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민식이 읽어주는 오디오북 같은 '카지노'를 보고 있노라면

박생강 칼럼니스트 2023. 1. 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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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이후, 현실기반 범죄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필자는 사회적 아바타 박생강으로 소설가와 칼럼니스트, 본체 박진규로 국내 유일의 수사전문지이자 경찰종합지 <수사연구> 기자로 살아간다. <수사연구>는 지구대 및 파출소 포함 경찰들만 볼 수 있는 40여년 역사의 잡지인데, 특히 수사 경찰들에게는 친숙한 친구 같은 책자다.

2020년 당시 필자는 수사연구 기자로 2015년에 필리핀 앙헬라스 코리안데스크로 파견된 인터폴 소속 경찰과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필리핀 현지 경찰들과 함께 수배자들을 체포하고, 교민 살인사건 등의 범죄를 추적해나갔다. 필리핀으로 도주한 수배자들과 호텔을 둘러싼 교민들의 이권다툼 및 살인사건이라니? 한편의 영화 같다는 감탄에 젊은 경찰은 실제 그 실화들을 바탕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중이라고 알려줬다.

디즈니플러스 <카지노>는 그 실화들을 바탕으로 각색된 드라마다. <카지노>는 극적인 각색에 공을 들인 작품은 아니다. 차무식(송민재, 이규형, 최민식)의 극적인 삶을 따라가는 구성을 취한다.

차무식은 조폭 아버지와 희생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고뇌하는 싸움꾼 같은 녀석이다. 주먹도 세고 머리도 좋다. 어디서 많이 봐온 주인공이고 7080세대의 전형적인 영웅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힘과 머리를 쓴다. 차무식은 한국에서 카지노바를 운영하다 세금 폭탄을 맞게 되자 필리핀으로 도주한다. 그곳에서 필리핀 카지노 운영자 민석준(김홍파)을 통해 카지노 사업에 뛰어든다. 이후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생존을 위해서만 달려온 삶은 어느새 강력 범죄에 연루된다. 그리고 그를 쫓는 필리핀 파견 경찰 오승훈(손석구)이 나타난다.

<카지노>는 차무식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초반 4회차까지 서스펜스가 넘치는 전개를 보여주진 못한다. 배우 최민식이 읽어주는 오디오북 같거나, 최민식이 주인공인 MBC <서프라이즈>를 보는 기분도 든다. 지금까지 <카지노>에 강력한 텐션은 없다. 허나 먼 타국에서 일어났을 법한 범죄와 연루된 교포의 인생을 읽어가는 재미는 있다.

도덕적 아바타를 쓰고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현실기반 범죄 서사는 악취가 풍기는 별미처럼 늘 구미가 당긴다. 잘 만들면 권선징악의 재미를 주는 흔한 형사물이 아닌 시대를 뼈아프게 통찰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카지노>는 현실기반 범죄 서사지만 밀레니얼 이전 세대의 로망을 기반으로 한다. 차무식 세대에게 카지노란 나름 로망이 있는 일탈이었다. 그들에게 일상과 일탈은 나뉘어 있었다. 마치 <카지노>에서 차무식이 그의 가족들을 필리핀이 아닌 호주로 보낸 것처럼.

하지만 2023년 대한민국은 일상과 일탈, 현실과 비현실, 사기와 리얼 사이의 경계가 희미하거나 미묘하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주식, 가상화폐, 부동산 모든 것이 진짜와 가짜가 섞인 채 룰렛처럼 돌아가는 카지노를 이룬다. 그 카지노에서 성공한 자는 실패한 이들의 피눈물을 와인 잔에 따라 마시며 미소 짓는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 성공을 지켜보거나 따라하려 버둥대다 어느새 소소한 행복의 맛을 잊는다.

게다가 일상은 초라하고 사이버세계 속의 비현실만 현실보다 화려하다. 그 화려한 세계는 쉽게 우리를 눈멀게 한다. 일자리 없는 평범한 청년들은 인터넷을 통해 해외취업 일자리를 구했다가 타국에서 피싱 범죄 콜센터 직원으로 살아간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얼굴도 모르는 외국인과 감정적인 교류를 하다 돈을 뜯기기도 한다. 성공한 자나 실패한 자나 현실을 잊기 위해 SNS 등을 통해 손쉽게 마약을 구매하고 거래할 수 있다.

지금의 범죄는 이처럼 화려하고 재빠르고 은폐하기 쉬운 사이버세계가 현실의 삶을 좀먹어가는 구조다. 일상과 일탈, 사기와 리얼이 섞인 한판. 그 세계에서는 누구나 일상에서 틱 밀려나면 순식간에 범죄의 나락으로 톡 떨어진다.

아마도 <카지노> 이후 현실기반 범죄물은 가상과 현실, 한국과 바깥의 세계를 동시에 가로지르는 거대한 이야기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 세계의 주인공은 그저 행복을 꿈꿨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범죄의 한가운데에 서 있을 것이다. 피의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거나 둘의 미묘한 경계에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다. 과연 그 주인공은 탈출해서 행복한 삶을 찾아갈 수 있을까?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디즈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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