕으로 십여년에 걸쳐 우리 기술로 발사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본 순간이었다. 지난해 7월에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록’에 출연해 “나로호 연구로 기술 축적을 했기 때문에 누리호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성공의 환희는 오래가지 않았다. 항우연은 12월 12일 발사체 연구소를 신설하고 누리호 개발을 주도한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를 연구소 산하에 두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연구소 산하에 발사체사업본부와는 별도로 누리호 고도화사업단과 차세대 발사체 개발사업단을 뒀다.
차세대 발사체 개발사업은 누리호보다 성능이 뛰어난 발사체를 개발하는 사업으로 앞으로 10년간 예산만 2조132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누리호도 네 차례에 걸쳐 반복 발사가 남아 있다. 차세대 발사체 개발사업과 누리호 고도화 사업을 투트랙을 진행하기 위해 조직 효율화가 필요하다는 게 항우연이 설명한 조직개편의 배경이다.
하지만 누리호 개발을 이끈 고정환 본부장은 이상률 원장이 밀어붙이는 조직개편에 반발해 보직 사퇴라는 초강수를 뒀다. 고 본부장은 누리호 고도화 사업단장을 겸직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누리호 발사 성공에 이어 달 궤도선 다누리의 성공으로 모처럼 한국의 우주 산업계와 학계는 축제 분위기이지만, 정작 주인공인 항우연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연말을 지냈다.
고 본부장은 12월 내내 연락이 되지 않았다. 밀린 연차를 모두 사용하며 항우연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새해 두 번째 업무일인 3일 대전 항우연의 사무실에 출근했다. 조선비즈는 이날 오전 고 본부장과 40분에 걸쳐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고 본부장은 인터뷰 내내 차분하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잠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지냈나.
“사실 12월은 좀 쉬고 싶었다. 작년 6월에 누리호 발사를 끝내고 7월은 한 달 정도 쉬었다. 그러다가 차세대 발사체 개발사업의 예타 심사를 담당했다. 고도화 사업의 체계종합기업 선정도 이어져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원래 12월은 좀 쉬어야 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휴가를 내긴 했는데 별로 쉬지는 못한 것 같다. 자녀들 이사도 도와주고 그러면서 지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과 12월 28일에 만났다고 들었다. 어떤 이야기가 있었나.
“제 생각을 여쭤보셔서 제가 생각하는 바를 말씀드린 것이다. 사람들이 제가 사퇴서를 던진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런 부분을 설명드렸다.”
-어떤 부분에서 오해가 있다고 생각하나.
“단순히 조직개편에 반대해서 사퇴서를 냈다고 알려졌는데, 그게 아니다. 바뀐 환경에서는 일을 성공적으로 이끌기가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일을 맡아서 하면 책임이 주어질 텐데, 상응하는 권한이나 자원이 똑같이 주어져야 할 것 아닌가. 바뀐 체제에서는 그게 어렵다고 봤다.”
-자세히 설명해달라.
“발사체의 성공적인 개발을 위해 제일 중요한 조건이 사람과 조직이다. 그런 것들이 다 없어져 버리면 혼자 일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매트릭스’라는 조직개편의 방향은 그다음 문제다. 저는 22년 정도 발사체에서 일을 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을 드려왔다. 이것에 동의를 하지 않으면 제 얘기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의미도 된다. 제가 경험한 바로 이렇게 되면 일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씀을 드리는데, 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서로 대화를 하기 어렵다.
발사체 같은 경우 수백 개 이상의 부품을 새로 개발해야 하고, 우리나라에 원래 있는 기술이나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배워가면서 하나씩 개발을 해나가야 한다. 1차는 최종적으로 실패했고, 2차도 연기를 했다. 이런 일이 흔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고, 아직 우리는 선진국처럼 부품이나 제작이 일정한 수준으로 나오는 단계가 아니어서 사람이 직접 관여할 부분이 많다. 중간 단계에서 팀장이나 부장들이 책임을 지고 업무적 판단이나 결정을 해주고, 최종적으로 저한테 올라오면 그런 판단을 근거로 발사를 하는 거다. 결정 하나하나들이 굉장히 쉽지 않고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지금 바뀌는 조직에서는 그런 것들이 없다. 책임은 여전히 저한테 있는데 제대로 된 권한이 없으니 업무를 할 수가 없다고 본다. 20년 이상 이런 방식으로 해왔고,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결국 발사까지 성공했는데, 모든 게 한순간에 바뀌면 일을 과연 할 수 있을까.”
