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고금리·PF부실 ‘악재’ 켜켜이… 올 주택시장 ‘살얼음판’
■ 새해 부동산 경기 좌우할 10대 변수
작년 매매 전년의 반토막
올해도 거래절벽 지속될듯
미분양 한달새 23% 급증
노른자위도 청약미달 속출
가계부채 1869조 직격탄
‘하우스 푸어’본격화 우려
집값 내려가며 전셋값‘뚝’
도심 상권 더 위축 가능성
올해 부동산 시장은 경기침체와 금리가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글로벌 경기 악화에 따른 내수침체와 살얼음판 금융 시장에서 독한 고금리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또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정상화도 핵심 키워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3일 문화일보가 뽑은 ‘2023년 부동산시장을 좌우할 10대 키워드’를 통해 올해 부동산 시장을 가늠해 본다.
◇대내외 경기침체 = 최근 수년간 호황을 누려왔던 부동산 시장은 금리 인상 행진에 따른 경기 급강하로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다. 특히 고금리 영향으로 물가 상승률이 높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불안한 국제 정세가 이어져 경기 반등이 쉽지 않다. 경기침체(Recession), 이른바 ‘R의 공포’가 현실화하는 것도 부동산 시장을 옥죄고 있다.
올해는 경기 둔화로 기업의 생존 문제가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경제 전문가들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보다 더 강한 경기 침체가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 통계청의 2022년 12월 말 발표 자료에 따르면 향후 경기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5개월 연속 하락했다. 올해 한국 경제가 2% 내외로 성장해도 물가 상승률은 4%에 육박, 역성장 상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꺾이지 않는 초고금리 = 금리는 올해 경제의 주요 변수다. 문제는 지난해 급속도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상반기까지 인상 행진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금리를 불가피하게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금리 인상 속도가 늦춰지더라도 글로벌 경기 회복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 금리는 현재 초고금리 상태다.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금리(11월 말 가중평균·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5.57%로 치솟았다. 상호저축은행 대출금리의 경우 연 11.96%에 달한 곳도 있다. 초고금리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 직격탄이다. 벌써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 상단이 8%에 이르는 상황이다. 금리가 더 올라갈 경우 ‘부동산 빙하기’의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다. 초고금리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이 건설경기 회복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문제다.
◇부동산 PF 중단과 부실화 우려 =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요 개발사업 부동산 PF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에 민관 합동 부동산 개발사업 대부분은 좌초 위기에 처했다. 이 때문에 올해 부동산 시장은 부동산 PF의 정상화냐, 부실화에 따른 연쇄 부도 발생이냐로 압축되고 있다. 초고금리 지속에 상반기에만 34조5000억 원, 1분기 기준 약 20조 원에 이르는 부동산 PF 유동화 증권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증권사들의 총 ‘브릿지론’(본격 개발사업 전 준비 과정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대출) 규모는 6조8000억 원, 중·후순위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12조2000억 원에 달한다. 부동산 경기 바로미터였던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의 저조한 분양 성적도 PF발 리스크 우려를 키우고 있다. 부동산 PF에서 문제가 생기면 증권·캐피털·상호저축은행 등 금융권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한국은행도 최근 낸 보고서에서 “유동성 부족으로 정상 PF 사업장이나 우량 건설사까지 부실화될 위험이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거래절벽 장기화 ‘안 팔리는 집’ = 2022년 부동산 시장은 매매 거래가 실종됐다. 주택 거래는 물론 수익형 부동산 거래도 꽁꽁 묶였다. 지난해 전국의 아파트 매매 누적 거래량(1~10월)은 26만2084건이었다. 월평균 2만6000건 수준이다. 11월과 12월에 4만여 건이 거래된다고 해도 겨우 30만 건을 넘게 된다. 이는 70만 건이 넘었던 2021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서울 아파트 기준으로 지난해 1~12월 매매 거래량은 1만2000건(서울부동산정보광장 집계)에 불과하다. 이는 2021년 4만1948건의 30% 수준이다. 부동산 중개업계에서는 올해도 집이 안 팔리는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분양 확산과 청약자격 완화 = 미분양 가구는 2022년 11월 말 기준 5만8027가구(국토교통부 12월 집계)에 달한다. 이는 전월 4만7217가구에 비해 1만810가구(약 23%) 급증한 것이다. 주택업계에서는 12월 미분양 물량을 포함하고, 미신고분과 회사 보유분 등을 합하면 이미 8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국에서 1순위 청약 미달도 속출하고 있다. 완판이 예상된 경기 광명시 ‘철산자이 더 헤리티지’(철산주공 8·9단지 재건축)와 ‘호반써밋 그랜드 에비뉴’(광명10구역 재개발) 모두 12월 1순위 청약에서 ‘미분양’을 기록했다. 주택업계는 서울과 다름없는 광명지역에서 청약 미달이 나오면서 올해 전국에서 청약 미달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미분양 해소를 위해 청약 자격 완화에도 나섰다. 올해부터 무순위 청약(‘줍줍’) 때 해당 시·군 거주 요건을 폐지한 것이다. 이에 무주택자면 누구나 줍줍에 참여할 수 있다. 공공분양 청약 시 다자녀가구, 신혼부부 등 기혼자 중심이던 특별공급 기회를 미혼 청년(주택을 소유한 적 없는 19~39세 미혼자 중)에게도 준다. 투기과열지구 내 중소형 면적(전용 85㎡ 이하)에 추첨제도 신설했다.
