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지지도 이끌어내라”···새해 맞은 노동계의 숙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일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단 예외는 있다. ‘조직화한 노조’다.
윤 대통령은 대선 예비후보 때부터 민주노총에 대해 “더는 약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노동시장 하층위에 속한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요구마저 민주노총에 소속돼 있으면 ‘기득권’ ‘귀족 강성 노조’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지난해 화물연대 총파업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노조를 “척결해야 할 부패 세력” 이라고도 했다. 2023년 윤 대통령의 ‘노조 때리기’는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더 강하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 전반에 ‘노조 혐오’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윤 대통령이 노조를 공격하면 공격할 수록 대통령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다.
노동계는 새해에 큰 숙제를 풀어야 한다. 노골적으로 노조를 탄압하는 정권에 맞서 싸우면서, 대중의 지지도 끌어내야 한다. 절대 쉽지 않은 길이지만 반드시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노동전문가들은 노조가 앞서 ‘노동 3권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의 힘을 키우고, 경직된 노조법을 개정하면서, 정부보다 먼저 의제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제도 밖 노동자’의 힘을 키워야
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노·노간 착취구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노조 재정을 들여다보겠다는 것도 이러한 인식에서 나왔다. 그러나 ‘제도 밖 노동자’의 권익향상에 대한 정책은 뚜렷하게 내놓은 게 없다. 윤 정부는 출범 초기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전속성 요건폐지 등을 추진한 이후 취약계층이 당면한 문제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있다.
노동3권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에게 사측과 교섭할 수 있을 정도의 협상력이 절실하다. 노동전문가들은 노동계가 이 지점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지위로 인정되지 않는 특수고용,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3권 사긱지대에 있어 노조 조직이 어렵다. 고용노동부는 “특고의 노동3권 보호를 위해 노조 설립필증 발급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하지만 노조 설립필증을 발부받기까지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그 과정에서 소송까지 거치는 사례도 있다.
‘평범한 노조’라면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하고 설립필증을 받는데 짧게는 3일, 평균 일주일 정도 걸린다. 그러나 전국대리운전노조는 2020년 7월 노조 설립필증을 받기까지 428일이 걸렸다. 노조를 만들어도 원청이 사용자 지위를 부정하면 교섭은 쉽지 않다. 대리운전 노조는 사용자인 카카오모빌리티와 한 테이블에 앉기까지 1년여 시간이 또 걸렸다. 택배노조 역시 노조로 인정을 받고도 ‘교섭 상대방 찾기’를 계속하고 있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임금 노동자에 기반한 노조 조직률이 14%에 불과한 상황으로, 제도 밖 노동자의 지위 인정이 중요하다”며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국제노동기구(IL0) 87호가 국내에서 비준된 만큼 우리 정부와 지방행정 관청에서 이 취지에 맞게 노조 설립을 발급하고, 노조 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노동시간 개편을 담은 입법안을 추진한다. 근로자대표와 사용자가 서면합의를 하면, 주 69시간까지 노동이 허용된다. 그러나 근로자대표의 대상, 선출방법 등은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다. 정부 입법안이 우선 추진될 경우 노조가 미약한 30인 이하 사업장에서 노동자는 더 취약한 지위에 놓일 우려가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평등 양극화 구조를 건든다고 하면서 원인을 기존 노조에 돌리고 정작 기업편에 서서 소위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모순의 빈틈을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직된 노조법 개정하기 위한 목소리 더 키워야
지난달 28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특고 지위인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의 위법행위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과징금을 부과했다. 정규직 임금 노동자가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공정거래법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정부가 특고의 ‘약한 고리’를 집요하게 파고든 셈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해서도 공정거래법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노동자의 지위 범위를 확대하는 안 등을 담고 있는 일명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은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노란봉투법 입법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올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노동시민단체인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는 3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 개정안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은 비정규직, 특고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부담을 지라는 뜻이다”고 비판했다. 운동본부는 국회 환노위 개최를 촉구하는 2600배를 진행했다.
올해 여야 합의를 통해 입법안으로 추진될 사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노동계가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권익향상’을 위해 중심을 잡고 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두섭 변호사는 “비정규직이라든지 현실적으로 노조 지위를 얻기 어려운 이들이 사업장에서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 갖고, 이들의 파업 행위가 불법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데 총연맹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조 때리기’ 혈안, 노동계 선제 전략 필요
현 정부가 ‘노조 때리기’ 흐름을 밀고 가는 배경엔 어느새 한국 사회에 가득 찬 노조 혐오 분위기가 있다. 민주화 시기 출범한 노조의 역할이 분배 개선에 기여하기 보다 소수의 조직된 사업장에만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팽배해진 것이다.
노조가 정부보다 먼저 사회에 설득력 있는 의제를 던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막무가내식으로 내모는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계가 직접 의제를 발굴해 제시하라는 주문이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노노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결국 조직화한 노조를 ‘부패’라는 이름으로 프레임 씌우기 위함으로, 윤 정부가 취약층에 대한 준비가 돼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이 시점에서 노조가 해야 할 일은 자유로운 노조 활동 보장, 납품단가 후려치기 근절 등 정말 취약 노동자들을 위해 필요한 의제를 발굴하고 정부에 촉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진 이사장은 “미진했던 부분을 포함해 미조직한 노동자를 조직화하려는 노력을 조합원들과만 공유할 것이 아니라 대외적으로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 방법의 시작으로 노조가 걷는 조합비를 사회정의기금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 이사장은 “결국 시민들과 얼마나 소통하는지가 중요하다. 기금 활용을 통해 권익 홍보를 하고 노조가 요구하는 법 제도를 쉽게 전달하는 방식들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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