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읽기』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 “세계문학 읽기는 세계를 껴안고 세계로 나아가는 훌륭한 전략”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그 책을 읽는 사람은 부패시키거나 타락시킬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그 책을 출판함으로써 과학, 문학, 예술, 학문 및 기타 대상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의미에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면 처벌이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으로 성불구자가 된 남편 클리퍼드 채털리의 곁을 지키는 스물일곱의 아내 코니가 사냥터지기 올리버 멜러즈와 성행위를 동반한 사랑을 나누고, 결국 남편과의 이혼을 감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 속에 담긴 성애 장면은 지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출판기획자이자 『책의 정신』의 저자 강창래씨는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교유서가)’에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 재판을 통해 문학은 과연 무엇인가를 검토한 뒤, 세계 문학의 드넓은 바다로 독자들을 이끌고 간다.
책은 이어서 프랑스와 영국, 미국, 러시아 각국의 근대문학을 차례로 훑어보면서 세계문학 주요 사조나 흐름을 일별한다. 이 과정에서 주요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저자의 설명과 해설은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가령, 프랑스 문학을 다루면서 근대 소설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발자크에 대해선 반동적인 세계관을 지녔음에도 리얼리즘을 위해 결과적으로 귀족을 대중에 ‘팔아넘’겼다고 평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비범인의 자유’가 핵심 주제이다. 그것은 스탕달이 모범으로 삼았던 나폴레옹의 경우와 다를 바 없었다. 좋게 보면 하층민 출신이라 해도 뛰어난 능력으로 황제까지도 넘볼 수 있는 혁명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일반화될 경우 무정부주의 상태와 같은 혼란과 파국으로 가는 길이다. 이 문제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죄와 벌』에서도 다뤄졌지만, 최고 결정판은 미완의 마지막 작품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한 장인 ‘대심문관’에서 찾을 수 있다.”(162쪽)
세계 문학사와 그에 얽힌 정치 경제사, 문화사적 맥락을 함께 풀어내는 실로 대담한 세계문학 강의가 아닐 수 없다.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을 읽고 나면, 이 책에서 다룬 세계문학 고전을 읽고 싶어질지도.
다만, 저자는 가급적 많은 세계문학 텍스트를 폭넓게 읽기 위해선 ‘비교’와 ‘참조’라는 나침반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즉, 새로운 작품을 읽을 때는 앞서 읽었던 작품이나 다른 문화권의 작품과 비교 대비를 통해 시대를 가로지르고, 문화를 가로질러 읽어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죄의식’과 ‘보는 행위’ 모티프에 주목해 고대 그리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중세 인도 칼리다사의 『사쿤탈라』를 비교 분석하기도 한다.
“『오이디푸스 왕』과 『샤쿤탈라』는 수많은 신과 여신이 인간사에 개입한다고 믿었던 고대 다신교 사회의 산물이다. 『오이디푸스 왕』과 『사쿤탈라』를 함께 읽는 것은 소포클레스와 칼리다사가 오늘날의 대다수 극작가들과 얼마나 다른 가정 아래 작업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154쪽)
저자는 결국 세계문학의 역할이 단순한 즐거움만을 위한 독서가 아닌, 다른 세계를 향한 관심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세계문학 읽기는 세계를 껴안고 세계로 나아가는 훌륭한 준비이자 전략이 된다.
“세계문학 읽기는 우리를 자극해 세계로 이끌어야 한다. 어떤 문학작품도 그 사회의 직접적인 거울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작가는 비록 거기서 달아나는 응답을 선택했더라도, 하나의 문화에서 발생해 다양한 방식으로 해당 문화에 응답한다. 기원 문화를 많이 알수록 작가가 작품을 집필한 기간에 이룬 변화를 더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이해는 완전한 몰입 후에 온다. 과거의 문학 유산과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여러 세계로 뻗은 길을 동시에 받아들일 때, 더 깊어진 비판적 이해와 새로운 가능성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405-406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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