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상하관계?
규칙(룰)도, 의미도 달라졌다. 오는 3월 8일로 확정된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친윤계의 당권 장악이냐, 비윤계의 반란이냐’ 구도가 됐다. 이른바 ‘윤핵관’ 중 한 명이 당대표가 되면 윤석열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를 경험해보지 않았다는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반면 여소야대 정국에서 여당 대표까지 비윤계가 당선될 경우 행정부와 국회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전망이다.
이미 각 진영을 대표할 인물들은 등장했다. ‘윤핵관’으로 분류되는 당권주자 중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김기현 의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 27일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우리 당(국민의힘) 지지율을 55%, 대통령 지지율을 60%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과 반대쪽 극단에는 윤 대통령과 노골적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이 있다. 전당대회 규칙이 당원투표 100%로 변경된 것을 두고 유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의 1인 독재, 민심이 두렵지 않느냐” 등의 날 선 발언을 쏟아냈다. 유 전 의원은 당원보다 일반 여론조사에서 더 높은 지지를 받는다. 전당대회 규칙이 불리하게 변경된 만큼 불출마 선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전대 룰 변경이 사실상 ‘유승민 찍어내기 아니냐’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만큼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극단인 김 의원과 유 전 의원 사이에도 다수의 후보군이 있다. 나경원 전 의원, 안철수 의원 등이다. 전당대회가 석 달여 앞으로 다가온 만큼 당권에 도전하는 후보들은 이들 외에도 계속해서 추가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마치 풍요 속의 빈곤처럼 ‘인물론’에 대한 우려가 계속해서 나온다는 점이다. 실제로 당대표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익숙한 정치인들이다. 참신함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직전 전당대회에서 30대 대표를 탄생시킨 역사가 만든 기저효과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전당대회 흥행을 총선까지 이어가려는 전략에는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윤 대통령, 당까지 장악할까
여당만 따로 떼놓고 보면 자체적으로 흥행할 만한 요소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당까지 장악할 수 있느냐로 초점을 맞추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윤핵관을 표방하는 세력이 당권을 장악하면 대통령과 당은 협력관계를 넘어 계층질서가 형성될 수 있다. 다음 총선은 윤 대통령 이름으로 치러야 하는 상황 역시 이러한 구조를 가속화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누가 진정한 윤심이냐’를 경쟁하는 자리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자연히 전당대회의 관심도 ‘여당 대표가 누가 될 거냐’보다 ‘윤 대통령이 누구를 지목하느냐’, ‘당원들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후보들 스스로 대통령에 종속되는 길을 택하고 있다는 의미다.
원칙인가, 졸속인가
‘정치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옛말이 됐다. 전당대회를 불과 석 달 앞두고 경쟁의 규칙을 바꿨다. 특히 유력 후보 한 명이 유리한 상황에서의 변경이라는 점에서 뒷말이 나온다. 유 전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부터 ‘논란의 인물’이었다. 평소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는 만큼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나 중도층 사이에서 경쟁 후보들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회자된 말이 ‘역선택’이었다.
역선택이 실제로 존재하느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과장된 표현이라는 주장과 실제로 경쟁당 당원들이 조직적으로 경선 등에 참여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느냐와 별개로 중요한 것은 역선택 가능성을 알면서도 전당대회 규칙에 왜 일반 여론조사가 포함됐느냐이다. 여기서 나오는 정치적 수사가 바로 ‘외연확장’이다.
진보와 보수가 팽팽하게 맞선 한국 정치 지형상 중도층이 선거 판세를 가른다.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당 지도부 선출은 권력획득의 주요 요소다. 2004년 이후 보수정당의 전당대회에 일반 여론조사 30%가 들어간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당심만 확인해서는 중도층 확장을 이뤄낼 인물을 선출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른바 7:3룰(당원투표 70%·국민 여론조사 30%)은 여당 시절이든 야당 시절이든 관계없는 보수정당 전당대회의 원칙이 됐다.
그런데 18년간 유지해온 규칙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폐지됐다. 변화에는 명분이 필요하다. 한국 정치에서 중도층 쟁탈전이 중요한 것은 변함이 없다. 지난 대선이 0.73%포인트 차로 승패가 갈렸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정치인에게 중도확장 가능성이 주요한 역량인 것도 변함이 없다. 선거 때면 중도보수, 중도진보 등의 정체불명의 용어가 횡행할 정도다. 정치의 기본 원칙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변한 것은 결국 ‘인물’뿐이다. 대통령이 쌓아놓은 정치적 자산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실제로 국민의힘 전당대회 규칙 변경을 윤 대통령이 주도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00% 당원투표를 채택한 배경에는 ‘100만 당원이면 당심은 민심’, ‘당대표는 당원들이 뽑는 것’, ‘유불리 문제가 아닌 원칙의 문제’ 등의 논리가 동원된다. 규칙 변경을 비판하는 목소리에는 “축구선수가 규칙을 말하는 것은 우습다”거나 “국회의원선거 때도 보통 2~3개월 전에 다 선거법을 고쳤다” 등의 반론이 나온다. 주로 윤핵관, 친윤으로 분류되는 후보들이 100% 당원투표를 옹호하며 해당 논리를 펴고 있다.
