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개편’ 논의 급물살… 총선 앞두고 ‘뜨거운 감자’로

김현우 2023. 1. 3.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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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지역갈등 완화 기대… 현역의원 기득권 포기가 관건
1개 지역구서 2명 이상 대표 선출
사표 방지·군소정당 당선 가능성 ↑
인구 적은 농어촌 대표성 저하 우려
최소 3인 이상의 당선자 배분 제안
비례대표 의석 확대 등 대안 봇물
의석 확대 ‘국민 불신’ 최대 걸림돌
정치권 움직임
주호영 “의총 등 통해 의견 신속 수렴”
이재명 “장단점 충분히 고려해 검토”
심상정 “양당 담합으로 끝나선 안돼”
특위, 도·농 복합선거구제 방식 논의

새해 초부터 정치권에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내년 총선을 감안할 때 선거법 개정 시한(4월10일)이 3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만큼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 승자 독식 소선거구제가 대량의 사표를 발생시키고, 군소 정당의 국회 진출 가능성을 낮춘다는 문제의식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정작 해당 제도를 논의할 국회의원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을지가 미지수다. 그만큼 선거제도 개혁이 어렵다는 의미다.

기존 253석을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의원 정수 확대’ 방안이 시민단체와 군소 정당을 중심으로 논의된 바 있지만 이마저도 국회에 대한 ‘높은 불신’ 탓에 가로막히곤 했다.

지난 2022년 12월 28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대전환정치대혁연대(준)·정치개혁2050·더불어민주당 전국정당위원회 등 주최로 열린 2023년 정치개혁의 해 선포식에서 참석자들이 소선구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논의 방향은 중대선거구제

현재까지 국회 내에서 주로 논의되는 선거제도 개편 방안은 ‘중대선거구제’다. 지역구별로 당선자를 2명 이상 선출하는 제도로 3∼4위 득표자도 당선될 가능성이 있게 된다. 양당 독과점을 극복할 수 있고 사표를 비교적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도는 인구수가 적은 농어촌의 경우 대표성이 낮아질 수 있다. 현행 253개 소선거구 상황에서도 전남 순천시·광양시·곡성군·구례군이나 경북 군위군·의성군·청송군·영덕군 등 생활권이 다른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동일 지역구로 묶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영호남 지역 갈등은 완화할 수 있다지만 인구가 적은 농어촌의 대표성을 낮출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지역구 국회의원을 현행 253석에서 절반 수준인 127명으로 줄이고 중대선거구제도를 도입하되, 권역별 비례대표 127명, 전국 비례대표 46명을 선출하는 안을 내놨다. 특히 이 의원 안은 민주당 의원뿐 아니라 국민의힘 이명수·이용호 의원과 정의당 장혜영 의원,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등도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민주당 소속인 김상희 전 국회부의장은 이를 보완한 중대선거구제안을 내놨다. 전국을 39개 권역으로 나누고, 인구수대로 5∼10명 당선자를 배분한 뒤, 농어촌 지역이 많은 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제주 권역에 최소 3인 이상 당선자를 두는 방식이다.

그러나 현역 의원들이 기존 소선거구제도를 내려놓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 따른다. 특정 누군가는 자신의 선거구를 포기해야만 논의가 가능해서다. 이에 독일 의회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지역구 의석 253석을 그대로 유지한 채,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 대표성과 비례성을 모두 확보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해 12월22일, 민주당 최대 의견그룹 ‘더좋은미래’ 주최로 열린 ‘비례대표제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한국선거학회장인 강우진 경북대 교수는 “현행 선거제도는 지역대표제와 비례대표제 혼합형이지만, 비례대표제의 경우 그 비율이 낮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 공감대를 전제로 의원정수 확대를 통한 비례대표 의석 정수 증대를 주장했다. 다만 의석 확대는 국민 불신이 최대 걸림돌이다. 의석 확대 의견은 지난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논의된 바 있으나 당시 여야는 정치적 타격을 우려한 나머지 모두 포기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2일 국회에서 열린 2023년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은 “다양한 방법과 조합을 놓고 어떻게 잘 조정할 것인지, 대도시와 중소도시, 농촌 지역을 어떻게 고르게 반영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인구 비례에 따르는 사항을 지켜야 한다”며 “단일안 하나를 합의하기란 쉽지 않으니 복수의 안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국회 전원위에서 논의하자는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비관적 시각도 존재… 정치적 구호에 그쳐

정치권 안팎에서는 선거제 개편에 대한 비관적 시각도 상당하다. 선거법 개정 시한이 3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데다 선거제 개혁이 총선 때마다 ‘정치적 구호’에 그쳤다. 중대선거구제로 바뀔 시, 지역구가 사라질 현역 의원의 반발이 예상되는 데다 선거구 획정·비례대표 의원 정수·연동형 비례제 폐지 등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린 상황에서 합의가 가능하겠냐는 반론이 있다. 특위 소속 한 여당 의원은 “윤 대통령은 언론인터뷰에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중대선거구제는 의원내각제와 같은 권력 분산형 통치 구조와 걸맞다. (선거제 개혁을 하면) 매우 큰 변화가 있을 테니 내년이 아닌 5년 뒤 총선에 도입해야 한다는 식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소선거구제 한계에는 동의하지만, 권력 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이 전제돼야 선거제 개혁을 진행할 수 있다는 취지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인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여야, 현행 소선거구제 극복 공감대 현역 의원 재선과 직결… 신중 접근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2일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정치권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야는 ‘승자독식 양당제’를 만드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현역 의원들의 재선 가능성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다양한 방안을 놓고 당내 의견을 모으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2일 대구 신년인사회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중대선거구제와 관련해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서도 논의가 있을 것이고 의원총회 등을 통해 당에서도 선거제도에 관한 의견을 빠른 시간 안에 수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중대선거구제에 대해선 여러 논란이 있다”며 “장점으로는 소수 정당 진출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편으로 유명하고 경제력이 큰 사람들만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런 장단점을 충분히 고려해서 당내 의견을 모아가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뉴시스
당장의 공은 국회 정치개혁특위로 넘어갔다. 선거법 개정을 담당하는 특위 내 정치관계법 심사소위는 최근 관련 법안들의 일독을 마쳤다.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가겠다는 방침이다. 2월에는 특위 차원에서 전국을 돌며 공청회를 여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관계법 심사소위원장인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은 통화에서 “당 지도부와 원내지도부도 지금과 같은 승자 독식 선거구제, 극단적인 대결의 선거 방식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논의를 빨리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 의원은 다만 “개별 의원의 이해관계가 다 다르고, 수도권과 지방 의원의 의견이 달라 조율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특위 야당 간사인 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망국적인 소선거구제는 안 된다는 여야 의원들의 공통분모가 있어서 (특위에서) 바로 중대선거구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중대선거구제는 도시에 도입하고, 농촌 지역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할 것”이라며 “복합선거구제 형태로 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청년 정치인 모임인 ‘정치개혁 2050’ 등 여야가 두루 참여한 여타 회의체도 소선거구제 폐지에 군불을 때며 외곽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국민의힘 최형두, 민주당 이탄희 의원 등 여야 의원 46명이 전국을 돌며 중대선거구제 등을 주제로 ‘초당적 정치개혁 연속 토론’을 열기도 했다.

선거제 개혁을 주요 의제로 삼아온 정의당은 양당 논의를 예의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특위 소속인 심상정 의원은 통화에서 “대표성이 강화돼야 한다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중대선거구제가 호남에 국민의힘, 영남에 민주당을 당선시키는 양당 담합 선거제도로 제한돼서는 안 되고 다당제와 연합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우·김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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