-해외에선 이상률 원장의 조직개편 방향대로 매트릭스 조직을 갖춘 곳들이 있다는 반론도 있다.
“비슷비슷한 규모의 사업이 여러개면 그런 방식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큰 과제를 중심으로 다른 작은 과제가 있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그동안은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큰 과제였고, 앞으로는 차세대 발사체가 큰 과제다. 10년 동안 2조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가는 국가적인 큰 과제다.
누리호 했으니 차세대도 쉽지 않겠냐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완전히 다른 부분이 많다. 차세대 발사체는 누리호보다 성능이 한 3배 정도 된다. 누리호는 1.5t이지만 차세대는 4~5t이 넘는 성능 향상을 보고 있다. 1단 같은 경우 누리호가 75t 엔진 4개를 써서 300t급이었다면, 차세대 발사체는 1단에 100t짜리 5개가 들어가서 500t급 추력이 나오게 된다.
엔진 효율을 끌어올리려면 새로운 엔진 방식을 써야하는데, 이 과정이 세계 정상급 발사체 기술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기술적으로 점프해야 하는 부분이 많이 있는 도전적인 과제인데 인력은 계속 그대로다. 차세대 발사체 사업 착수하면 TO(조직 인원구성)가 조금 늘어나겠지만 드라마틱하게 몇백 명이 늘어나는 게 아니다. 결국 비슷한 수준의 인력으로 큰 과제를 성공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차세대 발사체에 우선 집중하는 체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과제들은 그 과정에서 지원하고 수행하면 될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이다.”
-이상률 원장과 이견이 있지만 결국 차세대 발사체를 성공시키겠다는 목표 자체는 다르지 않다. 이견을 좁힐 여지는 없나.
“조직개편을 하더라도 좀 천천히 하면 어땠나 생각이 들지만, 이미 다 지나간 얘기다. 대화할 필요가 있으면 대화를 하겠지만 워낙 기본 생각이 다르다. 제가 생각하는 걸 바꿀 상황도 아닌 것 같고, 원장님도 원장님 생각하시는 걸 바꿀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굳이 (대면할) 상황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발사체 연구소가 출범했다. 누리호 고도화 사업단장에도 임명이 됐는데 받아들일 생각은 없는 건가.
“고도화사업단장으로 1월 1일자에 저를 임명하셨는데 저는 이런 상태로는 맡을 수 없다고 원장님께 말씀드리는 거다.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과기정통부에서 임명한 건데 이것도 사퇴하겠다고 한 거고. 둘 다 사퇴를 안 받아주고 계신 상태라고 보면 된다. 항우연을 나가는 게 아니라 보직을 사퇴하고 연구원으로 돌아가서 그전에 하던 일을 맡아서 하기도 하고, 후배가 하는 일을 도와주면서 할 수도 있고 그렇다.”
-오늘 사무실로 출근했다.
“어제까지가 휴가였고 오늘은 출근했다. 워낙 쌓인 일이 많고 한 해 정리를 제대로 못하기도 해서 오늘은 그런 걸 좀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자면 일을 하려면 조직과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만 있어도 안 되고 조직만 있어도 안 된다. 누리호 3차 발사가 무조건 되는 게 아니다. 1차는 실패했고, 2차는 성공했고. 발사체라는 게 집중해서 정신 차리고 일을 해야 되는데 지금 너무 어수선한 것도 있다. 중요한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조직과 사람이 필요하다고 계속 말씀드리는데 이걸 인정을 잘 안 해주시는 것 같아서 속상한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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