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층’ 대선 이후 두 배 증가…2030세대는 절반에 가까워
與 ‘유승민·이준석’, 野 ‘조·금·박·해’ 등 중도세력에 기회 올 수도
(시사저널=김종일·구민주 기자)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無黨)층이 늘어나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가 외연 확장을 위한 민생 돌보기와 정책 경쟁을 벌이기보다 적대적 공생관계에 기대어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를 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거대 양당의 지지율은 지난 6개월간 30%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가운데 한쪽 지지율이 떨어지면 다른 한쪽이 오르곤 했던 종전의 양상과 달리 지금은 양당이 동시에 '박스권'에 갇힌 것이다. 대신 사태를 신중하게 주시하며 관망하는 유권자 규모는 '제3당' 세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커졌다.
시사저널은 한국갤럽이 2022년 한 해 동안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심층 분석했다. 분석에 따르면, 지난 대통령선거 이후 무당층은 10%대에서 20%대로 증가했다. 대선(3월9일) 직후인 3월 3주 차 조사에서 무당층은 17%였는데, 2022년 마지막 조사였던 12월 3주엔 25%로 나타났다. 무당층은 지방선거(6월1일) 직후인 6월 2주 차부터 20%대로 올라와 해가 마무리될 때까지 다시는 10%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대선 이후 15%(4월 2주)까지 떨어졌던 무당층 비율은 연말 30%(10월 1주·11월 3주)까지 치솟으며 두 배나 오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與 '보수·중도동맹' 붕괴…野 '반사효과' 못 누려
이런 흐름은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여권을 승리로 이끈 성공방정식인 '보수·중도동맹'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동시에 그 반사효과를 제1야당이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집권세력인 정부·여당에 등 돌린 중도층이 부동층으로 남아있는 건 제1야당인 민주당이 대안 세력으로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독단적인 국정운영을 하는 정부·여당과 혁신 없이 반사이익만 노리는 야당 모두에 실망한 중도 성향 유권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무당층은 거대 양당이 민생은 도외시한 채 양극단의 진영싸움을 벌일 때 급증하는 모습을 보였다. 갤럽 조사에서 무당층은 10월 1주 차에 30%로 한 해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는데, 당시는 신구 권력 간에 극심한 갈등이 빚어졌다. 감사원이 전임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서면조사를 통보하면서 갈등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여권 내부는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당원권 추가 정지를 결정하면서 시끄러웠다.
무당층은 11월 3주 차 때도 30%로 조사됐는데, 역시 그때도 정치는 상당수 국민에게 실망을 안겼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18일을 마지막으로 출근길 약식회견(도어스테핑)을 멈췄다. '용산 시대'의 상징이 사라진 셈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미국 순방 때 비속어 논란을 최초 보도한 MBC를 "악의적"이라고 비판했고, 대통령실은 이후 순방에서 MBC의 '전용기 탑승 제외' 방침을 강행했다. 그보다 앞선 11월14일에는 신생 매체 민들레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실명을 유족 동의 없이 공개해 논란을 빚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명단 공개를 주장하는 입장이었고, 여권은 이를 다시 정쟁화했다. 상대를 향한 공격이 우선이었고, 유족의 아픔은 뒷전이었다.
사실 무당층이 많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중도 성향이 강한 무당층은 정치가 양극단으로 내달리는 것을 제어하고,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완화하고 사회적 안정을 이루는 완충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을 대표할,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그릇'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 정치는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정의당 등 제3세력은 수권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선거 제도는 승자독식을 강제한다. 이런 정치 상황 속에 더 크게 '무관심'과 '냉소'로 응답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2030' 미래세대다.
대선 직후인 3월 3주 차 18~29세의 무당층 비율은 27%, 30대는 21%였다. 이 세대의 무당층 비율은 꾸준히 상승해 2022년 마지막 조사였던 12월 3주 차에는 44%와 35%로 높아졌다. 각각 17%포인트, 14%포인트 증가했다. 전체 무당층 비율이 30%를 기록했던 11월 3주에는 이들의 무당층 비율은 50%와 40%로 치솟기도 했다. 18~29세의 경우에는 두 명 중 한 명이 무당층이었다는 뜻이다. 대선 직후와 비교하면 거의 두 배 늘어난 수치다.
尹, 국정동력 확보하려면 중도 민심 얻어야
그런데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실제 무당층이 여론조사에서 포착된 수치보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실시되는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정치 고관여층일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또 조사 기법도 변수다. 갤럽은 정당 지지도를 조사할 때 먼저 정당명을 쭉 불러주고, '모름·없음'을 꼽은 이들에게는 재차 '본인 성향은 어느 정당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나'라고 묻는다. 두 번째 질문에서도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한 이들만 '무당층'으로 잡히는 구조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무당층은 늘고 있는 걸까.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그 어느 때보다 적대적 구도로 굳어지고 있는 한국 정치에 대한 불신이 고스란히 무당층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현재의 정치에 실망한 거다. 지금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불신하는 이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데 이들이 바로 무당층"이라고 설명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피로감이 여전히 강하다"며 "특히 2030세대가 보기엔 기댈 곳이 없다. 대안이 보이지 않으니 아예 다음 선거 때까지 정치에 대한 관심을 꺼두려고 하는 것으로 읽힌다"고 풀이했다.