◇가계 부채 급증과 하우스푸어 = 2022년 6월 말 기준 가계부채 총액은 1869조4000억 원(한은 집계)으로 사상 최고 수준이었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795조8000억 원에 달한다. 현실적으로 금융부채를 갚기 어려운 ‘고위험 가구’는 38만1000가구에 달한다. 가구 아닌 개인단위 통계인 ‘취약 차주’(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는 56만5549명(빌린 돈 24조6701억 원)이나 된다. 가계부채와 개인 빚이 위험수위에 있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들이 언제든지 빚을 갚지 못하는 뇌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가계부채에 포함하지 않은 신용카드사들의 결제금액 이월 약정 서비스인 리볼빙 잔액도 2022년 3분기 말 기준 7조 원에 달하고, 자영업자들의 대출액도 994조 원(2022년 2분기)에 이르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도 최근 “기관투자가들이 한국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인플레이션보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 악화를 꼽았다”고 지적했다.
부동산업계는 집값 급락과 과도한 대출, 가계부채 영향으로 올해 ‘하우스푸어’가 본격적으로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이 집값이 20% 떨어지면 대출을 갚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하우스푸어가 1.5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올해부터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규제 완화에도 쉽지 않은 연착륙 = 정부의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한 노력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얽히고설킨 부동산 규제를 잇달아 풀고 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편에 이어 올해는 부동산 양도소득세(양도세)도 손볼 가능성이 크다. 단기 보유 주택 중과세율을 대폭 완화하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제도는 사실상 폐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택 분양권도 1년 이상 보유한 경우 중과 대상에서 제외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확대도 예측된다. 다만 부동산 시장을 옥죄는 더 큰 규제가 풀려야 한다는 게 주택업계의 주장이다. 미분양 주택에 대한 양도세 조세특례제한법 시행,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상한제 폐지, 실거주 의무나 전매 제한 폐지, 임대사업자 제도 부활 등이다.
◇전·월세 시장 변화 = 집값이 급락하면서 전셋값도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초고금리에 따른 월세 선호와 함께 집값 하락기 전세를 끼고 집을 사들이는 ‘갭투자’도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전셋값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주택산업연구원은 올해 전세는 4.0% 하락, 월세는 1.3%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밖에 임대차 3법(임대료 상한제와 임대차 계약갱신 청구권, 임대 거래 신고제) 영향으로 전세에서 월세(보증부 월세 등)로의 전환이 늘고 있다. 실제 국토부가 발표한 ‘2022년 11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11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중 월세 거래 비중은 43.8%에 달했다. 이는 최근 3년 이래(2021년 39.9%) 최고 수준이다. 이에 따라 올해가 전세 시장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하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이는 집값 상승의 동력으로 작용했던 전세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다.
◇위축된 상권 = 오프라인과 재택근무의 균형을 찾게 되면 상권이 회복될 수도 있지만, 도심의 주요 지역 요식업과 쇼핑업소 외에는 상권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게 관련 업계의 진단이다. 온라인 소비채널 이용 증가로 골목상권 회복 가능성도 낮다. 특히 대부분 상가 임차인이 대출이자를 충당하면서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는 구조가 아닌 상태다. 이에 따라 올해도 상권 침체 지속으로 1000조 원에 육박하는 자영업자들의 대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올해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토지 시장 회복 여부 = 전국 표준지(토지) 공시지가(국토부 -5.92%)가 떨어지는 등 토지 시장도 침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2022년 12월 15일 경기 부천원종 공동주택용지 B1블록을 공급하기 위한 2순위 신청을 받았으나 단 한 곳의 건설사도 뛰어들지 않았다. 서울 양천·강서구와 불과 2㎞ 떨어진 택지도 팔리지 않은 것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경기 성남복정1지구 B1블록도 2순위 모집에서 유찰, 수의계약에 나선 상태다. 택지가 팔리지 않은 것은 집값이 급락하고, 미분양 주택 발생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집값 하락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 토지 시장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김순환·김성훈·이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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