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교양 있는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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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로 늦은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숙소 검색을 하다가 나고야에 책 읽기를 컨셉트로 한 호텔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 읽는 일이 제 직업이기 때문에 휴가를 가서까지 책을 읽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서 숙박비 결제 버튼을 누르고 말았습니다.
(혹 홍보 기사인가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까봐 거듭 강조해 말씀드리자면, #내돈내산 입니다.)
늦은 밤 슈트케이스를 끌고 호텔에 도착했더니 어두운 골목 한 귀퉁이, 책 모양 로고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더군요.
여행자를 위한 등대처럼 어둠을 깨치고 있는 이 호텔의 이름은 ‘램프 라이트 북스 호텔(Lamp Light Books Hotel)’입니다.
엘리베이터 입구에 “책이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 같다”는 글귀가 붙어 있었습니다.
키케로의 말이라는군요.
로비가 있는 1층은 북카페로 운영되는데, 추리소설 및 여행 관련 책 3000여 권이 비치돼 있습니다.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스탠드 위에 브라질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두의 흑백사진을 모아 출간한
거대한 사진집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사진집 이름은 ‘제네시스’.
투숙객은 24시간 카페에서 책을 볼 수 있고, 원하는 책은 두 권까지 방으로 가져가 읽을 수 있어요.
재미있어서 손에서 놓기 힘든 책은 구입도 가능합니다.
방에는 침대 머리맡과 소파에 독서등을 두어 책읽기에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놓았습니다. 일종의 ‘북스테이’인 셈이죠.
일본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은 무리여서
표지가 예쁜 책 두 권을 골라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등받이 의자에 앉아 독서등을 켜고 가이드북도 읽고, 일본 책 책장도 넘겨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날 아침엔 1층 북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받아와 창밖 공원을 바라보며 먹었습니다.
호텔 조식은 미니버거 한 가지인데 원하는 맛을 두 가지 고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아스파라거스 베이컨과 앙버터를 먹었습니다.
미니 버거를 메뉴로 정한 이유는
투숙객들이 한 손으로는 음식을, 다른 손으로는 책을 들고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군요.
참으로 ‘교양있는 호텔’인 셈입니다.
이런 호텔을 차릴 아이디어를 낸 곳은 어디일까 궁금해 모기업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유럽 기업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솔라레&리조트라는 일본 호텔 기업이더군요.
2018년 설립한 이 호텔의 모토는 ‘책이라는 세계로의 여행’.
늦은 밤 귀갓길, 서점에 들르고 싶은데 문 닫아 아쉬웠던 경험에 착안해 24시간 불 밝힌 서점 컨셉트를 구상했다고 합니다.
반응이 좋자 나고야에 이어 지난해 삿포로와 후쿠오카에도 문을 열었다고요.
외출했다 숙소로 돌아오려 택시를 탔더니 기사님이
“그 호텔, 1층은 서점이에요. 아세요?” 하는 걸 보니 서점 컨셉트라는 소기의 목적 달성엔 성공한 것 같습니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곳에 묵지 않겠죠.
투숙객들이 카페에 앉아 밤늦도록 책에 몰두한 모습이 뭉클하게 느껴지는 건 동류(同類)를 발견했다는 은밀한 기쁨 때문일까요?
Books는 지난 한 해동안 독자 여러분께 책이라는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길잡이가 되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떠셨습니까. 즐거운 여행이었나요?
올해도 여러분의 여정에 동행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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