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밤 새웠다고? ‘글로리’, 진짜 복수는 3월에 시작이야

김은형 2023. 1. 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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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신작 시리즈 ‘더 글로리’
이틀 만에 전세계 OTT순위 5위로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날밤 새웠다!”

지난해 12월30일 오후 5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가 공개된 뒤 여러 커뮤니티 등에 쏟아진 시청자들 반응이다. 약 50분짜리 8부작으로 완성된 이 드라마는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공개한 지 하루 만에, 방영 내내 국내 시리즈 1위 자리를 지키던 <재벌집 막내아들>(JTBC)을 밀어냈으며 국외 반응도 뜨겁다. 글로벌 오티티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서 1일 기준 전세계 5위에 올랐으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 등 주요 아시아 국가들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밖에도 대부분의 서비스 국가에서 10위권에 올랐으며 미국에서도 6위에 올랐다. 전세계에 신드롬급 열풍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2021)은 공개 나흘 만에 미국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더 글로리>는 시청률 제조기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의 첫 오티티 작품이자 ‘청불’ 복수극, 또 <태양의 후예>(2016)에서 김작가와 협업했던 송혜교 주연으로 공개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공개된 뒤 반응은 “명불허전 김은숙”이라는 찬사 속에 “막장 드라마 같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사적 복수라는 자극적인 소재와 표현의 수위가 자유로운 오티티를 활용해 작정하고 지독한 드라마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분노의 감정을 정조준한 짜릿한 장르극

<파리의 연인>(2004)부터 <태양의 후예> <도깨비>(2016)까지 김은숙 작가는 로맨스의 대가로 알려졌지만 <온에어>(2008) <시티홀> (2009), <미스터 션샤인>(2018) 등 새로운 소재와 장르에 도전했고 성공해왔다. <더 글로리>는 김은숙이 처음 선보이는 ‘독한’ 드라마다. 사적 복수라는 소재는 최근 몇 년 새 드라마의 트렌드라고 할 만큼 여러 작품이 나왔지만 <더 글로리>만큼 선명하게 복수의 명분을 제공하는 드라마는 흔치 않다. 고등학교 시절 동은(송혜교)이 겪는 학교폭력 피해는 바늘 들어갈 틈도 없을 정도의 추악함으로 가득 차 있다. 직접 괴롭히는 동급생들의 잔인함은 허구라고 해도 보기 힘들 지경이고, 담임교사와 엄마 등 동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더 큰 고통만을 준다.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가해자들이 동은을 대하는 태도에 한 방울의 연민이나 죄책감도 없다면 김은숙 작가는 가해자 캐릭터들을 일말의 연민도 없이 그린다. 동은을 괴롭히던 동창생들은 성장해 번듯한 방송인과 골프장 사장, 유명 화가, 승무원이 되어 겉으로는 선망받는 삶을 살지만 여전히 역겨운 사고방식과 추악한 태도, 천박한 언어 속에서 뒹군다. 자신들의 치부를 알고 있는 동은이 조여와도 뻔뻔함을 놓지 않는 가해 주동자 연진(임지연)과 재준(박성훈), 같은 가해자이면서도 연진과 재준에게 대놓고 무시당하는 혜정(차주영)과 명오(김건우) 등은 원색적인 계급의식을 드러낸다. 혜정의 대사대로 연진의 남편이 자신을 우아하게 포장하는 “나이스한 개새끼”라면 이들은 “그냥 개”다. 따라서 모든 악인에 대한 동은의 증오는 100%의 순도를 획득한다. 김은숙 작가는 오티티라는 울타리 안에 놓인 도구들을 백이십퍼센트 활용해 순도 높은 증오심을 빚어냄으로써 복수극이 줄 수 있는 긴장의 최고치를 이끌어낸다.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김은숙표 막장드라마?

드라마를 보다 말았다는 이들의 대부분은 동은이 당하는 잔인한 폭력 장면에서 멈췄다고 말한다. 표현 수위가 일부 시청자들이 시청을 포기할 정도로 세다. 또한 장르물 팬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떡밥과 회수, 퍼즐 맞추기를 중심으로 본다면 동은의 오랜 복수 계획에 우연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이 끼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복수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남(염혜란), 주여정(이도현) 등이 모두 우연히 만난 지원군이라는 점은 동은이 준비한 복수 십개년 계획의 치밀함을 무색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시즌2도 아닌 파트2를 3월 공개로 늦춰 드라마가 어정쩡하게 끝난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보통 드라마는 시즌2의 주요 소재를 떡밥처럼 남기더라도 큰 문제는 해결하고 마무리하는 데 비해 <더 글로리>는 복수를 설계하고 동은이 가해 주동자인 연진의 목을 조여가다가 8부가 끝난다. 드라마 전체의 키맨이 될 연진 남편 도영(정성일)의 변화나, 연진이 자주 가는 점집의 비밀 등 결정적 요소들이 파트2로 넘어갔다. 순도 높은 복수극이 주는 절정의 쾌감은 3월 이후로 유예된 셈이다. <재벌집 막내아들> 마지막 회가 많은 시청자들의 실망을 샀듯, 그 순도가 마지막 16부까지 유지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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