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노마드] 워런 버핏과 버락 오바마의 조상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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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의 이동이 세계의 역사를 바꾼 흐름을 보면 역시나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움직임이 두드러집니다. 유대인들은 특히 글로벌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막강한 힘을 발휘해 세상의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로스차일드와 골드만삭스가 유대계의 역량이 집중된 대표적인 투자은행입니다.
유대인들의 이동과 필적할만큼 박해를 받은 종교적 공동체의 이동이 큰 족적을 남긴 사례는 프랑스 신교도를 말하는 위그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위그노들은 다양한 방면에 진출했는데요. 특히 기술 분야를 선도하며 역사에 획을 그었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억만장자로 불리는 ‘석유왕’ 존 데이비드 록펠러(1839~1937)와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1930~)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미국 경제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두 사람의 조상은 프랑스에서 넘어온 위그노였습니다.
록펠러(Rockefeller)라는 성(姓)은 프랑스 귀족 가문 로크푀이유(Roquefeuilles)에서 유래했습니다. 버핏(Buffett)도 프랑스 성 뷔페(Buffet)에서 미국식으로 읽기 위해 약간 변형됐습니다. 프랑스에서 대서양을 건너와 1802년 거대 화학기업 듀폰(DuPont)을 창업한 위그노였던 엘뢰테르 이레네 뒤 퐁(du Pont·1771~1834)은 성의 철자를 바꾸지 않고 붙여 쓰기만 한 사례입니다.
위그노들은 탄압받은 신교도이면서 고급 기술을 갖춘 테크노크라트였습니다. 이들이 스위스로 이주해서 제네바를 세계적인 시계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글로벌 노마드’에서는 위그노가 어떤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었는지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특히, 록펠러나 버핏처럼 미국으로 이동한 위그노 후손들을 추적하면서 그들 가문의 연대기와 역사적 의미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위그노 그들은 누구인가, 시대를 앞서간 테크노크라트
위그노(Huguenot)는 프랑스 개신교 신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로 프랑스 내 칼뱅주의자들을 말합니다. 위그노라는 말 자체는 오래전에는 새로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업신여겨 부르는 멸칭이었다고 합니다.
16세기초 파리에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부르짖은 종교 개혁이 전파됐습니다. 소르본대를 중심으로 루터의 개혁 노선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가톨릭이 루터를 비난하면서 개신교 신앙을 가진 이는 죽음을 선택하거나 국외 탈출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종교개혁에 공감하는 개신교도들이 잇따라 화형을 당했습니다.
1530년대 들어 국왕 프랑수와 1세는 더욱 강경하게 개혁론자들을 탄압했습니다. 비교적 온건한 개혁주의자들에게도 불똥이 튀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종교개혁 운동가가 스위스 이주를 선택했고, 그 무리 중에 장 칼뱅(1509~1564)도 섞여 있었습니다.
제네바로 옮겨간 칼뱅은 폭넓은 지지를 받았고, 칼뱅의 사상이 프랑스 내에 역수출돼 상당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지금도 그렇듯 제네바는 프랑스어를 쓰는 도시입니다. 독일어로 전파되는 루터파의 이론보다는 프랑스에는 칼뱅이 영향력을 키우기에 더 용이했습니다.
칼뱅의 지도를 받은 개혁파 목사들이 다시 프랑스로 넘어가 개신교도인 위그노 세력을 키웠습니다. 당연히 가톨릭 사제들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이에 따른 종교 갈등은 1572년 벌어진 성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로 극대화됩니다. 가톨릭 세력에 의해 위그노 약 3만명이 살해됩니다. 당시의 끔찍한 학살은 여러 그림으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루이 14세의 탄압으로 여러 나라로 뿔뿔이 흩어진 위그노
프랑스 내에서 위그노는 가장 많을 때는 약 100만명에 달해 전체 인구의 5% 정도를 차지했습니다. 위그노의 세력은 남부에서 큰 편이었고, 귀족층과 부르주아 계층에서 세력을 키워갔습니다.
위그노들이 일시적으로 양지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계기가 생겼습니다. 1598년 앙리 4세가 낭트 칙령을 선포해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도들은 집회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평화는 오래 가지 못했고 가톨릭계와 위그노들은 계속 다툼을 벌였습니다. 양측이 싸우면 아무래도 소수파인 위그노들의 피해가 컸습니다.
특히, 국왕으로 장기 재임한 루이 14세(1638~1715)가 위그노 세력을 강하게 억압했습니다. 루이 14세는 1685년 퐁텐블로 칙령을 선포해 낭트 칙령을 폐지했습니다. 위그노들에게 프랑스 국민의 자격을 박탈해 완전히 가톨릭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루이 14세 집권기를 전후해 많은 위그노들은 국외로 탈출합니다.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 미국, 아일랜드 등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중에서도 주로 미국으로 옮겨간 위그노들을 주로 들여다보겠습니다. 대서양을 건넌 위그노들은 미국 동부 해안을 따라 정착했습니다. 매사추세츠, 뉴욕,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많이 몰려 살았습니다. 위그노들은 대개 식자층이었고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합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 딕 체니 전 부통령은 먼 친척
미국의 여러 초창기 위그노 중에서도 단연 화제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위그노 후손인 워런 버핏 회장의 뿌리를 찾아가다보면 마랭 뒤발(Marin Duval·1625~1694)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프랑스 북서부 거점도시 낭트에서 태어난 뒤발은 위그노들에게 가해지는 박해를 피해 1650년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가 닿은 곳은 영국 식민지였던 메릴랜드주였고, 그는 이름을 영어식으로 살짝 바꿔 머린 듀발(Mareen Duvall)로 개명했습니다. 장사 수완을 발휘한 뒤발은 거대한 농장을 조성해 큰 돈을 벌었습니다.
