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읽기』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 “세계문학 읽기는 세계를 껴안고 세계로 나아가는 훌륭한 전략”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3. 1. 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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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을 읽는 사람은 부패시키거나 타락시킬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그 책을 출판함으로써 과학, 문학, 예술, 학문 및 기타 대상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의미에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면 처벌이나 규제를 받지 않는다.”

1959년, 영국에서 이 같은 문학의 자유를 담은 ‘음란출판물법(Obscene Publications Act)’이 제정됐다. 문학 작품이란 공익에 반한다고 하더라도 문화나 예술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어떠한 제한도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펭귄출판사는 이듬해 D. H. 로런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 무삭제판을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무삭제판은 출판사들이 1928년 로렌스가 소설을 완성하자 노골적인 성애 묘사를 삭제하면 펴내겠다고 제안했지만, 로런스가 삭제를 거절하고 이탈리아에서 자비 출판하는 바람에 영국에선 출간되지 못했다.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으로 성불구자가 된 남편 클리퍼드 채털리의 곁을 지키는 스물일곱의 아내 코니가 사냥터지기 올리버 멜러즈와 성행위를 동반한 사랑을 나누고, 결국 남편과의 이혼을 감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 속에 담긴 성애 장면은 지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흔들거리는 그녀의 양 젖가슴이 꿈틀거리며 꼿꼿이 선 남근의 귀두에 닿으면서, 귀두로부터 축축한 물방울 같은 것이 묻어 나왔다. 그녀는 사내를 꼭 껴안았다. ‘누워요.’ 그가 말했다. ‘어서! 들어가야겠소!’”
펭귄출판사가 『채털리 부인의 연인』 무삭제판 출간을 준비하자, 정부의 외설물 검열관이 출판사를 고소했다. 소설가와 시인, 비평가, 영문학자, 성직자 등 35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차례로 증언대에 서야 했다. 처음에는 외설이냐 아니냐를 두고 벌어진 대립은 곧 문학이냐 아니냐로 옮겨갔다. 증언자들이 “조금 심하지만, 그래도 문학”이라고 답하면서 펭귄출판사는 승소했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서 출간 석달만에 무려 300만부가 팔렸다.

출판기획자이자 『책의 정신』의 저자 강창래씨는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교유서가)’에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 재판을 통해 문학은 과연 무엇인가를 검토한 뒤, 세계 문학의 드넓은 바다로 독자들을 이끌고 간다.

책에 따르면, 문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래 지배층의 소유물이었고, 문학의 언어 역시 지배층의 진지한 언어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독서 대중이 등장,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픽션’이라는 말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들어서 ‘날조된 이야기’라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창조적인 상상력’이나 ‘삶에 대한 통찰’ 등 긍정적으로 바뀌어 갔고, 언어 역시 귀족이 아닌 대중이나 중하층 언어로 바뀌었다.

책은 이어서 프랑스와 영국, 미국, 러시아 각국의 근대문학을 차례로 훑어보면서 세계문학 주요 사조나 흐름을 일별한다. 이 과정에서 주요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저자의 설명과 해설은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가령, 프랑스 문학을 다루면서 근대 소설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발자크에 대해선 반동적인 세계관을 지녔음에도 리얼리즘을 위해 결과적으로 귀족을 대중에 ‘팔아넘’겼다고 평한다.

“발자크 자신은 귀족들에게 깊이 공감했지만, 취재하고 연구하여 사실대로 쓴 글에는 그들을 적에게 팔아넘기는 내용이 담겼다. 꽤나 반동적인 세계관을 지녔음에도, 다른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리얼리즘은 작가의 취향이나 사고방식이 아니라 사회문제와 모순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이었다.”(63쪽)
러시아 문학을 다루면서 ‘건강한 톨스토이’에 비해 도스토예프스키는 “병적인 느낌을 준다”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세계를 냉정하게 분석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비범인의 자유’가 핵심 주제이다. 그것은 스탕달이 모범으로 삼았던 나폴레옹의 경우와 다를 바 없었다. 좋게 보면 하층민 출신이라 해도 뛰어난 능력으로 황제까지도 넘볼 수 있는 혁명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일반화될 경우 무정부주의 상태와 같은 혼란과 파국으로 가는 길이다. 이 문제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죄와 벌』에서도 다뤄졌지만, 최고 결정판은 미완의 마지막 작품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한 장인 ‘대심문관’에서 찾을 수 있다.”(162쪽)

