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N유통]① 백화점이 아트와 만났다… 新 투자처로 각광받는 아트 비즈니스

연지연 기자 2023. 1. 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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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아트)을 즐기는 계층이 다양해 지고 있다. 일부 계층만의 향유물에서 벗어나 대중화되면서 MZ세대(1980년대초∼2000년대초 출생)들이 미술계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미술과 비즈니스간 접목 시도가 대형 백화점부터 작은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조선비즈는 8회에 걸쳐 아트와 유통의 만남이 어떻게 이어질지, 그로 인해 앞으로 유통산업의 미래는 어떠할지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3층의 ‘아트스페이스’에서 김재용 작가의 전시회 ‘Happy Holiday’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김재용 작가의 작품./신세계갤러리 제공

“작품 구할 수 있나 물어볼까. 구할 수 있으려나. 키아프 서울(KIAF SEOUL)에서도 첫날 다 팔렸었는데…”

지난 12월 31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3층의 ‘아트스페이스’.

이 곳을 찾은 한 모녀는 김재용 작가의 작품을 구하기 위해 전시장 안팎을 수차례 서성거렸다. 이 곳에선 오는 2월 1일까지 김 작가의 전시회 ‘Happy Holiday’가 열리고 있다.

김 작가는 요즘 열리는 아트페어마다 ‘완판(모두 판매되는 것)’을 기록하기로 유명하다. 먹음직스러운 세라믹 도넛에 토핑처럼 색과 보석을 얹은 도넛은 소장욕구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 아트 비즈니스 앞서가는 신세계... “정유경 총괄사장 방향 정확히 맞았다”

백화점으로 ‘그림(아트) 쇼핑’을 오는 시대다. 그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면서 이제는 꼭 갤러리와 같이 전통 판매채널에서만 그림을 살 필요가 없게 됐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신세계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부터 국내 1위 미술품 경매업체인 서울옥션에 지분을 투자하는 한편, 인수 검토까지 진행했다.

신세계백화점이 서울옥션을 인수하게 되거나 지분 투자에 힘입어 강력한 협업이 가능해지면, 미술품 투자에 관심이 많은 초고액자산가(VVIP)가 원하는 작품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입지를 만들 수 있다. 신세계는 지난 2020년 회사 정관에 미술품 전시·판매·중개·임대업 관련 컨설팅업을 추가하기도 했다.

신세계의 갤러리 사업은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에 갤러리가 생긴 것은 1966년. 하지만 백화점이 아트를 활용한 시너지 효과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한 것은 정유경 신세계 총괄 사장이 아트 비즈니스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정 총괄사장은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를 나온 미술학도이기도 하다.

정 총괄사장은 2015년 업계 최초로 매장 한층 전체를 미술관으로 꾸미는 시도를 한 이래로 2020년부터는 미술품 전시와 판매가 가능한 아트스페이스를 꾸렸다.

당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리뉴얼 개관하면서 3층 명품 매장에 갤러리를 만들어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전문 큐레이터를 두기도 했다. 백화점에서 작품을 추천받고 구매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미술시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거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정유경 총괄사장의 취향 정도로 평가받았지만, 최근엔 정 총괄사장의 방향이 정확히 맞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진행된 '더 아트 러브' 기획전에 전시된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과 관람객들/현대백화점 제공

◇ “갤러리 年 2회 열자” 롯데·현대·갤러리아도 아트 비즈니스 출사표

신세계를 필두로 갤러리아·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도 적극 관련 사업에 나서고 있다. 2021년 롯데백화점은 제1회 아트 롯데(ART LOTTE)를 개최하면서 아트 비즈니스에 출사표를 던졌다.

서울 에비뉴엘 잠실점과 명동 본점에서 열린 이 전시회에서는 현재 미술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는 이우환·박서보·김창열·윤형근·하종현·정상화 등 대가들의 마스터피스 60여점을 올렸다. 이우환의 ‘동풍’, ‘다이얼로그 시리즈’, 박서보의 ‘묘법시리즈’, 김창열의 ‘물방울’ 등이 대표 작품이었다.

롯데백화점은 갤러리 전담조직인 ‘아트 비즈니스실’도 마련했다. 아트 롯데를 연 2회 정례화해 아트 비즈니스를 유통사업 한 축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다.

