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온천 빌려드립니다”…‘고향 납세’에 아우성치는 도쿄 대도시들

지종익 2023. 1.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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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벳카이초의 고향납세 답례품 광고


2023년 1월 1일부터 한국에서도 기부자에게 세액공제와 답례품 혜택이 주어지는 '고향사랑기부제'가 시작됐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제도와 유사한 '후루사토(고향)납세'제도가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여러 중개 사이트에서 받고 싶은 답례품을 쇼핑하 듯 찾아서, 주문을 하면 해당 지역에 기부가 되고, 그 돈이 주민세에서 공제되는 방식입니다.

제도 시행 15년. 고향납세제도로 인한 기부는 소외돼 온 '지역'의 경제 활성화라는 순기능도 수행하고 있지만, 여러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갈수록 벌어지는 자치단체 간 기부액의 차이입니다.

세타가야구(世田谷区)는도쿄 23구 중에서도 선두에 서서 고향납세 제도에 대한 이의를 제기해 온 대표적인 자치단체입니다. 모든 주민이 공평하게 행정서비스를 받아야 하는데, 이 제도로 인해 세금이 다른 지역으로 유출되고 있어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입니다.

또한 일본의 '수도 기능'을 유지해 온 도쿄의 자치단체들은 다른 곳들에 비해 복지와 행정, 인프라 투자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세우고 있습니다. 수도에 돈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역으로 돈이 빠져나가는 건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2020년도에 기부액의 30% 이하로 답례품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특별구민세에 의한 세수 감소액은 증가하고 있어, 2015년도부터 누계액은 2700억 엔을 넘었다. 그 결과, 모든 구민이 세수 감소로 인한 행정서비스 질 저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편, 제도를 이용하는 구민만이 답례품 혜택을 받는 불공평이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현저해지고 있다. (고향납세)제도를 둘러싼 여러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재검토를 해야 할 시점이다"

-도쿄 23구의 '특별구청장회'가 총무성에 보낸 요망서 일부

그런데 최근 세타가야구가 태도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고향납세제도' 특설 사이트를 개설하고, 그동안 애써 외면해 온 고향납세제도의 '답례품 경쟁'에 참전(参戦) 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세타가야구는 주로 지역의 상점들과 연계한 도시형 답례품들을 내걸었습니다. 주문 제작이 가능한 액세서리, 호텔 숙박, 유명 프랑스 셰프가 만드는 과자 쿠폰 등의 답례품을 선두에 배치했고, 답례품에 관한 아이디어도 모집하고 나섰습니다.

바다나 목장을 낀 농어촌 자치단체의 특산품과는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지만, '취향'과 '고급화' 전략으로 나섰습니다.

세타가야구가 최근 개설한 고향납세 특설사이트


고향납세제도로 인한 세타가야구 세수의 유출액은 2022년도에 80억 엔이 넘었습니다. 세타가야구 인구는 약 92만 명으로 도쿄 23구 중 가장 많은데요. 세수 유출액은 구민 세수입의 7%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반면, 기부액 수입은 세수 유출액의 5%가량에 불과합니다. 결국, 세타가야구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세수 유출을 버티지 못하고, '기부 유치'로 방향을 튼 겁니다.

세타가야구 기부액(위/파랑)과 유출액(아래/빨강)


고향납세제도에 관한 태도를 전환한 건 세타가야구뿐만이 아닙니다. 일본 젊은이들의 도시 시부야구(渋谷区)도 2021년도에야 본격적으로 답례품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시부야구의 그 해 기부액 수입은 4.4억 엔이었지만 유출액은 36억 엔에 달했습니다. 역시 답례품으로는 호텔 숙박권과 레스토랑 식사권 등이 주를 이룹니다.

시부야구의 고향납세제도 답례품


대도시권 자치단체들의 아이디어 답례품도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도쿄 아다치구(足立区)는 온천과 센토(銭湯. 일본의 공중목욕탕)를 개인이 빌려 사용할 수 있는 입욕 이용권도 답례품으로 내걸었습니다.

도쿄 아다치구의 센토 입욕 이용권 답례품


도쿄 23구는 한 곳도 빠짐없이 유출액이 기부액을 초과했고, 도쿄도의 전체 자치단체로 따져보면 모두 857억 엔이 빠져나갔습니다. 이렇다 할 특산품이 없는 도쿄의 대도시들이 사활을 걸고 답례품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고향납세제도 시행 이후, 인구가 많은 도시권에서 다른 지역으로 세수가 유출되는 경향은 고착화돼 왔습니다. 일본 총무성이 최근 발표한 2022년도 자치단체별 공제액 순위(아래)에서도 이 같은 경향은 뚜렷하게 확인됩니다.

1, 2, 3위는 요코하마시, 나고야시, 오사카시가 차지했고, 20위 안에 도쿄의 자치단체는 8곳이나 들어있습니다. 상위권의 다른 도시들도 수도권이거나 각 지역의 대표도시입니다.

자치단체별 공제액 순위(2022. 총무성. 단위-백만 엔/명)


반면, 고향납세 기부액이 많은 자치단체 순위에는 특산품이 풍부한 농어촌 자치단체가 많습니다. 도쿄의 자치단체는 한 곳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자치단체별 기부액 순위(2021. 총무성. 단위-백만 엔/명)


이런저런 잡음 속에서도 일본의 고향납세 제도에 따른 기부 총액은 계속 불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2022년도 기부총액은 8천억 엔을 초과해 사상 최대로 집계됐습니다.

일본 고향납세 수입액(파랑) 및 수입 건수(빨강) (2021. 일본 총무성. 단위-억 엔/만 건)

도시권 자치단체의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지만, 그만큼 소외됐던 지역들이 고향납세제도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일본 총무상도 지난 해 7월 "고향납세가 지역경제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며 일본 내 만만치 않은 '전면 재검토'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지종익 기자 (jig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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