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행’ 채은성 “세번의 절망···그땐 꿈꾸지 못한 나의 2023시즌”[밥상 인터뷰]

안승호 기자 2023. 1. 3. 15: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화에서 새 시즌을 맞는 채은성이 27일 서울 잠실야구장 인근 한 교습소에서 개인훈련을 마친 뒤 식사를 하면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점심 메뉴는 갈비찜과 만두 그리고 회냉면이었다. 채은성(33)은 냉면이 나오기 전 만두 한 개와 갈비찜 두어 점에 젓가락을 가볍게 대더니 식사를 잠시 멈췄다. 채은성은 “겨울 훈련은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운동량이 충분하지 않다. 먹고 싶은 대로 다 먹다 보면 자칫 체중이 불 수 있어 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은성을 만난 것은 지난해 12월27일이었다. 채은성은 이른 아침부터 서울 잠실의 한 교습소에서 SK 와이번스 출신 주민재 코치의 도움으로 타격훈련을 했다. 공 하나하나를 받아칠 때마다 스윙궤도를 치밀하게 확인하던 채은성은 오전 훈련 뒤 기자와 마주한 점심 밥상 앞에서도 조금이라도 흐트러지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매시즌이 새롭지만, 이번 겨울은 조금 더 특별한 시즌이 되고도 있다. 채은성은 이번 겨울 FA(자유계약선수) 시장을 통해 6년 총액 90억원에 한화로 이적했다. 한화 구단과 한화팬들로부터 받는 기대 만큼이나 책임감도 커져 있다.

사실, 프로 유니폼을 막 입었던 풋내기 시절을 돌아보자면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채은성은 인생 첫 절망을 느낀 2008년 여름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절망 1

프로야구 신인지명 현장이 영상으로 중계되지 않던 때다. 채은성은 “F5(새로고침)를 반복해서 눌러 지명 결과를 기다리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순천고 3학년이던 채은성은 PC 모니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프로 지명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학을 선택해서 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채은성은 “갈 곳이 없어 결국 군 입대를 할 생각이었다. 제대하면 아예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라고 말했다.

프로 지명 이후 이어진 봉황기 대회를 앞두고 “조금 더 해보자”는 서창기 효천고 감독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구체적 목표를 갖고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타격성적이 괜찮았던 봉황기 대회 이후 다른 기회가 생겼다. 대회를 지켜보던 염경엽 당시 LG 스카우트 팀장이 채은성을 찾아와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이에 채은성이 “군대로 간다”고 하자 염 팀장은 곧바로 ‘육성선수’로 입단을 제안했다. 동시에 KIA에서는 입단 테스트를 제안했다. 채은성은 테스트 없이 입단을 보장한 LG를 선택했다.

■절망 2,3

프로 유니폼을 입은 것만으로도 마냥 좋았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두번 째 절망이 찾아왔다. 지명을 받고 입단한 오지환, 문선재 등과 함께 훈련을 하는 동안 충격을 받았다. 채은성은 “나도 훈련으로 유명한 학교를 나왔는데 함께 운동하다 보니 내가 엄청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력 차이를 절감하면서 창피하기까지 했다”며 “그저 어떻게든 ‘따라나 가보자’라는 생각으로만 했다”고 말했다. 채은성은 바로 그때를 두고 “나 또한 달라지기 시작한 시기다. 잘하지는 못해도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채은성이 지난달 27일 서울 잠실의 교습소 J스포츠 베이스볼아카데미에서 타격훈련을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2010년 6월 진짜로 입대를 했다. 특기병(의장대)으로 뽑혀 군생활을 한 채은성은 지금도 방망이를 총 다루듯 하며 빙빙 돌리는 묘기를 선보인다. 군생활 1년10개월은 나쁘지 않았다. 야구 좋아하는 간부들의 배려로 신체 단련도 할 시간을 만들었다. 제대할 즈음에는 하드웨어도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눈 앞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시 절망이었다. 2012년 3월 팀으로 돌아와 기회가 많은 포수로서 훈련을 이어갔는데 그만 ‘송구 입스’에 걸리고 말았다. 채은성은 “야구선수로 끝났구나. 정말 다른 일 알아봐야겠구나,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희망 하나

그때 2군에 있던 신경식 코치가 채은성에게 “넌 방망이 소질이 있으니 야수로 뛰면서 타격으로 승부를 보라”는 조언을 했다. 그곳에 희망이 있었다. 채은성은 2014년 2군 34경기에서 타율 0.403을 기록하던 중 양상문 감독이 지휘봉을 새로 잡은 1군의 부름을 받았다. 채은성은 그해 타율 0.277로 첫 1군 이력을 남겼다.

채은성은 2016년 첫 3할타율(0.313)을 기록한 뒤로 팀 선배이던 박용택과 틈만 나면 야구 얘기를 나눴다. 박용택 선배가 그때 늘 해주던 얘기는 “넌 더 공격적으로 하라”는 것이었다. 채은성은 “내 스스로 방어적인 타자였지만 그때를 기점으로 달라졌다”고 말했다. 채은성의 타격폼은 톡특하다. 왼발 스트라이드와 함께 확실한 중심이동을 하며 타격을 한다. 마음가짐부터 공격적이었기에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던 폼이었다. 채은성은 2018년 타율 0.331 25홈런 119타점으로 만개한다.

■박용택과 김현수

박용택에 이어 채은성에 큰 영향을 준 선수는 2018년부터 LG에서 함께 한 김현수다. 채은성이 김현수와 함께 한 5년의 경험은 한화 이적 뒤 클럽하우스 리더로 역할 하는 데 하나의 ‘힌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현수는 후배들에게 이것저것 주문이 많은 선배다. 연차 구분 없이 잔소리도 많이 한다. 그런데 누구도 그 말을 거역하지 못한다.

채은성은 “현수 형은 야구를 잘할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 야구 생각밖에 없는 사람”이라며 “현수 형이 한마디 하면, 그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은 형이 먼저 모범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채은성은 “현수 형은 스프링캠프 때면 새벽 6시에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자율이지만, 그걸 보고 한명씩 따라나가게 된다”며 “버스로 이동할 때도 미국야구, 일본야구 가릴 것 없이 야구만 본다”고 말했다.

한화에서 새 시즌을 맞는 채은성이 27일 서울 잠실의 교습소에서 개인훈련을 마친 뒤 식사를 하면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한화의 꿈, 나의 꿈

채은성은 “한화에서 내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야구를 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입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채은성은 한화의 새로운 리더로 후배들을 끌어가야 할 자리에 서 있다. 채은성은 “혼자 힘으로만 되지는 않는다. 고참 선수들과 함께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한화는 최재훈과 노수광 등 또래의 고참선수들이 있다.

채은성은 FA 시장이 열리자마자 확실한 제안을 해준 한화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이에 ‘가을야구’를 화두로 꺼내며 ““LG에서 가을야구를 하기 시작하면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사실 그런 압박감 속에 경기를 해봐야 젊은 선수들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6년 동안 계속하면 좋을 거 같다. 후배들과 시너지를 내서 결과를 낸다면, 그보다 더 재미있고, 보람된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채은성은 스스로 설정한 ‘한계’를 넘어선 선수라고 말한다. “야구를 좀 하면서 내 스스로 어느 정도의 선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미 벽을 극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만년 바닥권에 있는 한화 또한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해온 ‘벽’을 넘어설 때다. 2023시즌은 채은성이 함께 한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