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정 “‘대본에 갇힐 필요 없다’는 남편 조언, 연기가 편해졌다”
“노력해도 안 될 일은 안 되더라”고 했다. “생사를 걸고 열심히 해도 작품이 잘 안되면 상처가 됐다”고도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민정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지는 몰랐다.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배우 아니었나?
‘10여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답하면서 한 말이었다. 그는 오는 4일 개봉하는 영화 <스위치>의 여주인공을 맡았다. 영화 출연은 2012년 1월 개봉작 <원더풀 라디오> 이후 꼭 11년 만이다. “그동안 영화를 하려다가도 흐지부지된 적이 많았어요. 인연이 아닌 거죠. 그런데 이 영화는 물 흐르듯 일사천리로 진행됐거든요. 저와 인연이 있나 봐요.”
<스위치>는 안하무인 톱스타 배우 박강(권상우)과 그의 친구이자 매니저 조윤(오정세)의 삶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흔한 설정이지만, 새해 벽두부터 따스한 웃음과 감동을 안기는 힘이 있다. 여기엔 박강과 10년 전 헤어진 첫사랑으로, 바뀐 삶에서 박강의 아내가 된 수현(이민정)과, 둘 사이에 생긴 쌍둥이 남매(김준·박소이)의 알콩달콩한 생활 연기가 한몫한다.
“촬영 때 이전처럼 치열함은 덜한 대신 재밌게 놀고 온 느낌이었어요. 상우 오빠와 아이들하고 실제 재밌게 놀고 밥도 맛있게 먹고 실생활처럼 한 게 나중에 화면 보니 다 나오더라고요. 아들로 나온 준이에게 팔베개를 해주면 진짜로 잠들기도 했거든요.”
2014년생 아역배우 김준은 이민정의 실제 아들(이준후)보다 한살 많다. 또래여서 이민정은 집에서 아들 키우듯 김준과 연기했다고 했다. “촬영장에서 준후와 영상통화를 하면 첨엔 준후가 ‘왜 나랑 안 놀아주고 다른 남자애(김준)랑 있냐’며 질투했어요. 그런데 아이들끼리 통화하게 하니 준후가 ‘준이 형’ 하며 잘 따르더라고요.”
늘 꽃길만 걸어온 것 같지만, 그는 짧지 않은 무명 시절을 보내야 했다. 연출 공부를 하려고 2001년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 들어간 그는 학점을 따려면 공연을 해야 한다고 해서 의도치 않게 연기를 하게 됐다. “사람들이 내 얘기를 듣고 같이 웃고 하는 게 신기하고 매력적이었어요. 이후론 학교에서 공연을 하면 알아서 연기자로 들어갔죠.” 몇년 뒤 연극 무대에 섰고, 영화에도 단역으로 출연했다.
“발에 동상 걸리면서까지 촬영했는데, 영화엔 거의 편집돼 안 나온 적도 있어요. 무명 생활 3~4년 하니 아빠가 ‘이젠 그만해라’ 하셔서 ‘30살 돼도 잘 안되면 그만할게요’ 했거든요. 그런데 28살에 출연한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뜨면서 그제야 사람들이 알아보는 배우가 됐죠.”
2010년 개봉한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으로 여러 신인상도 탔고, 드라마에서도 맹활약했다. 2013년 배우 이병헌과의 결혼은 스포트라이트의 절정이었다. 이후 2015년 아들을 낳고 키우면서 일과는 멀어졌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남 얘기가 아니었다.
아들이 어느 정도 큰 뒤 다시 연기를 시작할 즈음, 남편 이병헌이 문득 연기 얘기를 꺼냈다. “그 전에는 한번도 연기 얘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배우가 대본에 너무 갇힐 필요는 없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보수적이라 대본에 최대한 충실해야 한다는 편이었거든요. 오빠가 ‘배우가 연기할 때 불편하면 다 티 난다. 대본 지문이 어색하면 배우가 다른 걸로 바꿔 쓸 수도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 대로 주말극 <한번 다녀왔습니다>(2020·KBS2)와 영화 <스위치>에서 연기하니 더 편안했어요. 참 고마운 조언이었죠.”
아내의 연기에 도움을 준 이병헌은 <스위치>에도 이름으로나마 출연해 힘을 보탰다. 매니저가 된 박강이 톱스타 배우 조윤에게 대본을 내밀며 “이병헌이 깐 영화래. 할래?” 하자 조윤이 “요새 이병헌 싸잖아” 하는 장면에서다. “‘이병헌 싸잖아’는 정세 오빠 애드리브였거든요. 그런데 하고 나서 저보고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으니 네가 물어봐줘’ 하는 거예요. 오빠에게 물어보니 ‘웃기는 거면 괜찮지. 근데 안 웃기면 기분 나쁠 거 같아’ 하더라고요. 나중에 시사회에서 이 장면 보고 다들 빵 터졌다고 전하니 오빠가 좋아했어요. 영화를 실제로 보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네요.(웃음)”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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