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신은 정의선, '격식 파괴' 신년회…"ICT 회사처럼 치밀해야"
"변화무쌍 조직위해 지속 인사"…불확실한 미래 퍼스트 무버 고민 담겨
(서울=뉴스1) 이형진 기자 = "우린 자동차 회사지만, 이제는 ICT회사 같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3일 계묘년 새해를 맞아 열린 신년회 자리에 캐주얼 셔츠와 니트, 운동화를 신고 무대에 올랐다. 이날 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글로벌 R&D 메카인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신년회는 '격식 파괴' '능동적인 조직 문화'로 대변되는 행사였다.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신년회에는 스타트업 기업 컨퍼런스를 연상케 하는 키노트 스피치용 백월과 소파가 놓였다. 진행은 장재훈 현대차 사장이 맡았다. 이같은 행사 방식은 정 회장이 직접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해 메시지를 정 회장과 경영진이 직접 밝혔고, 직원들은 자유롭게 질의 응답하면서 소통·교감했다.
정 회장은 "(배경) 음악이 클럽에 온 것 같아 좋다. 떡국은 드셨냐. (저는) 1월1일에 세번을 먹어서 저녁에는 장모님이 김치찌개를 끓여주셨다"며 "새해 건강하시고, 여러분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부드러운 언사로 신년사를 시작했다.
정 회장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기존의 관성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능동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멈춘 문화는 쉽게 오염되고 깨지기 마련"이라며 "결과에 대한 두려움 없이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사 제도의 변화도 예고했다. 과거처럼 정기적인 인사로 정체된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스타트업처럼 필요에 따라 인사를 실시해 능동적인 조직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정 회장은 "자유롭게 일하는 기업 문화가 되어야 하고, 능력이 존중받는 일터가 돼야 한다. 원칙과 상식이 바로서는 근로환경을 조성하겠다"며 "다양성을 존중하고, 변화무쌍한 조직 문화로 자리잡도록 지속적으로 인사를 해서 제도 개선을 이어가고 과거의 단점을 과감하게 없앨 것"이라고 밝혔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도 "불확실한 경영 환경은 (우리에게)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을 던질 것이고, 시도해본 적 없는 답을 찾게 할 것"이라며 "인재를 존중하는 제도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박정국 연구개발본부장(사장) 역시 "우리 회사는 이제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바뀌고 있다"며 "우리 스스로 정답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실패는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다. 모든 조직의 장이 실무자가 실패할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이 이같이 능동적 조직 문화를 강조한 것은 미래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기대가 커짐과 동시에 자동차와 전자제품 간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다. 전기차 시장은 커졌지만, 전기차의 심장과도 같은 배터리의 단점은 여전하다. 자율주행과 수소전기차 발전은 아직 더디고, 로봇과 AAM(미래항공모빌리티) 등도 아직은 먼 미래다. 불확실한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선 능동적인, 격식 없는 조직 문화로 가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정 회장은 "앞으로 자율주행 레벨 4, 5의 차가 되면 (차량 한 대에) 반도체가 2000개 정도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자동차 회사지만 전자제품 회사보다 더 치밀하고 꼼꼼해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격식 파괴를 위해 아버지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에게 보고했던 일화를 사례로 들기도 했다. 정 회장은 조직 문화 방향성에 대한 직원의 질문에 "나 역시 명예회장에 보고할 때 이렇게 했는데, (상사에게 본인의 생각을 보고할 때에는) 나의 생각과 결론을 먼저 얘기해야 한다"며 "(자신의 생각을) 지속적으로 보고·설득하고, 보고를 받는 사람 역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시간 가량 진행된 신년회 후 직원들의 질문이 더 나오지 않자 "생각보단 질문이 없다"며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한 정 회장은 "자동차를 제조하지만, 어떠한 ICT 회사보다 더 치밀하고, 종합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꿈을 갖고 있다"며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에 이같은 꿈을 갖고 있다. 여러분들이 더 적극적으로 실력 발휘를 잘 할 수 있도록, 여기 있는 사장들과 함께 (근무환경을) 만들겠다"고 했다.
신년회 내내 격식파괴 등을 몸소 보인 정 회장은 행사 종료 후 직원들의 셀카 요청에 일일이 화답하는 한편 직원들과 남양연구소 식당에서 떡국으로 점심 식사를 함께하며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hj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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