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의 격식 파괴 신년회 “물 고이면 썩는다… 변화 통해 도약”

고성민 기자 2023. 1. 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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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은 드셨어요? 1월 1일에 떡국 세 번 먹어서 저녁에는 장모님이 김치찌개를 끓여주시더라고요.”

3일 오전 10시 30분 경기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 설계2동 대강당. 연단에 오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실내에 모인 임직원들에게 이같은 인사말을 건넸다. 작년 현대차그룹의 국내외 성과를 담은 영상을 임직원과 함께 시청한 직후 무대에 선 정 회장은 “(영상 속) 배경음악이 클럽에 온 것 같아 참 좋다”며 농담을 던졌다.

정 회장은 신년회가 끝난 후엔 남양연구소 내 식당에서 직원들과 떡국 등 새해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일상생활과 새해 포부 등 다양한 화제로 대화를 나눴다. 신년사 연설로만 그치는 딱딱한 신년회 대신 연구소 직원들과 가까이서 소통한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일 경기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신년회를 열고 임직원을 대상으로 신년사를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 정의선 “허례허식 없애고, 결과 두려워 말라”

현대차그룹의 이번 신년회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가 아닌 R&D(연구개발) 핵심거점 남양연구소에서 열렸다. 남양연구소에서 신년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의 도전과 변화 의지를 반영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이날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었다. 넥타이를 매지 않고 셔츠 위에 니트를 입은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으로 연단에 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일 경기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신년회를 가진 뒤 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정 회장은 신년사에서 2023년을 ‘도전을 통한 신뢰’, ‘변화를 통한 도약’의 한 해로 삼자고 말했다. 정 회장은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변화를 멈춘 문화는 쉽게 오염되고 깨어지기 마련”이라면서 “결과에 대한 두려움 없이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임직원들도 불필요한 허례허식을 정리해 유연한 업무방식을 생활화해주기 바란다”며 “능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조직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인사를 실시하고 제도적인 개선을 이어 나가 과거의 단점들을 과감히 없애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올해 경영환경에 대해선 “코로나19 여파에 금리와 물가가 상승하고, 환율 변동폭이 커졌을 뿐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해지며 경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 최고의 인재를 영입하고 기술을 개발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정 회장은 구체적으로 “연구개발을 비롯한 회사 전반의 시스템을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그래야만 보다 완벽한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를 만드는 역량을 확보해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소형원자로(SMR)와 같은 에너지 신사업 분야로의 확장을 추진하고, 더욱 안전한 초고강도 철강 제품 개발과 스마트 물류 솔루션 육성에 박차를 가해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을 지속 확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다가오는 위기를 두려워하며 변화를 뒤쫓기보다 한발 앞서 미래를 이끌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위기를 겪어왔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이겨낸 저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 최초의 타운홀 미팅 신년회

이번 신년회는 최초로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열렸다. 직원들이 질문하면 경영진이 직접 답했다. 타운홀 미팅 방식도 정 회장이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회장을 비롯해 장재훈 현대차 사장, 송호성 기아 사장, 박정국 연구개발본부 사장, 송창현 TaaS본부 및 차량 SW 담당 사장이 연단에 올랐다.

(왼쪽부터) 송창현 TaaS본부 및 차량 SW 담당 사장, 박정국 연구개발본부 사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장재훈 현대차 사장, 송호성 기아 사장이 3일 경기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갖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정 회장은 능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조직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묻는 직원의 질문에 “보고하는 문화를 간편하고 확실하고 효율적으로 하겠다”고 답했다. 정 회장은 “저는 명예회장(정몽구 회장)한테 보고할 때 제 생각과 결론을 먼저 얘기하고 이유를 설명했다”면서 “그런데 (제가) 보고를 듣다 보면, 결론이 없고 생각이 없다. A·B·C 세 가지 생각을 주고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고 했다. 이어 “보고하다 안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보고를 받는 사람 역시 받아들이는 자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영진이 임직원에게 직접 새해 경영 전략과 비전을 공유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장재훈 사장은 “2023년은 미래 생존을 판가름 짓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시장 내 경쟁은 심화되고 실력에 따라 냉혹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전동화 분야에서도 몇 년 안에 선두 그룹과 하위 그룹이 극명해지고, 그 격차는 점차 확대될 것”이라며 “현대차는 시장으로부터 인정받은 전동화 리더십을 확고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일 경기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신년회를 가진 뒤 직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송호성 사장은 “올해는 핵심 권역 시장 진입 전략 수립, SW(2025년 출시 예정인 PBV 모델의 프로젝트명)의 성공적인 개발, 유연한 생산 체계 구축, 고객의 니즈(수요)를 선제적으로 반영한 제품 및 솔루션 개발을 통해 시장과 고객 발굴을 본격화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창현 사장은 “연구개발을 비롯한 회사 전반의 시스템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의 전환’을 실행할 것”이라면서 “핵심 사업모델인 자동차라는 제품의 상품성을 서비스와 소프트웨어로 빠르게 개선하자”고 말했다. 박정국 사장은 “차량의 전동화, 디지털화가 급격히 진행돼 신기술,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면서 “기존 자동차 회사들뿐만 아니라 ICT(정보통신기술), 스타트업 등 다양한 이종 업체들과도 경쟁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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