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무소속→자민련' 풍파 겪은 이학원 前의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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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일으킨 이른바 '통일국민당 돌풍'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인 이학원 전 국회의원이 2일 별세했다.
1992년 12월 대선에 출마한 정 전 회장은 김영삼(YS), 김대중(DJ) 후보에 크게 뒤지며 3위에 그쳤고 이듬해인 1993년 YS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국민당은 시련에 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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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 와해 후 민자당→무소속 전전 '시련'
자민련 옮겨 1996년 재도전에서 낙선 '고배'
1992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일으킨 이른바 ‘통일국민당 돌풍’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인 이학원 전 국회의원이 2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정치 신인이 여당의 3선 중진의원을 꺾었다’고 해서 큰 화제가 됐다. 국민당은 이 선거에서 국회에 31석을 확보하며 여당인 민자당, 제1야당 민주당에 이어 제3당이 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국민당 돌풍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92년 12월 대선에 출마한 정 전 회장은 김영삼(YS), 김대중(DJ) 후보에 크게 뒤지며 3위에 그쳤고 이듬해인 1993년 YS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국민당은 시련에 직면한다. DJ가 정계은퇴를 선언한 상황에서 새 정부가 정 전 회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 수사, 그리고 현대그룹 계열사들 세무조사로 국민당을 강하게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상당수 의원이 탈당하면서 국민당은 군소정당으로 오그라들어 사실상 와해되고 말았다. 고인도 이 시기 국민당에서 여당인 민자당으로 옮겼다. 그런데 YS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공직자 재산공개가 고인의 발목을 잡았다. 재산 신고가 일부 누락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민자당 일각에서 ‘출당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결국 고인은 민자당을 탈당하고 한동안 무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해야 했다.
1995년 YS와 결별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자민련을 창당했을 때 고인은 JP와 손잡고 자민당 당무위원, 원내수석부총무 등을 지내며 재기하는 듯했다. 이듬해인 1996년 15대 총선에서 자민련은 충청권과 TK(대구·경북) 일부 지역의 기반을 토대로 무려 50석을 얻으며 큰 성공을 거뒀으나, 정작 고인은 지역구인 울진에서 민자당이 이름을 바꾼 신한국당 소속 후보한테 져 재선에 실패했다. TK 중에서도 대구는 ‘자민련 바람’이 거셌던 반면 경북 민심은 대체로 여당인 신한국당 손을 들어준 데 따른 결과였다. 이후 고인은 정계와 다소 거리를 둔 채 여생을 보냈다.
유족으로 부인 이명분씨, 자녀 이태영(미국 크리스털 어전트 케어 병원 이사장)·귀영(미국 공인건축사)·혜영(피아니스트)·수영(미국 PGA 클라스 A 정회원)·재영씨(GIC클라우드 대표), 사위 배성진씨(선진엔지니어링 대표)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6일 오전 8시. (02)2258-5940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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