문제는 7:3룰이 오랜 기간 이어지다 보니 이를 통해 성장한 세력들이 국민의힘의 주요 자산이라는 점이다. 이 경우 자기부정이 발생하게 된다. 멀게는 2004년 한나라당 시절의 박근혜 대표, 원희룡 최고위원(현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일반 여론조사의 수혜를 입었다. 가깝게는 이준석 전 대표 역시 당원투표에서 나경원 전 의원에게 졌으나 여론조사에서 이겨 당권을 잡았다. 이때 만들어진 혁신 바람이 대선에까지 여파를 미쳤다. 윤 대통령 역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일반 여론조사의 수혜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당 바깥에 머물러 있던 윤 대통령을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만들기 위해 일반 여론조사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해당 목소리를 낸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이 ‘100% 당원투표’를 옹호하며 당권주자로 나선 김기현 의원이다.
당심은 윤핵관을 지지할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는 식의 변화는 전체 상황이 불리하거나 변화를 통해 특정인이 수혜를 입어야 할 때 나타난다. 이는 오랜기간 숙고한 개혁이 아닌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다시 바꿀 수 있는 일시적 변화에 가깝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규칙을 둘러싼 뒷말이 무성한 것도 상황 유불리에 따라 선택한 일시적 변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지정당을 구분하지 않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당대표 지지도 1위를 달리는 것은 비윤 혹은 반윤에 가까운 유 전 의원이다. 가장 최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관련 여론조사는 에브리뉴스/폴리뉴스가 의뢰해 여론조사기관 ㈜에브리씨앤알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것이다. 해당 조사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규칙이 최종 확정된 지난해 12월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진행됐다. 모든 규칙이 정해진 뒤 변수 없이 진행된 여론조사라는 의미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해당 조사에서 지지정당을 구분하지 않았을 때 국민의힘 당대표 지지율 1위는 38.3%를 획득한 유 전 의원이었다. 2위인 나 전 의원이 15.5%, 3위인 안철수 의원이 11.2%를 기록했다. 반면 윤핵관으로 분류되는 김 의원은 6.7%, 권성동 의원은 2.2%에 그쳤다. 그렇다면 지지정당을 국민의힘으로 밝힌 사람들로 한정할 경우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총 1000명 중 지지정당을 국민의힘이라고 밝힌 응답자는 442명이다. 무작위로 선출된 1000명 중 ‘나는 반드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혼란을 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뒤 유 전 의원까지 선택해야 역선택이 완성된다. 442명 중 이러한 사람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역선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의힘 지지자 중 당대표 선호도를 보면 1, 2위만 바뀐다. 나 전 의원 31.6%로 1위, 유 전 의원이 21.3%로 2위다. 안 의원이 13.8%로 3위다. 김 의원이 13.4%로 안 의원을 뒤쫓는다. 변경된 규칙으로 인해 나타난 변화 중 눈여겨볼 만한 것은 현재까지 두 가지다. 하나는 유 전 의원의 당대표 당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렇다고, 윤핵관을 표방하는 후보들이 당선에 가깝게 다가가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김 의원은 이른바 ‘윤심’이 본인에게 있음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원조 윤핵관으로 분류되는 장제원 의원과의 연대도 공식화했다. 김 의원 스스로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은 다 담갔고, 된장찌개도 끓이고 공깃밥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 단일화 및 연대 가능성 대상으로 언급되는 것은 나 전 의원이다. 이 경우 윤심의 이름으로 당원 지지율 1위 후보까지 포섭하는 것이 된다. 문제는 윤심을 받았다는 김 의원을 향한 뚜렷한 바람, 분위기 변화가 아직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당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며 유리한 상황을 맞은 나 전 의원이 “요즈음 제일 많이 듣는 말씀은 ‘당대표 되세요’”라며 “윤석열 정부 성공을 염원하는 당심을 한 움큼이라도 더 담겠다”고 나서고 있다. 나 전 의원 역시 필요하면 언제든 친윤을 표방하고 전당대회에 나설 수 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어떤 관계인가
국민의힘 전당대회 규칙 변경이 유승민 전 의원 찍어내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력 후보들 대부분이 이른바 ‘윤심’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 초래하는 문제는 대통령과 당의 관계설정에서 나타난다. 유 전 의원은 이미 “국민의힘 당대표가 그냥 윤 대통령의 노예, 하인 같은 사람이면 국민께서 그런 당대표와 당을 보고 (뭐라고 생각하겠나)”라고 비판했다. “대통령과 대립하며 자기 정치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유 전 의원의 지적은 견제와 균형을 기본으로 하는 현대 정치에서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관계가 수직적 관계로 고착화되는 데 대해서는 전문가들 역시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는 “상황에 따라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관계가 상호보완적일 수도 있고, 경쟁적일 수도 있지만 수직적 관계를 형성하고 일방적으로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형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 경우 정당정치, 의회정치 본연의 기능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 역시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대통령과 이른바 윤핵관 세력의 관계가 다소 일방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며 “만약 당대표가 돼서도 종속적·수직적 관계가 유지된다면 과거 박근혜 정부처럼 당이 정부에게서 자율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은 선거 중립의 의무는 있지만 정치적 중립의 의무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며 “당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도 있고, 이 때문에 보기에 따라 여당이 대통령에게 종속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에게 여당 대표가 여론을 전달하는 등 할 말을 할 수 있느냐’인데 이는 종속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유일한 비윤인 유 전 의원 대 친윤인 나머지 후보 간 대결 구도로 좁혀졌다. 이마저도 유 전 의원이 출마를 포기한다면 사실상 친윤끼리 ‘윤심 쟁탈전’을 펼치게 될 전망이다. 일반 여론조사를 반영하지 않는 만큼 국민의힘 당원들은 한국 정치사에서 ‘의미 있는’ 결정을 하게 됐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와의 관계, 의회정치의 근간인 정당 독립성 등이 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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