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평화롭게...‘토끼 닮은’ 여행지로 떠나볼까
문주란 만개하는 영화 ‘계춘할망’의 제주 토끼섬
문경 모노레일에 국가 보물 봉암사 봉황문 보고
낭떠러지 옆에 세운 난제극복의 명승 토끼비리
사천 비토섬 거북길·토끼길로 별주부전테마파크
이천 별빛정원우주선 달토끼 만나 소원도 빌어
새해 쇄신 여행은 지혜·평화의 상징, 팔방미인 매력을 보여주는 토끼 상징 관광지로 가는 것이다. 묘(卯)월은 농사를 시작하는 음력 2월, 묘(卯)시는 오전 5~7시 사이 일과를 준비하는 때라는 점에서 보듯, 성실한 일상를 시작하는 자세 역시 토끼를 통해 가다듬는다.
토끼이름이 들어간 우리나라 지명 158곳 중, 형세가 토끼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은 제주 하도리 토끼섬, 영광 단덕리 토골 등 77개이다. 토끼 모양 지명중 옥토끼가 보름달을 바라본다는 풍수학상 ‘옥토망월형(玉兎望月形)’은 삼척 하장의 토산, 안동 원림리의 토갓, 보성 벌교의 퇴산 등 21곳이다.
설화 때문에 생겨난 지명도 많다. 경남 밀양시 내이동 토끼바위는 옛날에 선녀가 천태산에서 바위 두개를 토끼 등에 싣고 다녔다 해서 유래됐다.
문경시 토천은 고려 왕건이 문경 관갑천 용연에 이르러 길이 막히자, 토끼가 벼랑에 난 길을 타고 달아나는 모습을 보고 진군할 길을 찾았다는 얘기를 기반으로 이름 붙여졌다.
사천시 비토섬은 토끼가 기지를 부려 용궁에서 탈출하던 중 월등도 그림자를 육지로 착각해 거북이 등에서 뛰어내리다 물에 빠졌다는 얘기를 품고 있다.
▶실제 토끼 혹은 빅래빗과 노는 곳=음성군 생극면 토끼실은 동네 뒷산에 토끼가 많이 살아서, 신안군 토도는 예전에 토끼를 기르던 섬이어서, 성주군 금수면 후평리 토구재는 토끼가 자주 다니던 길목이어서 붙여진 이름, 즉 서식지 지명들이다. 단일 이름으로 가장 많은 것은 토끼골(15개)과 토끼섬(14곳)이다. 요즘 대관령, 덕유산, 지리산 등지의 심산유곡을 제외하곤 야생 토끼를 보기란 쉽지 않은데, 그래도 토끼가 자연 못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잘 자라는 곳은 강진군 보라바니 팜파크, 고양시 쥬쥬초식동물빌리지, 양주시 장흥자생수목원토끼마을, 인천 부평구 나비공원토끼장 등 무수히 많다.
도시에 살면서, 신년 벽두 부터 나들이 하기 어려울 때 찾아가기 쉬운 곳은 인공 달토끼 조형물이 있는 세종시 한솔동 포토존,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대구 앞산공원 등이다.
헤럴드경제는 주변에 다채로운 매력을 거느린 ‘토끼 도시’ 쇄신여행지로, 제주 토끼섬, 문경 토천, 이천 별빛정원우주, 사천 비토섬을 추천한다.
▶제주 토끼섬=구좌읍 하도리 굴동포구옆엔 토끼섬이 있다. 토끼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로, 노랑발도요 등이 노니는 가운데, 해녀콩우점, 갯금불초, 갯강아지풀, 갯는쟁이 등 희귀 식물이 자라기에 금지옥엽 예뻐해줄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7월부터 만개하는 문주란(천리향)이 대표 생물이다. 한라산 방향의 길 이름 조차 문주란로인데, 구좌 주민들이 토끼섬을 얼마나 아끼는지 잘 드러난다.
간조때 걸어가볼 수 있는 토끼섬은 내부 용암이 굳은 표면을 부푼 빵 모양으로 들어 올려 만든 구조 투물루스(tumulus) 언덕이 백사장 가운데 해발 10m로 볼록하다. 하늘에서 섬을 내려다보면 흰토끼 모양이다.
굴동포구 현무암 해안가엔 ‘멜튼개’가 있다. 서양품종 견공이 아니다. 멜튼개는 어살 기능을 하는 갯담 중 멸(멜)치가 많이 몰려드는 곳이라는 뜻이다.