책은 후반부에서 모더니즘 시와 조지프 콘래드와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등 모더니즘 소설을 찬찬히 살핀 뒤 마지막에서 현대적인 해석학과 정신분헉학, 해체론과 최신 문예이론을 소개한다. 헤밍웨이의 젠더 문제를 제기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헤밍웨이에게도 흠이 많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부분은 ‘파파 헤밍웨이’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그의 작품에 강하게 드러나는 ‘마초 성향’이다. 그런 지적은 194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그가 그려낸 여성들은 남자를 거세하는 요부이거나 노예처럼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뿐만 아니라 인종주의적 편견도 없지 않다.”(258쪽)

세계 문학사와 그에 얽힌 정치 경제사, 문화사적 맥락을 함께 풀어내는 실로 대담한 세계문학 강의가 아닐 수 없다.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을 읽고 나면, 이 책에서 다룬 세계문학 고전을 읽고 싶어질지도.

하버드대 비교문학 학과장이자 세계문학연구소 소장인 데이비드 댐로쉬의 역저 『세계문학 읽기』(앨피) 역시 세계문학을 읽고 싶어 하는 예비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야심 가득한 세계문학 안내서다. 마치 4000년의 세계문학을 어떻게든 연결하려는 담대한 기획으로 가득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론은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듯 특정 패러다임을 통해 거시적으로 읽어내려는 ‘멀리서 읽기’나 ‘대략적인 얼개 파악하는 법’을 주창한 프랭코 모레티와 대척점에 선다. 즉, 최대한 다양한 작품을 미련할 정도로 진득하게 읽어 나가는 ‘경험론적 꼼꼼히 읽기’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다만, 저자는 가급적 많은 세계문학 텍스트를 폭넓게 읽기 위해선 ‘비교’와 ‘참조’라는 나침반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즉, 새로운 작품을 읽을 때는 앞서 읽었던 작품이나 다른 문화권의 작품과 비교 대비를 통해 시대를 가로지르고, 문화를 가로질러 읽어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죄의식’과 ‘보는 행위’ 모티프에 주목해 고대 그리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중세 인도 칼리다사의 『사쿤탈라』를 비교 분석하기도 한다.

“『오이디푸스 왕』과 『샤쿤탈라』는 수많은 신과 여신이 인간사에 개입한다고 믿었던 고대 다신교 사회의 산물이다. 『오이디푸스 왕』과 『사쿤탈라』를 함께 읽는 것은 소포클레스와 칼리다사가 오늘날의 대다수 극작가들과 얼마나 다른 가정 아래 작업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154쪽)

저자는 이밖에도 작가들이 작품 속 인물을 해외에 내보내는 방식으로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는 방식도 살펴보고, 외국인의 침략으로 변화된 모국 풍경을 담아내는 원주민 작가들의 작품을 탐구하기도 한다. 작가들이 ‘탈지역화된 글쓰기’나 ‘글로컬적 글쓰기’ 등의 방법으로 세계의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안한 방식도 검토한다.
다양한 세계문학 읽기 방법을 이야기하는 사이, 고대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와 소포클레스, 중세 인도의 칼리다사, 헤이안 시대 무라사키 시키부를 거쳐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의 작품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펼쳐져 있다.

저자는 결국 세계문학의 역할이 단순한 즐거움만을 위한 독서가 아닌, 다른 세계를 향한 관심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세계문학 읽기는 세계를 껴안고 세계로 나아가는 훌륭한 준비이자 전략이 된다.

“세계문학 읽기는 우리를 자극해 세계로 이끌어야 한다. 어떤 문학작품도 그 사회의 직접적인 거울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작가는 비록 거기서 달아나는 응답을 선택했더라도, 하나의 문화에서 발생해 다양한 방식으로 해당 문화에 응답한다. 기원 문화를 많이 알수록 작가가 작품을 집필한 기간에 이룬 변화를 더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이해는 완전한 몰입 후에 온다. 과거의 문학 유산과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여러 세계로 뻗은 길을 동시에 받아들일 때, 더 깊어진 비판적 이해와 새로운 가능성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405-406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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