뒤발의 후손들은 정말로 쟁쟁한 인물들이 수두룩합니다. 일단 그의 Duvall이라는 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후손으로는 남북전쟁 때 이름을 떨친 여성 스파이 베티 듀발이 있습니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으로는 영화배우 로버트 듀발이 있고요.
그런데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공화당의 딕 체니 전 부통령이 모두 마랭 뒤발의 후손입니다. 2007년 10월 당시 체니 부통령의 부인은 자서전을 통해 “남편과 오바마가 ‘8번째 친척’”이라고 밝히고 방송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미국 개념으로 첫째 사촌은 같은 조부모인 사이이고, 둘째 사촌은 같은 증조부모를 둔 사이이고, 셋째 사촌은 같은 고조부모를 가진 사이를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체니와 오바마가 8번째 사촌이라 9대조 조상이 같다는 걸 말하는데, 이 사람이 마랭 뒤발이라는 얘기입니다.
체니 부통령의 부인이 방송에 나와 오바마와 남편이 둘다 마랭 뒤발의 후손이라는 걸 이야기한 시점은 오바마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서 미국 정치권에 태풍을 불러일으키던 시기인데요. 체니 부통령과 오바마는 앙숙처럼 싸웠습니다. 오바마는 조지 W 부시 정권의 실력자였던 체니 부통령을 향해 “골방의 미친 아저씨”라고 맹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둘이 감정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같은 조상을 뒀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당시 뉴욕포스트는 ‘서로 모욕을 주는 친척들’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트루먼·카터·부시까지 미국 대통령 후손 여럿 배출한 위그노 마랭 뒤발
2018년 미국의 위그노 후손 학자들이 공동으로 ‘찰스턴의 위그노 교회’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초창기 미국에 건너온 많은 위그노들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대거 정착했다는 데서 유래해 이런 책이 나왔습니다.
이 책을 보면 마랭 뒤발의 후손으로 체니와 오바마를 제외하고도 해리 트루먼, 린든 존슨, 지미 카터, 조지 H.W. 부시, 조지 W 부시까지 5명의 전직 미국 대통령이 포함돼 있다고 돼 있습니다. 또한 마랭 뒤발의 다른 후손으로는 워런 버핏도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버핏 가문 자체도 위그노이고 그의 할머니는 헨리에타 듀발이라는 사람으로 마랭 뒤발의 직계 후손이었습니다.
마랭 뒤발이 Duval이라는 프랑스 성을 Duvall로 바꿨듯이 워런 버핏의 조상도 원래 성은 ‘뷔페(Buffet)’였는데 17세기에 미국에 와서 t를 하나 더 붙여서 Buffett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출생 신고 통계를 검색해보면 1890년부터 1990년 사이 프랑스 전역에서 출생한 사람 중 Buffet이라는 성을 쓰는 이들은 모두 5503명에 이릅니다. Buffet 성을 가진 이들이 가장 많이 태어난 곳이 동부의 오트사부아주인데요. 이곳이 칼뱅이 활동하던 스위스 제네바와 바로 맞붙어 있는 곳이라는 게 상당한 흥미를 끕니다.
◇'석유왕’ 록펠러 놓고 프랑스와 독일 신경전
미국에 건너온 위그노 후손 중 유명한 사람으로는 ‘석유왕’으로 불리며 자선사업가로 널리 이름을 떨친 존 데이비드 록펠러(1839~1937)가 있습니다. 록펠러는 1920년대 대공황이 발생하기 이전 앤드루 카네기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사업가였습니다. 록펠러의 조상은 프랑스 위그노였고 원래 프랑스에 있을 때 로크푀이유(Roquefeuilles)라는 성을 갖고 있었지만 나중에 록펠러(Rockefeller)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그노들뿐 아니라 17~18세기에는 유럽에서 넘어간 이들이 영어식으로 성을 바꾸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그의 증조부까지는 독일에서 가져온 성 드룸프(Drumpf)를 썼다가 트럼프(Trump)로 바꿨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1900년 전후로 록펠러가 미국 최고의 갑부로 이름을 떨치자 당시 프랑스와 독일이 서로 “록펠러는 우리나라 출신”이라고 주장했다는 겁니다. 이런 논란이 벌어진 이유는 록펠러 가문이 위그노 탄압을 피해 먼저 프랑스에서 독일로 이주했고, 나중에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보기에 따라서 프랑스 출신이 될 수도 있고, 독일 출신이 될 수도 있죠.
