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조 패권, 정권의 각성 [우보세]

박준식 기자 2023. 1. 3.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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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순이익의 6~7할이 예대마진인데 그 중 절반을 주주들에게 뿌린 것이다.

당국이 대책마련을 위해 증권사들을 소집하자 일부가 거부를 하거나 기금마련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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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서민 취약계층 금융부담 완화대책 당·정 협의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2.12.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재인 정부 초대 금융감독원장은 이른바 '되치기'로 낙마했다. 캠프 출신 교수와 감사원 측근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 전직 서울시향 대표다. 원장이 되자 과거 자신이 사장으로 재직했던 금융지주사 총수 인선을 두고 셀프 3연임이라고 지적해 충돌이 시작됐다. 원장과 회장은 폭로전으로 치달았는데 재밌는 건 원장이 취임 반년도 지나지 않아 낙마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처음엔 누가 더 큰 건을 쥐었느냐가 승패를 좌우한 듯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청와대가 불개입을 개입한 건이 됐다. 적폐를 촛불로 타파하고 집권한 정부였다. 이들이 스스로 '관치' 논란을 일으켜 구태로 낙인찍힐 수는 없었던 터다. 당시 청와대는 민간 금융사 승계 문제에 다시 관여치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한다. 이후로 민간 CEO(최고경영자)들은 승승장구했다.

5년간 민간이 바라던 관치가 사라지자 금융계는 실제로 태평성대(?)를 맞았다. 2021년 금융지주사들은 코로나19(COVID-19) 시기임에도 하나 같이 사상최대 실적을 올렸다. 4대 금융지주의 순이익 합계는 15조원에 달했는데 이들은 4조원에 달하는 배당잔치를 벌였다. 순이익의 6~7할이 예대마진인데 그 중 절반을 주주들에게 뿌린 것이다. 주주의 과반은 외국인이었다.

금융당국은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 배당을 줄여달라 읍소했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위 '주주환원'을 위한다는 명분이었는데 다른 말로는 더 이상 관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이제부터 총수는 관이 아니라 주주가 정한다는 웅변이 아니었을까.

관의 불만이 누적돼 임계점에 달할 때쯤 정권이 바뀌었다. 짜맞춘듯 세계경제는 유동성을 급속히 축소하는 시기로 들어섰다. 자유를 외치고 집권한 새 대통령은 처음엔 시장의 자율적인 메커니즘을 존중하는 입장을 보였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무렵에도 카드를 되도록 아끼자고 도어스테핑을 마무리했다.

흥미로운 건 그 이후의 각성이다. 레고랜드와 흥국생명보험 사태가 터지고 채권시장이 마비된 이후 금융당국이 소위 '카드'를 쓰려고 하자 적잖은 반발이 일어났다. 당국이 대책마련을 위해 증권사들을 소집하자 일부가 거부를 하거나 기금마련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이른바 '중소 증권사들의 반항'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당국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금모으기'를 해도 시원찮을 판에 PF(프로젝트 파이낸스) 사고를 일으킨 증권사들이 도리어 나라 탓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위기 때마다 등장했던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은 외평채 하나 못찍을 정도로 형해화했고 5년간 민간 금융을 방치한 결과 기강은 온데간데 없어졌다는 한탄이 나왔다.

당국은 지난해 말 각고의 노력으로 채권시장을 살려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금융의 힘을 다시 체득한 듯 싶다. 3000조원의 자산을 가진 5대 금융지주가 95조원 지원책에 서명하지 않았다면 위기는 민생으로 전이됐을 것이다. 하지만 새해엔 경기침체가 똬리를 틀고 있다. 이 데스밸리를 건너려면 자본의 헤게모니가 어쨌든 필수적이다. 최근 금융권 세대교체를 두고 한가롭게 '관치' 품평이나 할 때는 아닌 듯 싶다.

박준식 기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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