롯데백화점이 ‘아트’의 맛을 본 것은 2014년부터다. 지금은 호텔롯데 수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완신 대표가 롯데백화점 마케팅 부문장에 있던 당시 대형 고무오리 ‘러버덕’ 전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면서 그 가능성을 봤다. 잠실 석촌호수 일대를 인증사진 명소로 만들기도 했을 뿐더러 집객효과도 톡톡히 봤다.

현대백화점도 2020년부터 연 2회 ‘아트 뮤지엄’을 열고 있다. 작게는 1000만원,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작품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21년 현대백화점 킨텍스점에서 열린 더아트에이치(The art H)에서는 영국 유명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 국내 현대미술가 이우환 등 국내·외 작가의 작품 100여 점을 전시했다.

객단가가 가장 높은 알짜 백화점 지점을 보유한 갤러리아도 마찬가지다. 갤러리아는 가나아트와 협력 마케팅을 통해 VIP 고객들의 집을 방문해 집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미술품을 제안하는 홈 아트워크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또 강남구청과 손잡고 갤러리아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10여 개 갤러리와 협업해 미술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이 지난해 8월 압구정 소재 갤러리 ‘갤러리 언플러그드’와 협업한 전시회를 개최했다./갤러리아백화점 제공

◇ “VVIP 잡으려면 미술품을 잡아라”...아트와 혼연일체 통해 공간 고급화도

국내 굴지 백화점들이 아트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소비자의 니즈(욕구)와 공간 고급화 니즈다.

먼저 백화점이 신경써서 관리하는 VVIP 고객군이 원하는 품목이 ‘아트’라는 점 때문이다. 과거엔 특정 계층만 미술품을 사고 팔았기 때문에 이를 특수 상품으로 분류했다. 갤러리나 옥션과 같은 유통망을 통해서 거래되고 대중을 상대하는 백화점에선 다루기 어려운 유형이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이 이뤄지고 문화를 소비하는 시대를 접어들면서 구매층이 두터워졌다. 미술품이 ‘투자품목’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구매행위도 더 빈번해졌다.

미술품은 다른 재화에 비해 세금이 적어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작고한 작가의 작품을 매도했을 때는 양도소득세 22%를 내야하지만 인정경비 대부분(90%)을 인정받아 세금이 크지 않다. 현존하는 작가의 작품을 매매해서 수익을 냈을 땐 세금이 없다.

주연화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백화점에서 몇 천만원짜리 의자와 쇼파를 사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이런 소비 과정에서 실내 인테리어의 한 요인으로서 미술품도 백화점에서 구매하려는 사람이 자연스레 늘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백화점은 미술품을 일종의 명품 재화(luxury goods)로서 다룰 수 밖에 없다”고 했다.

VVIP 고객들이 백화점을 통한 구매를 선호하는 것도 이유다. 지금까진 원하는 미술품을 얻기 위해선 전통적으로 갤러리와 친분을 쌓고 옥션을 기웃거리는 등 발품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이런 과정을 대신 해주면 미술품 매입도 과거와는 다르게 ‘대접 받으면서’ 할 수 있다. 백화점에선 미술품을 구입하는 순간부터 VVIP로서 백화점의 유·무형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백화점이라는 점포를 가치있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단순 구매행위는 온라인으로 가능한 시대라는 점에서 오프라인 점포에선 경험을 강조할 수 밖에 없다.

일반 마트라면 장터와 같은 친근한 이미지를 경험 요소로 강조하겠지만, 백화점은 매장을 방문하는 순간서부터 구매 과정까지를 ‘고급화’해야 한다. 고급 이미지가 필요한 백화점에겐 ‘아트’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쉬운 방법이다.

박소연 아트앤에디션 대표(아트딜러)는 “소비 자체도 하나의 스토리를 입혀 문화소비를 하듯, 건물에도 스토리를 입혀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게끔 하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면서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문화를 파는 행위로 옮겨가는 시대적 흐름을 백화점이 정확히 파악했고, 이를 가장 쉽게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아트와 혼연일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백화점이 공간 고급화를 위해 조명과 공간 배치를 지속적으로 바꾸는 노력을 감안하면 미술품 교체로 얻는 효과가 더 크다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은 고급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리모델링을 하는데, 아트 비즈니스에 뛰어들어 미술품 매매를 주선하면서 이미지만 교체해도 고급 분위기 쇄신에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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