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도약하는 검은토끼 출연연이 되자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 팬데믹, 미국과 중국의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세계 곳곳의 기록적인 가뭄과 홍수, 한파와 폭설 등 초대형 재난이 연달아 닥치면서 지구촌이 다중 전쟁터가 돼 버렸다.
그러는 와중에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된다고 저절로 사라지는 위기는 하나도 없다. 우리가 하나하나 풀어가야 할 숙제들이다. 세계 각국은 이런 숙제들을 풀어갈 중요한 열쇠로 기술을 꼽는다. 반도체·인공지능·차세대 통신 등은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고 경제·안보를 좌우하는 핵심기술이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12대 국가전략기술 육성으로 기술주권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임무 중심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합 조정하고 체계적인 정책으로 핵심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2023년 대입 수시모집 결과, 서울대 의예과와 치대만 수시합격자 전원이 등록했고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최초합격자의 33%가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 정책의 핵심인 반도체 학과도 서울 주요 대학 반도체 학부의 수시 합격생의 70% 가까이가 등록을 포기했다고 한다. 우수 이공계 인재들이 의학계열로 몰리는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
왜 이들은 의학계열을 그렇게도 선호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치열한 경쟁속에서 힘겹게 공부한 보상, 즉 안정적으로 고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의사는 직장 상사에게 시달리지 않고 짤릴 걱정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자유를 보장받는 몇 안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자연·이공계는 어떠한가?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구글 같은 빅테크 기업과 네이버, 카카오, 삼성전자 등 국내 테크 기업들이 많은 개발자들을 좋은 조건으로 채용했지만, 경기 침체를 맞아 감원에 들어갔다. 대학교수도 학생이 줄면서 어려운 직업이 돼 가고 있다. 반도체 인재가 많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유행처럼 바뀌어온 정책이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
출연연은 어떠한가? 안정적인 직장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핫플레이스를 잔뜩 품은 서울을 떠나야 하고, 대기업보다 처우는 낮고, 자유로운 연구도 보장받을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출연연이 유능하고 젊은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출연연에 인재가 오지 않는 이유를 나열하면 수없이 많다. 첫째, 잘 안 뽑는다. 정원이 묶여 있어서 누가 나가야 뽑을 수 있다. 둘째, 뽑아도 잘 안 온다. 지방 출연연보다는 수도권에 있는 대기업을 선호한다. 셋째, 올 사람이 별로 없다. 고교 졸업자 중 우수한 학생은 의학계열을 선택한다. 그나마 우수한 이공계 대학생은 '네카라쿠배'를 선호한다. 넷째, 직장 매력도가 낮아졌다. 전에는 안정적 직장이라 선호됐으나, 요즘은 이직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적극적인 경력 관리에 활용한다. 다섯째, 고용 형태가 변하고 있다. 고급 경력직도 프리랜서와 긱노동(gig work)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숨고·크몽 등 플랫폼에 프리랜서 IT 전문가가 모여든다. 여섯째, 20-30년 전에 자녀를 많이 낳지 않아 대학 졸업자수가 줄었다. 요약하자면 총체적 난국이다.
토끼는 작고 수줍은 초식동물이어서 겁 많고 유약하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속담이나 설화에서는 꾀 많고 영리한 지략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한다. 검은 토끼의 해에는 출연연이 유약함을 극복하고 국가 전략기술 확보의 거점이 되기 위해 지혜롭고 영민한 인재 경영 전략을 펼쳐야 한다. 한정된 기존 연구자들과 젊은 박사급 인재 몇 명 더 뽑는 것으로는 변화하기 어렵다. 국가 대표 연구기관으로서의 출연연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되, 변화하는 시대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며, 국내·외 우수한 인력에 대해 직접 채용하거나 빌려오거나 그들과 교류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래서 출연연이 국가·인류 재난을 조금이라도 쉽게 극복해내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우수 인재가 모이고 좋은 성과를 내며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그런 직장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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