록펠러 가문은 1685년 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폐지하자 박해를 피해 독일 라인강변 도시인 코블렌츠의 근교로 이주를 했다는 게 록펠러 가문의 역사를 연구한 이들이 확인한 내용입니다. 그랬다가 한 세대 정도가 더 지난 1723년 독일에서 제분업자로 일하던 요한 페터 록펠러라는 사람이 다섯 자녀를 데리고 미국 필라델피아로 향하는 배를 타고 넘어가서 지금의 뉴저지주에 정착했다는 게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록펠러라는 가문의 이름이 코블렌츠 근처에 있는 로켄펠트(Rockenfeld)라는 마을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을 합니다. 여기서 이름을 따서 로켄펠러(Rockenfeller)라는 성을 만들었고 미국으로 가서 록펠러가 됐다는 거죠. 독일 쪽 주장에 따르면 록펠러 가문이 프랑스에서 이주해오긴 했어도 록펠러라는 이름은 독일에서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의 제자, 미국에 건너와 화학회사 듀폰 세워
미국에서 찾을 수 있는 위그노의 흔적은 거대 화학회사 듀폰(Dupont)에도 있습니다. 학창시절 화학 시간에 배운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한 프랑스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를 다들 기억할 겁니다. 라부아지에는 대혁명 시대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그의 제자인 엘뢰테르 이레네 뒤 퐁(Éleuthère Irénée du Pont·1771~1834)이 미국으로 건너가 자신의 성을 따서 1802년 듀폰을 창업합니다.
어릴 적 뒤 퐁은 폭발물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아버지 친구를 통해 화약 제조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에서 일하던 스승 라부아지에를 만났습니다. 도제식 교육으로 폭발물을 제조하고 다루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라부아지에가 혁명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던 1794년 처형됐고, 뒤 퐁의 아버지도 혁명 세력 사이에서 곤경에 처했습니다.
루이 16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하는 방안에 대해 온건파였던 뒤 퐁의 아버지가 반대하면서 코너에 몰리게 됐습니다. 결국 프랑스에서 희망이 없다고 여긴 뒤 퐁의 아버지는 운영하던 출판사를 정리한 뒤 자식들을 데리고 1800년 1월 미국으로 떠납니다. 이들 가족은 로드아일랜드주에 당도했고, 1802년 뒤 퐁은 듀폰을 창업합니다.
원래 뒤 퐁은 미국에서 창업할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제조하는 화약의 품질이 워낙 조악하고 기술도 유럽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점에서 라부아지에로부터 배운 기술을 활용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합니다. 듀폰은 남북전쟁을 거치며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19세기 중반 듀폰은 미군에 화약을 가장 많이 납품한 업체가 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듀폰은 2015년 다우케미칼과 합병해 다우듀폰이라는 거대한 회사가 됐습니다. 2021년 매출이 166억달러(약 21조원)에 달합니다.
◇험프리 보가트와 말론 브란도도 위그노 후손
재미있는 건 위그노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이들이 아직도 제법 있다는 겁니다. 1883년 뉴욕에서 미국위그노협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져 위그노의 역사를 지금까지도 기념하고 있습니다. 1898년 낭트 칙령 300주년, 1998년 낭트 칙령 400주년 행사를 치렀습니다. 위그노와 관련한 도서관을 유지하고 있고 위그노 혈통의 대학생들이나 학자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위그노 핏줄을 이어받은 후손으로 꼽히는 사람으로는 배우 험프리 보가트, 말론 브란도, 조니 뎁, 윌리엄 크리스토퍼 등이 있습니다. 작가 중에서는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극작가 테너시 윌리엄스 등이 있습니다.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도 위그노 핏줄을 이어받았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오바마나 부시와 같은 앞서 언급한 마랭 뒤발의 후손들 외에도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 앨버트 고어 전 부통령이 위그노 후손입니다. 그리고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도 외가가 위그노였던 프랑스계였습니다.
미국의 위그노들은 이미 19세기에 완전히 미국 사회에 동화됐습니다. 이들은 영국 또는 독일계 이주민들과 결혼을 통해 뿌리 내렸고, 집안에서 가족끼리 쓰던 프랑스어도 사용하지 않게 됐습니다. 사실 지금에 와서 미국인이 위그노의 후손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그야말로 멜팅팟(melting pot)이라서 여러 인종이 모여 있는 나라죠.
다만, 우리가 생각할 부분은 탄압과 박해를 받고 이주한 이들이 긴 시간을 두고 세계사에 끼친 영향입니다. 프랑스에서 고급 기술을 가진 유능한 사람이 많았던 위그노들은 프랑스를 등졌습니다. 위그노들의 탈출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든 19세기 초반 이후로 프랑스 국력은 이전에 미치지 못합니다. 반대로 위그노들을 대거 받아들인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미국 등은 위그노들의 기술을 활용해 상당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냅니다. 다음 기회에 유럽의 다른 나라로 이주한 위그노들의 스토리도 살펴보겠습니다. 쟁쟁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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