최근 40%를 돌파하며 지지율이 뚜렷하게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윤 대통령의 숙제 역시 '무당층'이다. 갤럽이 12월 3주 차에 실시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를 보면 '잘한다'는 응답은 36%, '잘못한다'는 56%다. '주요 지지 정당별'로 살펴보면 윤 대통령의 아픈 부분이 나온다. '잘한다'는 응답이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78%나 되지만, 무당층에선 19%에 불과하다. 무당층과 전체 평균의 차이가 두 배 가까이 난다.
무당층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에 상대적으로 더 박한 점수를 준 지는 한참 됐다. 갤럽이 12월23일 2022년 월별·연간 조사를 통합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7월부터 12월까지 32%→26%→28%→29%→29%→ 33%를 기록했다. 반면 무당층에서는 21%→17%→18%→17%→19%→18%를 나타냈다. 둘 사이의 격차가 최소 9%포인트에서 15%포인트까지 난다. 중도층의 이반이 분명하게 확인되는 대목이다. 이런 흐름은 갤럽 외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일관되게 확인된다. 리얼미터의 12월 4주 차 조사에서 윤 대통령은 41.2%라는 국정 지지도를 기록했는데, 무당층에서는 23.6%로 전체 평균과는 17.6%포인트 차이가 난다.
이와 같은 여론 추세는 윤 대통령에게 뼈아프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라도 정부·여당은 국정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데 지금의 여소야대 구도에서 윤 대통령이 기댈 것은 사실상 여론이 전부다. 지지층 결속만으로는 국정 지지율 과반을 달성하기 어려운 게 현재 우리의 정치 지형이다. 중도·무당층의 상당수를 끌어 와야 하는데, 오히려 지금 부동층은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부정적 의사표시 혹은 비판적 침묵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이런 흐름은 아니었다. 취임 직후인 2022년 5월 3주 차 조사를 보면, 무당층의 긍정평가 비율은 31%로 부정평가 33%와 오차범위 내 격차를 보였고, 이는 전체 국정 지지율(51%)을 견인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임기 초의 분위기를 되살려야 하는 숙제가 있는 셈이다.
불어난 무당층, '분당 시나리오' 가속화할까
제3당이라 할 만큼 커진 무당층은 정치 지형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차기 총선을 앞두고 중도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지난 두 번의 선거와는 전혀 다른 결정을 할 수도 있고, 이들의 판단에 따라 기존의 여야 지지 구도와 정치 지형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양극단으로 달려가는 힘이 세진 집권여당과 제1야당에서 입지가 좁아진 합리적 보수와 진보 세력이 정개개편을 시도하는 등 분당 시나리오도 가동될 수 있다.
실제 중도 성향을 가진 무당층은 정치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중도 유권자가 스윙보터로 불리는 이유다. 여야가 혁신 경쟁을 벌일 때는 중도층의 입지는 작아진다. 반면 여야의 진영 대결이 심화할 때 중도층은 양측을 심판하거나 배제한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통합진보당 해산과 국정교과서 강행 등으로 '우클릭'하고, 민주통합당(현 민주당)이 세월호 참사 전후 보여줬던 무기력함과 노선투쟁 등으로 내홍이 불거진 뒤 치러진 2016년 총선이 대표 사례다. 중도층은 양당 모두에서 이탈해 제3당인 국민의당에 힘을 실어줬다.
전문가들은 무당층이 불어나는 상황에서 분당 시나리오를 포함한 정계개편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준한 교수는 "무당층이 커지면 커질수록 여권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 야권에서는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로 대표되는 중도 성향 정치인들에게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여권은 전당대회 이후, 야권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이후가 새로운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찾아올 타이밍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각각 친윤(親윤석열) 대표가 세워진 여권과 이재명 리스크로 리더십 공백이 온 야권 모두에서 합리적 중도 성향을 가진 인물들이 더욱 차별화되고 경쟁력을 평가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 교수는 대규모 탈당과 맞물린 정계개편 가능성은 낮게 봤다. 현재 거대 양당이 보유한 수백억원의 자금력을 쉽게 양보하기 어렵고, 이런 구조적 요인을 뛰어넘을 만한 구심점을 갖춘 인물이 현재로서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뭉치는 정치의 시대는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면서 "이제는 청년 등이 주도해 다당제로 가는 길을 여는 새로운 흐름이 필요해 보인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런 새 흐름이 만들어진다면 2016년 제3당 돌풍에 버금가는 무언가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봤다. 유 대표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선거 제도 개편과 이런 흐름이 맞물린다면 더욱 큰 동력이 될 수 있고, 불어난 무당층이 거대 양당으로 하여금 새로운 흐름에 올라타게 강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들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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