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 돈줄 포기하는 아이러니…K바이오 경쟁력 바닥난다

박미리 기자 2023. 1. 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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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미래산업? 바이오 생태계 무너진다…해법은③

[편집자주] 바이오가 흔들린다. 시장가치는 급락했고 자본시장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다. 특히 생태계의 한 축인 바이오벤처는 극심한 유동성 위기에 노출됐다. 직원 월급이 밀리고 자산을 팔고 급기야 법인을 청산하는 사례도 나온다. 글로벌 바이오 시장은 주도권 다툼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산업의 뿌리인 기술 벤처가 살아야 바이오가 산다. 새해 바이오벤처는 다시 미래산업의 총아로 우뚝 설 수 있을까.

#파멥신은 3년간 진행한 재발성 교모세포종 신약 후보물질의 호주 및 미국 임상 2상을 2022년 중단했다. "임상 완료 때까지 상당한 추가 자금을 투입해야 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검토한 후 조기 임상 종료를 결정했다"는 게 회사가 밝힌 사유다. 파멥신은 2008년 설립됐지만 아직 연간 1억원의 매출을 올리지 못한다. 매년 적자만 수십억~수백억원 낸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R&D(연구개발)를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믿어준 투자자 덕분이다.

신약 개발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 최종 허가까지 통상적으로 10년 이상 걸린다. 이 과정에서 드는 비용만 평균 1조원에 달한다. 바이오 산업은 당장 돈을 벌지 못하면서 연구비를 쏟아부어야 하는 특성이 있다. 어느 산업보다 외부 투자 유치가 중요하다. 이러한 특성은 시장 불확실성, 고금리 기조 장기화 등으로 투자가 얼어붙은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바이오벤처의 발목을 잡았다. 파멥신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바이오가 한두 곳이 아니다.

먹거리로 키우던 파이프라인을 포기하는 게 대표적이다. 2022년에만 총 21건의 임상 철회, 조기 중단 공시가 나왔다. 이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파이프라인은 코로나19(COVID-19) 백신, 치료제 후보물질이다. 종근당, 크리스탈지노믹스, 셀리드, 대웅제약 등 10건에 달한다. 지놈앤컴퍼니, 박셀바이오, 엔지켐생명과학 등도 비주력 파이프라인을 정리했다. 각 기업은 비용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라 표현한다. 대부분 '비용 대비 기대효익이 낮다'는 근거를 내세웠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환자 모집이 안 됐고 임상은 지연됐다"며 "엔데믹이 되면서 사정이 나아지나 했지만 금리가 오르면서 가만히 있어도 비용이 4분의 1 더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자금경색까지 시작됐다"며 "파이프라인 4~5개를 2개 정도로 줄여 비용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력 구조조정 역시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진단키트 업체 씨젠은 2022년 3월 말 인원이 1187명이었지만 9월 말 1053명으로 11% 줄였다. 한 바이오 회사 대표는 "연초 인력을 20명 추가하려고 계획을 세웠지만, 하반기 상황을 보니 위험하단 판단이 들어 채용에 나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이오 전문 벤처캐피탈(VC) 관계자는 "지금 인력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월급이 1~2개월 밀려서 직원들이 먼저 회사를 관두기도 하고, 회사에서 퇴사를 설득하기도 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설비, 건물 등 자산을 팔거나 출장비 등 경비를 줄여 자금 여력을 키우는 사례도 많다. 파이프라인, 인력을 줄이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쉽다는 판단에서다. 다른 바이오 회사 대표는 "인건비를 줄이는 게 쉽지 않다 보니 R&D 비용만 남기고 회식비, 출장비 등 경비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신약 개발 기업은 아니지만 헬스케어 기업인 케어랩스는 본사로 쓰던 서울 강남 건물과 토지를 매각해 950억원을 확보했다. 지난해 매출 감소, 순적자 전환을 겪은 만큼 손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아예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는 기업도 나왔다. 아이큐어는 2022년 하반기 지분 투자한 회사 4분의 1에 대한 청산에 나섰다. 화장품 판매, 구독 플랫폼 운영 등 사업을 하던 회사 4곳이다. 아이큐어 관계자는 "연구 성과가 나지 않고 이익 발현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곳들을 정리하는 것"이라며 "모회사 역량을 한 곳에 모음으로써 효율성 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큐어는 2018년 이후 줄곧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최근 2년간 매출마저 악화됐다. 손익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문제는 바이오 벤처의 이 같은 자구책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단 것이다. 한 바이오벤처 대표의 "R&D는 돈 없으면 못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바이오의 긴축재정이 지속되면 결국 국내 신약 파이프라인 경쟁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바이오 회사들이 지금은 자금난을 극복하기 위해 인력비와 같은 고정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사실 이는 오래 버틸 수 있는 방안이 아니고 장기적으로 기업, 나아가 산업에도 좋진 않다"고 지적했다.

박미리 기자 mil0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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