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보도와 통합… 다양한 도시공간의 연속체로 재탄생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ver.1.0시대
6차로를 양쪽에 두고 중앙에 조성돼
다양하고 새로운 행위·사상·인식 등이
광장에서 주변으로 확장되는데 한계
재구조화된 광장
한쪽이지만 넓은 보도공간 확보해
소광장·산책로·정원·궁중유물터 등
위치에 따라 다양한 역할 품게 돼
“업데이트를 시작합니다.”
스마트폰을 쓰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메시지다. 무의식적으로 업데이트를 실행하는 사람도 있지만 업데이트를 하면 더 느려지거나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어 미루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8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 광화문광장도 업데이트됐다. 당연히 반대 의견이 있었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광장을 왜 뒤엎느냐는 여론도 있었고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며 행정소송을 내는 시민단체도 있었다. 이런 반대 의견을 고려했기 때문인지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럼에도 육조거리(광화문광장)와 운종가(종로)는 정치적 중심과 상업적 중심으로 한양의 뼈대를 이루었다. 정치적 주체가 경제적 주체보다 훨씬 귀한 대접을 받던 시대였으니 두 길만 따지면 관청이 모여 있는 육조거리 위계가 단연 높았다. 육조거리는 ‘길’이라고 부르기에는 길이가 짧다. 정도전도 육조거리를 길로 보기보다는 삼각산과 관악산을 잇는 국가상징축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현시점에서 광화문광장의 형태를 두고 광장과 길을 논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재구조화된 광장이 현시대에 ‘광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이다.
우선 ‘광장(廣場)’이라는 단어부터 살펴보면, 단어 뜻 그대로 ‘넓은 자리’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넓은 자리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넓은 자리를 확보했기 때문에 ‘광장’이라 부르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터이다. 넓은 자리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은 사람들이 일정한 영역에 밀집해 거주하는 도시환경을 의미한다. 결국 광장은 ‘밀집된 환경’, 즉 도시의 산물이다.
도시에서는 낯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필요하다. 특히, 광장과 같이 공공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공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방법을 배운 적 없고 배워서 습득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서서히 체화되어야 어색하지 않다. 이런 면에서 한 나라의 도시화율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도시화율은 전체 인구 중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을 의미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1988년에 70%를 넘어 2004년부터 81%를 넘고 있다(2022년 81.4%).
참고로 영국은 통계가 작성된 1950년에 이미 79%였고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은 1970년 이전에 70%를 넘었다. 도시화율을 통해 보면 1988년 이후에 출생한 우리 국민 중 70% 이상이 도시에서 태어났다. 이들에게 도시와 그 안의 광장과 같은 공용공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접해온 익숙한 장소다. 당연히 낯선 사람과 함께 광장을 이용하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광화문광장의 첫 번째 버전이 등장했을 때 이들은 20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새로운 세대였지만 자신들의 목소리가 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버전이 등장한 지금은 30대 중반이 됐고 사회적으로 활동 반경도 넓어졌다. 그러니 두 번째 버전의 광장을 자신들 삶의 무대로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그다음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광장의 역할이다. 일반적으로 광장은 길과 길이 만나는 교차점에 만들어진다. 길을 따라 광장으로 모인 도시의 행위는 광장에서 섞여 다양해지고 나아가 새로운 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 그리고 다양하고 새로운 행위들을 광장에서 뻗어나가는 길을 따라 다시 도시 속으로 퍼뜨린다. 행위에는 시민들의 활동뿐만 아니라 사상과 의식도 포함된다.
도시의 행위를 모으고 퍼뜨린다는 측면에서 보면 6차로 도로가 양쪽을 둘러싸고 있었던 광화문광장 첫 번째 버전은 광장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주변 동네의 안쪽과 연접한 보도에서 일어나는 행위들이 광장으로 넘어오거나 광장에서 일어난 행위가 양쪽 영역으로 확산되기에는 6차선 도로가 너무 넓었다. 주변 도시조직과 분리된 광장에서 어떤 행위가 일어나든 도로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행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다만 시끄럽기는 했다. 약하지만 광장의 역할이 시작됐다는 징후다. 자동차만 다녔던 세종대로에 사람을 위한 영역을 만들고 변화의 단초를 제공했으니 첫 번째 버전을 ‘시작이 반이다’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서쪽 보도와 연결된 이번 두 번째 버전은 최소한 광장이 면한 세종문화회관과 그 안쪽 동네 행위가 모이고 다시 퍼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두 번째 버전을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광장으로서의 영역성은 두 번째 버전이 확실히 약해졌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광화문광장의 어떤 구간은 넓은 보도가 되고 어떤 구간은 광장에 면한 건축물의 전면 광장이 된다. 그리고 어디에서는 공원과 연결된 정원이 되고 어디에서는 조선시대 유구를 관찰하는 터가 된다. 첫 번째 버전을 영역성이 강한 중앙분리대라고 한다면 두 번째 버전은 다양한 도시공간의 연속체다. 두 번째 버전의 온전한 성공은 광장의 역할이 확인될 때, 남은 차로마저 광장과 연결하자는 시민들의 의견이 나올 때다. 광화문광장의 세 번째 버전은 그때 시작될 것이다.
도시건축작가 방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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