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쓸며 치매조차 잊어버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NG(No Good)를 자꾸 냈다. 자신의 82세 생일을 축하하러 온 영국 마가렛 대처 총리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건배를 연달아 제의했다. 국무회의나 기자회견에서도 말이 떠오르지 않아 '글쎄'(Well), '그래서'(So), '음'(Um)처럼 아무 뜻도 없는 감탄사를 자꾸 끌어댔다. 영화배우 경력만도 30년이 넘는 대통령이 메모를 더듬거리고 평소답지 않게 말문이 막혔다.
1986년 발각된 이란-콘트라 사건에 대해 증언하는 청문회에서도 버벅거렸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틀간의 청문회에서 8시간 동안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88번이나 되풀이했다. 같은 말을 몇 분마다 반복하는 바람에 무책임하다고 탄핵당할 뻔했다. 물론 불리한 말로 꼬투리 잡힐 이유는 없지만, 항상 여유 있게 대본에 없는 즉흥연기(ad lib)를 즐기던 대통령답지 않은 증언이었다.
대통령의 즉흥 입담은 소문난 기사거리였다. 1981년 암살자가 겨눈 총알이 심장 바로 옆에 박히는 치명상을 입고, 생사를 다투는 상황에서도 농담을 던졌다. 응급처치하는 간호사에게 '내 아내 낸시에게 허락받고 만지는 건가?'며 싱글거리고, 의사들에게는 '여러분이 공화당 당원이면 좋겠다'고 익살을 부렸다. 수술이 끝나자 낸시에게 '여보, 수그려야 하는데 깜빡 했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이 일흔 줄의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도 가끔 졸았다. 치매 증상이었을까? 보좌관의 충고에 대통령은 또 넉살을 피웠다. "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날 깨워도 좋네. 국무회의 중이라도 말이야."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레이건은 84살에 알츠하이머 치매로 진단받았다. 퇴임한지 5년 지났다. 대장암과 전립샘암도 극복했던 레이건은 치매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1987년 유방암으로 진단받자, 영부인은 유방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언론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많은 여성들이 퍼스트레이디를 따라 검진을 받고 수술도 기꺼이 따랐다. 유방암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고, 유방암 연구가 진척을 보였다. 아내의 투병을 떠올린 남편은 1994년 자신의 투병을 밝히는 편지를 공개하고, 이듬해 치매를 연구하는 '로널드·낸시 레이건 연구소'를 세웠다.
비서를 시키지 않고 본인이, 자판을 두드리지 않고 손으로 직접 글을 썼다. 아내와 함께 읽어 보면서 울고 또 울었다. 온 국민의 심금을 울린 편지는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최근 내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수백만 미국인 중 한 명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로 시작해서 '나는 이제 인생의 황혼을 향해 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미국에게는 항상 밝은 새벽이 앞에 있을 것입니다'로 끝난다.
편지를 발표한 뒤, 전직 대통령은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승마를 즐길 수 없는 걸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친구도 자녀도 알아보지 못하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알아보는 늙은 아내는 '남편은 사람들이 옛날의 레이건으로 기억해 주길 바랄 것'이라며 사람들을 거의 집에 들이지 않았다.
하루는 레이건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수영장 바닥에 쌓인 나뭇잎을 갈퀴로 쓸었다. 젊은 시절 아내를 도와 집안일을 즐기던 남편이다. 아내는 남편이 쓰레기통에 버린 낙엽을 몰래 가져다 다시 깔았다. 다음 날 아침, 아내가 청소를 도와달라고 하자 남편은 행복한 표정으로 일하러 나갔다. 늘그막에 아내와 함께 집안일을 즐기던 남편은 2004년 '황혼을 향해 가는 여정'을 마쳤다. 향년 93세.
[알츠하이머 치매] Alzheimer's Disease
나이 들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인지기능과 정신행동과 신체능력이 계속 떨어져 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주는 질환이다. 기억력과 판단력이 떨어지고 정서적으로 무감하거나 과민해지면서 말하거나 걷는 행동이 둔해진다. 베타아밀로이드, 타우 같은 단백질이 뇌에서 쌓이거나 꼬여, 뇌기능을 떨어뜨린다. 일반적으로 8~10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면서 정신행동과 신체능력이 매우 악화되어 보호자에게 큰 고통을 준다.
에디터 코메디닷컴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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