토끼섬 동쪽으로 우도가 보이고, 주변엔 윤여정-김고은의 영화 ‘계춘할망’ 촬영지, 월정리 용암대지, 덕천리 용암습지연못, 인류무형유산 해녀박물관,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 등이 있다.
▶문경 토끼비리=새처럼 날아오르고픈 과객들은 한양 시험장 갈 때 추풍령, 죽령 보다는 조령 즉 새재를 택했다. 관광(급제해 왕의 용안을 봄) 가는 길 풍경은 최고인데, 합격하기 만큼이나 넘기 수월치 않았다. 과거시험 전후 안구정화는 했으니, 낙방 후 귀향해서는 “관광 잘 하고 왔습니다”라고 했다.
토끼비리는 문경새재 중 난코스이다. 고려 왕건 부대가 이곳에 이르러 난감해하던 중, 마침 토끼가 벼랑의 비밀스런 잔도로 달아나면서 길을 일러주어 진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곳을 ‘토천’이라 불렀다. 비리는 벼랑이다.
국가 명승인 토끼비리는 오정산이 협곡 관갑천에 깎이면서 생긴 절벽 지형이다. 길은 ‘한국의 차마고도’라고 불릴 정도로 낭떠러지 옆으로 겨우 개척되었다. 지금은 등산객들을 위해 보다 안전하게 만들었으니 ‘난제 극복과 보람찬 등정’이라는 쇄신여행에는 제격인데, 노약자들에겐 여전히 쉽지 않다. 안전을 위해, 전체 2㎞ 중 나무데크로 된 500m 만 산책토록 권장한다.
문경엔 최근 국가 보물이 된 봉암사 봉황문, 한국관광공사 추천여행지에 오른 단산(모노레일), 문경 영화촬영세트장, 용추계곡, 문경생태미로공원, 에코랄라 석탄박물관, 자연생태박물관 등 인문-자연 여행지가 많다.
▶사천 비토(飛兎)섬=사천시 서포면의 비토섬 전설은 바다로 간 ‘낭만고양이’, ‘오리 날다’로 유명한 체리필터 노래가사를 연상케 한다.
용궁의 약재가 될 뻔 하다가 기지를 부려 뭍으로 탈출한 토끼. 너무 기쁜 나머지 달에 비친 월등도 그림자를 육지로 착각해 별주부(거북) 등에서 성급히 뛰어내렸다가 익사해 하늘로 날아갔다는 얘기이다. 토끼에게 속은 것을 안 별주부는 용왕님의 처벌을 두려워하다가 마음의 병으로 죽어 거북섬이 되고, 남편 토끼를 기다리던 부인도 시름시름 앓다가 숨지면서 목섬이 됐다는 것.
제조된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해안둘레길 ‘거북길’과 섬 중앙 브로드웨이 ‘토끼길’을 산책하는 동안 거북섬·목섬과 바다 풍경, 별주부전테마파크, 캠핑장 등이 반긴다. 별학도 낚시공원과 다리로 연결돼 있다.
코끼리바위로 유명한 남일대 해변은 20㎞ 동쪽에 있다. 봄이 오면 한국관광공사-사천시가 토끼빵 만들기, 토끼와 거북이 여행, 낚시체험, 굴껍데기 그림그리기 등으로 짠 생활관광 패키지 운영을 재개한다.
▶이천 별빛정원우주=영동고속도로 덕평자연휴게소에 들르면, 뒤쪽에 4만 6000여㎡ 넓이의 일루미네이션 테마파크 별빛정원우주가 있다. 해가 지면 ‘반딧불이숲’, ‘바이올렛판타지’, ‘로맨틱가든’, 유럽 궁전 등 조명 예술작품들이 반긴다.
은하수 속을 걷는 듯한 ‘터널갤럭시101’를 지나면 야트막한 언덕에 어른보다 훨씬 큰 토끼 조형물이 있다. 요즘 이걸 보러 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소원을 들어주는 달토끼다. 토끼해가 아니라도 아는 사람들은 이곳을 새해 소원 비는 곳으로 택한다. 하물며 토끼해 임에랴.
LED 전구 3만 개가 분광해 빛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아트큐브―오로라’에 이르러 별빛정원우주 관람은 절정에 이른다. 카페 진리에서의 휴식이 대미를 장식한다. 이천은 원래 도자기 예스파크, 설봉공원, 임금님 수라맛 등을 보러가는 곳인데, 토끼해에 별빛정원우주가 강자로 등장했다.
우리는 새해 쇄신 차 떠난 토끼여행에서 지혜, 평화, 일상을 유쾌하게 시작하는 묘월묘시의 마음가짐을 배운다.
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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