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계속 올리겠다는 연준, 인플레이션 꺾을까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지난 12월14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다시 0.5%포인트 더 올렸다. 4.25~4.50%다. 인상 폭은 줄였다. 0.75%포인트씩 4차례 연속 인상한 것과 달리 이번엔 0.5%포인트 올리며 2022년을 마무리했다. 인플레이션이 진정 국면에 들어가기 시작했으니 금리인상 속도 역시 늦췄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같은 시기 대비)이 2022년 10월과 11월에 두 달 연속 하락했다.
그러나 시장은 반가워하지 않았다. 더 큰 것을 갈망해왔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연준이 ‘2023년엔 기준금리를 5% 이하까지만 올린 뒤 하반기부턴 금리 인하에 들어가겠다’ 정도의 신호를 우회적으로라도 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금리 발표 당일 나온 FOMC의 성명서는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을 2%로 돌려놓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구속적(restrictive)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계속적인 금리인상(ongoing increases)’이 적절하다고 기대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역시 FOMC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이 완화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당초 기대한 수준보단 못하다”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지속 가능한 하락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을 확신하려면(그래서 금리인상을 중단하려면), 훨씬 더 많은(substantially more) 증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금리를 한층 더 올리고 그 상태를 한동안 유지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런 결정의 이유는 연준이 낸 ‘경제전망 요약(SEP:Summary of Economic Projections)’에서 드러난다. SEP는 인플레이션·성장률·실업률 등 주요 경제지표에 대한 ‘금리정책 결정자(FOMC 위원들과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19명의 전망을 취합한 것이다. 금리정책 결정자들의 의견을 모았기 때문에 연준의 속내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로 간주된다. 분기마다 한 번씩 낸다.
지난 12월 SEP에 따르면, 19명 중 2명만이 2023년의 기준금리가 5% 아래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10명은 5.1%, 7명은 5.25% 이상으로 내다봤다. 여러 전망치 중 가운데 위치하며 가장 많은 정책 결정자들이 지지한 5.1%를 중간값(median rate)이라고 할 수 있다. 2023년 금리가 5.1%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크다는 의미다. 그런데 2022년 9월에 나온 SEP의 중간값은 4.6%였다. 가을에서 겨울에 이르는 시기, 각종 물가 지표들이 내려가고 있는 가운데서 연준의 금리정책 결정자들은 물가의 위협을 오히려 더 크게 느꼈으며, 이에 따라 ‘2023년 금리를 더 올려야겠다’고 결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를 인상하면 대다수 미국 시민들의 경제적 고통도 격화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12월 SEP를 작성한 정책 결정자들은 각종 지표를 3개월 전(2022년 9월)의 예측치보다 더 낮춰 잡았다. 9월에 1.2%로 예측했던 2023년 미국 GDP(국민총생산) 성장률을 12월 SEP에서는 0.5%로 낮췄다. 실업률 추정치는 9월의 4.4%에서 4.6%로 높여 전망했다.
연준의 정책 결정자들은 왜 이렇게 비관적일까? 첫째, 물가가 내리고 있긴 하지만 그 속도가 연준의 마음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물가 지표 가운데 연준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PCE:건물·토지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재화·서비스에 대한 소비를 대상으로 하는 지표)다. 2022년 10월의 PCE 물가상승률(1년 전 대비)은 6%였다(연준의 장기 금리목표인 2%의 3배). 연준은 2022년 9월 SEP에서는 2023년 4분기의 PCE 물가상승률이 2.8%까지 내려갈 것으로 봤다. 그러나 12월 SEP에서는 3.1%로 오히려 올렸다.
두 번째, 연준은 미국의 ‘너무 낮은’ 실업률에 거의 절망감을 느끼는 듯하다. 실업률이 낮다는 것은 대체로 노동 공급보다 수요가 높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노동의 값’인 임금이 오르면, 그 인상분이 재화·서비스 가격에 전가되어 물가를 쳐올린다. 2022년 11월 미국의 실업률은 반세기 만의 최저치인 3.7%였다. 그 한 달 동안에만 26만3000여 개 일자리가 늘어났다. 11월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전년 같은 시기에 비해 5.1%(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의 2.5배)나 상승했다. 2022년 미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은 2.9%라는 놀라운 실적을 보였는데, 이는 임금상승률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연준은 ‘뜨거운 노동시장’을 인플레이션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본다. 인플레이션을 꺾으려면 노동시장을 차갑게 식혀야 한다는 것이다.
“완전히 고통 없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지난 12월 SEP가 내놓은 새해 실업률 전망치(4.6%)는 ‘객관적 추정’이라기보다 ‘강렬한 의지’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연준은 2023년 미국 경제성장률을 0.5%(SEP 전망치)로 낮추고 실업률을 4.6%로 올릴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있다. 바로 기준금리에 대한 결정권이다.
로이터 기사(12월17일)에 따르면, 2022년 10월의 실업률 3.7%를 2023년 말까지 4.6%로 1%포인트 정도 올리려면 일자리 150만 개가량이 사라진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인 핌코(PIMCO) 보고서(2022년 12월16일)는, 임금인상률(11월 5.1%) 역시 1~2%포인트 정도 떨어뜨려야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2%)에 어느 정도 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정도 속도의 임금인상률 하락은 경기침체기에나 일어나는 사태다”.
파월 의장은 지난 12월 FOMC 종료 이후 기자회견에서 실업률 상승이 초래할 사회적 고통에 공감한다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가격 안정성을 복원할 수 있는, 완전히 고통 없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방법은 없다. 이것(금리인상)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어떤 사회적 고통이 있더라도 인플레이션만은 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 일각에서는 금리인상으로 경기침체, 나아가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초래되면, 연준 역시 ‘큰 뜻’을 꺾을 수밖에 없으리라 전망하기도 한다. 연준이 5%를 넘지 않을 정도로만 기준금리를 올린 뒤 2023년 연말까지는 두 차례 정도 인하하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연준으로서는 ‘약한 모습’을 노출할 수 없다. 그 자체로 시장에 불이 붙어 인플레이션을 격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12월 FOMC 이후 연준 간부들이 부쩍 언론에 강경 발언을 내놓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메리 데일리 총재는 언론 인터뷰에서 “시장이 인플레이션에 왜 그토록 낙관적인지 모르겠다. 자신들에게 이상적으로 보이는 시나리오만 믿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최종 금리가 SEP 추정치(5.1%)보다 더 높아질 수도 있다”라며 6%까지 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의 중앙은행도 연준과 비슷한 보폭을 보이고 있다. 2022년 12월 들어 이전보다 작은 폭으로 금리를 올리는 한편 새해에도 계속 인상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2023년에 나오는 경제지표들을 살피며 진로를 모색할 것이다. 각종 물가지수의 상승률이 계속 낮게 나오고 실업률이 눈에 띄게 오르면 중앙은행들 역시 ‘금리정책 전환’ 압박을 견디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연준의 다음 FOMC 회의는 오는 1월31일과 2월1일에 걸쳐 열린다.
이종태 선임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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