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경매 넘어갔다" 청천벽력…한 푼도 없이 쫓겨나는 전세사기 난민

박수현 기자 2023. 1. 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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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왕'이라 불리는 임대인 A씨에게 전세사기를 입은 피해자들의 주거지 사진. 천장이 뜯기거나 누수로 곰팡이가 생기고, 복도 타일이 들떠있다. /사진=독자 제공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안상미씨는 지난해 7월 지금 사는 집이 경매에 부쳐졌다는 우편물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전세금을 5% 올려 7560만원의 보증금으로 재계약을 체결한지 불과 5개월 만이었다. 집주인은 연락을 받지 않았고 부동산은 기다리란 말만 반복했다.

이곳은 '건축왕'이라 불리는 A씨(61)가 실소유한 곳이었다. A씨는 건물을 지어서 전세보증금을 받고, 그 돈으로 다시 건물을 짓는 방식으로 건축을 해온 개발업자였다. 실소유한 주택은 파악된 것만 2708채. 그로 인해 집이 경매에 넘겨진 수많은 임차인들은 꼼짝없이 '전세사기 난민'이 되어 새해를 맞게 됐다.

새해에도 전세사기 피해자는 주거 불안에 시달린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 언제 이사를 가야할지 모르는데다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을 길도 요원하다. 임대인이 달아난 주택은 유지·보수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상습적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상위 30위 악성 임대인이 낸 보증 사고 건수는 3459건으로 집계됐다. 악성임대인은 HUG가 3건 이상 보증금을 대위변제했음에도 연락이 두절되는 등 상환 의지조차 없는 이들이다.

세입자에게 가장 많은 금액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악성임대인은 박모씨로 293건의 계약에서 646억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악성 임대인이 임대한 주택 가운데 전세 보증금 반환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주택까지 포함하면 피해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순위에 포함되지 않은 '이름 없는' 임대인까지 포함하면 전세사기 피해자는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사기 피해자 송모씨(31)가 집이 경매 절차에 넘어가고 낙찰자에게 받은 문자. /사진=독자 제공

악성임대인이 떠난 자리에는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세입자가 남는다. 임대인이 달아나 주택 유지·보수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사할 곳을 알아보며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다. 인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는 집이 경매 절차에 넘겨진 이후 누수로 곰팡이가 생기거나 천장에서 물이 새고, 수도가 끊기는 등 곤란을 겪었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으니 이사 장소도 막막하다. 이른바 '이름 없는' 임대인에게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송모씨(31)는 전세 대출을 받아 보증금 7500만원에 계약한 집이 지난해 4월 경매에 넘어가자 불안감에 시달렸다. 경매 기간 동안 집을 보러 오는 낯선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어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었다.

송씨는 집을 계약할 당시 공인중개사는 건물 시세가 20억원이고 집주인도 4층에 거주하고 있어 안전한 집이라며 계약을 권유했다고 했다. 그러나 집주인 가족은 집이 경매에 부쳐지자 달아났고, 후순위 임차인이었던 송씨는 배당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퇴거하게 됐다. 경매 낙찰자에게 퇴거를 요청받던 송씨는 곧 주택도시보증공사의 긴급주거 지원을 받아 이사할 예정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답답함을 토로한다. 송씨는 "다들 소송 실익이 없다며 '돈을 잃은 건 안타깝지만 인생 공부를 한 거라고 생각하라'고 한다"며 "이 집에 들어오려고 전세 대출을 받아서 대출 만기까지 돈을 못 갚으면 회생 신청을 해야한다. 제도가 잘못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안상미 미추홀구전세사기피해대책위 위원장도 "그동안 법이 허술해 피해자가 많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나라가 사기꾼의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일부 지원을 해주지만 여전히 막막한 실정이다. 전세 피해자가 새로운 주거지로 옮길 수 있도록 주거나 대출 지원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부터 서울 강서구에 전세피해지원센터를 설치해 전세사기 피해자를 대상으로 금융서비스, 임시거처 마련, 임대주택 입주, 법률상담 안내 등을 하고 있다. 또 올해부터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해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을 대상으로 가구당 1억6000만원 한도의 연 1%대 자금대출을 지원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시도지사협의회 회의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전세사기 가해자와 피해자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다"며 "이를 바로 잡기 위한 첫 걸음이 전세사기 피해를 당했을 때 찾아갈 수 있는 거점을 만드는 것으로 지역실정에 밝은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박수현 기자 literature102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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