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난 엄마가 원하는 대로 자라지 않아요!
지난 가을, 어린이집에서 보호자 참관 수업을 했다. 담임 선생님 수업에서 쌍둥이들 모두 선생님 질문에 단 한 번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어찌나 입을 꾹 닫고 있던지! 심지어 체육 수업에서는 둘 다 그 어떤 단체 놀이에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과 나까지 넷이 꼼짝 없이 교실 맨 뒤편에 앉아서 체육 수업을 그야말로 '참관'만 하고 나왔다.
담임 선생님은 평소에 원에선 무리 없이 생활하는데 새로운 환경이라 좀 긴장한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라니 내심 속이 상했다. 내가 속상했던 건 아마도 '내가 바라는 내 아이들의 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바로, 선생님 질문에 씩씩하게 대답도 잘하고 체육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아이!
이런 아이를 원하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먼저 대답하기는커녕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배가 아픈 학생이었다. 체육은... 음, 운동 신경이라고는 제로를 넘어 마이너스를 뚫고 가는 사람이 바로 나다.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2022)에 등장하는 제페토도 아들 피노키오에게 바라는 확실한 모습이 있다. 그건 바로 인간 아들 카를로처럼 되어 달라는 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파시즘이 극성을 부리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다. 제페토의 아들 카를로는 성당에 떨어진 미사일에 목숨을 잃는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제페토는 자신이 만든 나무 인형 피노키오가 카를로를 대신해 주길 원하지만 피노키오는 말썽만 부리고 다닐 뿐이다.
집이 아닌 바깥 세상 사람들도 피노키오에게 바라는 상이 있다. 서커스 단장은 피노키오를 무대에 세워 크게 한탕하려고 한다. 그에게 피노키오는 돈벌이 수단이다. 한편 시장은 피노키오를 소년병으로 만들어서 전쟁터에 세우려고 한다. 시장에게 피노키오는 파시즘의 불꽃을 더 크게 활활 불태워줄 장작이다. 영화는 우화의 형식을 빌어 세상엔 악한 어른들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 돈과 정치를 위해서라면 힘없는 아이들을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어른들 말이다.
피노키오는 서커스 단장과 시장에게는 단호하게 복수하지만, 아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에 뒤틀린 구석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제페토에게는 사랑으로 응답한다. 피노키오의 큰 사랑은 제페토는 물론이고 세파에 찌든 성인 관객인 나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반전을 이끌어낸다. 이 반전은 아이들은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단순명료한 사실을 더 또렷하게 보여준다.
연말을 맞아 일주일 휴가를 받은 남편과 어린이집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1월 1일까지 9일 동안 붙어 지냈다. 이 중 2박 3일은 나 없이 셋만 여행을 가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2023년의 첫 월요일, 아이들이 눈을 뜨자마자 남편이 출근했음을 알아차린 후 한 첫 마디는 "엄마, 오늘 아빠 일찍 와?"였다.
새해라고 딱히 새해 결심 같은 건 하지 않는 성격인데, 아침 댓바람부터 아이들의 사랑 고백을 듣고 제페토의 대사를 올해의 결심으로 삼아 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피노키오, 내가 널 다른 아이로 만들려고 했구나. 이제 카를로가 되지도 다른 누군가가 되지도 말아. 네 모습 그대로 살아. 난 널 사랑한다. 있는 그대로의 너를."
마흔이 넘어서도 씩씩함과 적극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으로 살면서 너희들에게 그런 걸 바라다니, 미안해. 이 엄마도 이런 인간으로 사는 고충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인생을 굴려 왔단다. 뭐 어린이집 참관 수업 한 번에 이러는 게 과잉 반응 같기도 하지만, 너희들이 학교에 가게 되면 분명히 씩씩함과 적극성 앞에 '공부도 잘하는'을 붙일 것이 뻔해서 미래의 나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써둔다.
제페토의 말에 피노키오는 이렇게 답한다. "그럼 전 피노키오로 살게요. 아빠는 제 아빠로 살아 주세요." 피노키오의 대답이 아이가 내게 '엄마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거라고 말해줬다. 부모는 나무 인형을 만드는 목공이 아니고, 아이는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라 피노키오처럼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고.
오랜 난임 시절을 통과하면서 아이는 부모가 만드는 게 아니라 스스로 부모를 찾아오는 것임을, 주사 맞고 약 먹으며 내 몸과 정신을 통째로 바쳐 깨달았다. 그런데 정작 육아를 하면서 간사하게도 이를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새해에는 간사함은 좀 덜고, 엄마로 사는 감사함을 더하는 양육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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